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83호 금동반가유상은 신라의 고대 불교 조각사 연구의 출발점이자 6~7세기 동양의 가장 대표적인 불교 조각 가운데 하나이다.
이 상은 일찍이 일본 교토 코류지의 목조반가사유상과 매우 흡사하여 자주 비교 논의되는 등, 한일 고대 불교 조각의 교류 연구에 있어 큰 주목을 받았다.
풍만한 얼굴을 보면 가운데 양 눈썹에서 콧마루로 내려진 선의 흐름이 시원하고 날카롭다.
눈은 매우 가늘지만 눈매가 날카로우며 바깥쪽으로 치켜져 올라가 있다.
작은 입은 약간 돌출되었고 양 입가엔 미소가 완연하다.
가슴과 팔은 가냘프지도 풍만하지도 않으며, 비교적 작고 통통한 손과 손가락 하나하나에 미묘한 움직임이 있어 생동감이 느껴진다.
반가한 오른쪽 발도 오른손과 대응하여 미묘한 생동감이 느껴지며, 마치 진리를 깨달은 순간의 희열을 표현한 듯 발가락에도 힘을 주었다.
이에 비해 족좌에 내린 왼발은 경직되어 균형을 잃은 모습인데, 이것은 연꽃과 함께 뒤에 수리한 것이다.
반가사유상의 조형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뺨에 댄 오른팔의 처리이다.
이 팔은 무릎에서 꺾여서 다시 뺨에 닿아야 하므로 길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무릎을 들어 팔꿈치를 받쳐주고 그 팔 또한 비스듬히 꺾어 살짝 구부린 손가락을 통해 뺨에 대고 있어 치밀한 역학적 구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유기적 관계는 살짝 숙인 얼굴과 상체로 이어진다.
이처럼 사유상의 복잡한 신체 구조를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조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삼국 초기 양식의 금동불은 공예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이 금동불에는 자세의 과장과 단순화, 반복적인 옷주름 같은 도식성과 공예적 성격이 말끔히 해소되고 불필요한 장식이 배제되었다.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 삼국시대 7세기 전반의, 국보 83호, 높이 93.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반가사유상을 둘러싼 가장 큰 쟁점은 신라 작인가, 백제 작인가 하는 제작지의 문제이다.
지금까지 일본인 학자들을 중심으로, 앞서 언급한 일본의 국보 1호인 코류지 목조반가사유상의 제작지를 근거로 신라 작이라는 주장이 많았다.
그것은 삼산관의 형태, 가슴과 허리의 처리, 무릎 밑의 옷자락과 의자 양옆으로 드리운 허리띠 장신구 등 전반적인 이미지가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과 매우 흡사한 코류지 목조반가사유상을 신라 작으로 추정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근거로 먼저 나무의 재질을 들었다.
목조반가사유상이 만들어진 7세기대의 일본 목조불상은 대부분 구스노키라는 녹나무로 만든 반면 코류지 반가상은 일본에는 드물고 경상도 일대에서 많이 자생하고 있는 적송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만드는 방법에 있어서도 대부분의 목불이 신체의 각 부분을 나누어 여러 조각을 짜 맞춰서 하나의 상을 만드는 반면, 코류지 사유상은 하나의 나무에 상을 직접 조각하여 만든 것으로 당시 일본의 일반적인 목불 제작 방법과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일본서기』 623년 조에 신라 사신이 불상 1구, 금탑, 사리 등을 가지고 왔는데 불상은 진사에 안치하고 나머지는 사천왕사에 안치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현재의 코류지를 세웠다는 진 씨가 신라계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코류지의 목조반가사유상이 신라에서 제작되어 일본으로 건너왔다는 주장을 더욱 뒷받침하게 되었다.
그러나 적송이 일본에 전혀 없는 것이 아니며, 현재 신라에서 만들어진 목조불상이 단 한 점도 남아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라에서 목조불상을 만들었다는 어떠한 기록도 찾아볼 수가 없다.
나아가 『일본서기』의 기록을 그대로 신뢰할 수 없으며, 기록에 보이는 불상 1구를 현재의 목조반가사유상으로 단정지을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 상태이다.
따라서 재질과 문헌 기록에 의존하여 신라에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학설에 대해서는 앞으로 철저한 양식 분석에 의한 미술사적 방법으로 다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코류지 목조반가사유상의 제작지에 따라 한국의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의 제작지를 결정하는 것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
물론 두 반가사유상 사이에는 많은 유사점이 있지만 차이점도 많으며, 근본적으로 조형 감각도 다르기 때문에 한곳에서 만들어졌다고 단정짓기 어렵다.
아직까지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의 제작지에 대한 정설은 없지만 삼국 가운데 신라 혹은 백제에서 만들어진 것만큼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