
일본 에도(江戶) 중기 천명4년(1784) 후쿠오카 현에서 우연히 발견된 금인(金印).
인면은 대체로 정사각형으로 한변이 약 2.3cm, 인대의 높이는 약 0.9cm, 상부에는
뱀모양의 손잡이가 붙어 있고(사뉴를 포함한 높이는 2.2cm), 인문은 3행의 소전
한위노국왕 이라 음각되어 있음.
한서의 기록에 의해 광무제 · 건무중원 2년(57)에 광무제가 왜국 왕에게 하사한 것으로
한위노국왕이라는 명칭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한(漢)에 예속된 노예 나라의 왕’으로
풀이하는 학자들도 있다. 물론 일본학자들은 자신들이 한의 노예라는 것은 인정하려하지 않고,
‘한의 (아래에 있는) 왜(倭)의 노국왕’이란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서> 지리지에는 ‘낙랑(樂浪)의 바다 가운데 왜인이 있는데 100여국으로 나뉘어 있다.
새해에 (낙랑군을) 찾아와 공물을 바치고 알현 한다’고 적혀 있다.
이 집단 가운데 한반도를 거쳐 중국에까지 사신을 파견해 일종의 왕위 책봉을 받은 집단이 있었음이 ‘후한서’ 기록이나 출토 유물의 일치로 드러난 것이다.
후한서에는 ‘57년에 왜의 노국이 조공을 해왔다. 사신은 스스로를 대부(大夫)라고 칭했다.
왜의 남쪽 남단에 있는 나라라고 한다. 광무제는 인수를 하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금인에 새겨진 문자의 내용과 후한서 기록 등으로 보아 당시 노국왕이 광무제의 책봉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3세기 열도의 한위노국왕 : 한나라의 노예, 동이전에서 비천하고 초라하다고 소개되어
뜻하는 왜(倭)는 대방군에 속하여 해마다 조공을 하며 연명하였다.
그 정성으로 받은것이 금인이다
중국의 노예 주제에 그리고 한국인의 COPY 주제에 어디서 노예를 운운하는가? 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