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손 강림의 꿈 - 후지와라노 후히토의 프로젝트
한국어 번역판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951963
저자 서문
역자 해제
l.『일본서기』의 구상
제1장 쇼토쿠태자의 탄생
1. 쇼토쿠태자 관계 사료의 재검토
2. 쇼토쿠태자 신앙이라는 굴레
3. 역병 유행과 왕권의 변용
제2장『일본서기』의 허구
1. 불교 전파 기사의 허구
2.『수서』의 왜왕은 누구인가?
제3장 실재한 소가왕조
1. 허구의 왕권
2. 소가왕조
제4장 왕권의 제문제
1. 왕권의 성립과 전개
2. 우마코 이후
ll. 천손강림의 꿈
제1장 천황제 성립의 길
1. 황제가 될 수 없었던 대왕
2. 강대한 왕권의 창조
제2장 후지와라노 후히토의 프로젝트
1. 후지와라노 후히토의 역할
2. 프로젝트X - 구사카베황자의 옹립
3. 프로젝트Y - 가루황자의 옹립
4. 프로젝트Z - 오비토황자의 옹립
제3장 천손강림신화의 성립
1. 천손강림신화의 성립
2. 프로젝트X·Y의 신화
3. 프로젝트Z의 신화
4.『고사기』의 신화
제4장 천황제를 둘러싸고
관련연표
후기
저자와 역자 소개
【책의 본론】 - 작가의 생각
이 책의 저자는 일본이라는 한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일본서기’와 그 나라의 중심인 ‘천황’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해 나아간다. 그 내용을 파헤치는데 있어 확실한 근거가 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하고 꼼꼼히 따져보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결국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천황제라는 것이 ‘후지와라노 후히토’가 만들어낸 시나리오고 그와 더불어 조작된 ‘일본서기’가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쇼토쿠 태자】
다른 나라와 단 한번이라도 교류가 없었던 미개한 소수민족을 제외하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거대한 국가들은 본국이외에 타국과 관계되는 일이 많았다. 일본이라는 나라역시 아무리 오랜 과거라고 할지라도 아시아라는 가까운 지역적 관계아래, 거대한 중국과 한국 등의 나라와 잦은 왕래가 있었다. 그 때문에 그러한 사실적인 내용은 기록되어지게 되는데 이는 일본이라는 나라뿐 아니라 상대국 역시 기록으로 역사의 흔적을 남긴다.
그런데 일본의 역사적 기록만을 놓고 보면 어느 순간인가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의아하게 만드는 시대적 기록이 나타나 있다. 본 책에서도 고대사 기록에 의하면 구석기시대에서 조몬, 야요이, 고분시대라는 고고학의 시대구분이 이어지고 다음, 갑자기 아스카시대가 되고 ‘쇼투쿠태자’가 등장한다는 허무맹랑한 기록을 꼬집고 있다. 중국과의 교류도 없던 시대에‘쇼토쿠태자’는 중국사상인 유교, 불교, 도교의 성인으로서 일본 국내에서는 황태자, 섭정으로 천황 중심의 정치를 정비하고, 나아가 중국. 한반도 삼국과의 이교도 주재했다고 한다. 정리해 본다면 중국의 문명을 인식하고 악전고투하여 배우고, 그런 다음 독자적인 질서와 문화를 구축한다는 이야기다.
장기간의 걸친 어렵고 복잡한 가치관의 대립에 있어서 상징적인 ‘쇼토쿠태자’라는 한 성인의 등장으로 정리해 버리는 그야말로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한 나라의 탄생에 이후 변화 과정에서의 문화나 역사가 과연 그렇게 손쉽게 변하는것인가?”라고 우리는 쉽게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쇼토쿠 태자가 허구라는 작가의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그중 하나는 “메이지의 석학 구메 구니타케(1839~1931)다. 그는 1888년 제국대학 문과대학 교수로 역사와 지리등을 강의했다. 사료주의로 인해 제국대학에서 쫓겨나기까지 한 그가 쇼토쿠태자에도 관심을 가지고 1905년 ‘상국태자실록’을 저술했다고 한다. 그 내용은 불교신자가 쇼토쿠태자를 너무 존경한 나머지 법왕이라고 하면서 삼생사상으로 기이한 허구를 덧붙여졌고, 그전설은 세월이 지날수록 부가되어 나중에는 진실, 허구가 뒤섞여 실상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쇼토쿠태자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확실 반확실 불확실 3가지로 나누었고 이후 역사분야는 이 3가지로 나누어 읽는 연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말한다.
두 번째로는 쓰다 소키치의 지적인데 일본서기의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서 당시의 수서 왜국전에는 헌법이 제정되기 4년 전인 600년에 파겨된 사신이 당시의 일본의 정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고 한다.
사자가 이르기를 “왜왕은 천을 형으로 삼고 해를 동생으로 삼는다. 하늘이 밝아오기 전에 나와서 정치를 보고 가부좌하고 있다가 해가 나오면 곧바로 업무를 중단하고‘내 동생에게 맡기겠다’고 말했다”고 하였다. 고조가 이르기를 “이는 무척 잘못 되었다”고 하였다. 이에 가르쳐서 고치게 하였다.라는 내용이다. 일본서기에 나타난 천명사상은 여기에서는 그러한 기색조차 찾아 볼 수 없고, 오히려 고조에게 잘못된 것을 지적받아 고처 받고 있다. 때문에 일본서기의 편자의 창작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검증된 자료를 통해 쇼토쿠 태자와 일본서기에 대한 허구성을 알리고 있다.
세 번재로는 계보상의 허구다. ‘야마시로노오왕’이 쇼토쿠태자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지만, 일본서기만으로는 두사람의 관계를 알 수 없다. 더욱이 스이코와 쇼토쿠태자는 본래 계보상 아무런 관계도 없지만 스이코 황태자로 만들기 위해 스이코의 딸로 우지노 가이타코황녀라는 여성을 날조하여 쇼토쿠태자와 결혼시킨 것이다. 일본 문학작품인 고사기에는 비다쓰와 오사나가노 마테왕의 딸 히로히메 사이에 우지왕이 있고, 바다쓰와 스이코 사이에 시쓰카이왕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서기에도 비다쓰와 오사나가노 마테왕의 딸 ‘히로히’메 사이에 완전히 동일하게 고사기에서 합성한 ‘우지노 시쓰카이황녀’의 이름이 나온다. 쇼토쿠태자는 우마야도왕을 모델로 했거나 그 인물을 지워버리고 거기에 쇼투쿠태자를 적어 넣은 것이다.
이처럼 “‘쇼토의 태자의 출처가 불명확하다. 거짓이다.’라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라는 작가의 주장처럼 쇼토쿠 태자의가 허구의 인물이라면 그것을 증명하는 ‘일본서기’역시 역사적 가치는 크게 흔들릴 것이다. 때문에 제대로 된 역사적 사실을 알기위해 쇼토쿠태자가 있었던 아스카시대는 어떠한가를 알아야하고 그와 관련된 내용을 하나 하나 제대로 설명해야 했다.
【 후지와라노 후히토의 구상】
일본서기를 반박할 수 있는 자료로써 636년 완성된 ‘수서’왜국전을 설명한다. 600년부터 수차례 일본의 사신이 수를 방문한 기록이 남아있고 그것은 고고학을 통해 아스카시대의 역사와 유적, 유물로 입증을 하고 있다. 그 내용의 결과로 밝혀진 것이 ‘소가노 우마코왕권’이라는 것인데 일본서기를 읽다보면 놀랍게도 소가노 우마코가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고 한다.
잠깐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일본서기를 읽고 있으면 불교 전파 기사의 경우 스순 원년(588) 백제에서 승려와 기술자를 보낸 온 것과 소가노 우마코에 의해 아스카사가 건립된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본서기는 이것을 말법 원년에 해당하는 년도로 옮기고 ‘요시다’가 말하는 ‘말법 -폐불 - 싸움 - 삼보흥륭’이라는 수당 불교의 논리를 전개했다. 그리고 소가씨의 권력을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에 시종일관 소가노 이나메와 우마코 부자의 이야기 나온다. 이것을 왜곡하여 소가노의 대부분의 공적을 쇼토쿠태자의 공동사업으로 만들고 최후에 스이코를 등장시켜 소가노 우마코의 공적을 가로챈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원래 우마코 왕권과는 별개로 다른 왕권들이 있고 그중하나가 소가씨라는 것이었는데, 아스카시대 및 그 전후 왕권의 특권은 거대한 수당제국의 성립해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시아의 격동이 있었다. 특히 한국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그 여파가 일본에게도 밀려와 일본의 왕권은 다양한 국면에서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로인해 645년 을사의 변을 통해 ‘나카노오에왕’ 등이 ‘소가노 이루카’를 암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소가 왕가의 실권은 추락하고 왕가는 나카노오에왕 등의 오사나가 계통으로 한정하게 된다. 그 이후 왕가의 의해 중국 ‘율령제’를 모방한 ‘다이카개신’이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율령제를 중국으로부터 모방하게 되었지만 다른 나라의 문화적 특성에 맞게 만들어진 법이 일본에게 까지 제대로 끼어 맞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일본에는 없던 중국 황제의 개념이 필요했고 그에 대응하는 일본은 지금의 천황의 존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권력자 스스로가 천황이 되는 것이 아니라 황제라는 모방개념을 대신할 천황의 존재만이 필요했다. 그 때문에 천황은 제도상으로나 현실정치에서 권력으로 소외되었고 현실의 실존 권력자는 따로 존재했다고 한다.
헤아안시대 권력자는 ‘후지와라’씨였고 천황의 역할은 현실의 권력자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일본에게는 권력이 없는데 어떻게 그러한 능력이 가능했냐 하는 문제는 종교적인 권위를 그 명분으로 든다. 천황에게 권력은 없지만 종교를 통해 권위를 쥐어주고 실존 권력을 후지와라가 사용하게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아스카시대의 대왕은 그런개념이 아니었다. 과거의 대왕은 그 스스로가 권력자고 통치자였다. 그것을 나타내는 것이 소가노 우마코이야기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통치자의 권력이 율령국가가 된 이후에는 어떻게 천황과 실권자 둘로 나누어 진것일까? 하는 의문을 작가는 하게되고 분명 누군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주장을 펼친다.
앞서 이야기한 쇼토쿠태자는 율령국가 형성의 출발점에 있었고 황실의 존엄성을 확립했다. ‘일본서기’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위해 천황의 권위를 창조하기 위해 어쩌면 하나의 요소로 쇼토쿠태자라는 이야기가 탄생된 것은 아닌가 작가는 의심하게 되고 쇼토쿠 태자만으로 불충분한 천황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종교적 권위로 천황을 이용한다는 내용을 담은 것이 바로 ‘일본서기’라는 것이다.
일본서기의 편찬 최고의 책임자 ‘후지와라노 후히토’를 통해 그가 얼마나 엄청난 계획을 구상한 인물인지를 알게된다. 그는 타카마노하라, 천손강림, 만세일계신화를 써냈고 그 중심이 되는 것이 천손강림이다. 자신을 위해, 일족을 위해 만들어낸 이 책이 현재의 일본에는 후히토의 의도를 아닌 왜곡되어 전파되었고 있다고 한다.
【마치며】
본 책은 한권의 역사교과서처럼 책 내용을 이해하는데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책의 내용의 대부분은 증거자료와 설명 보충해석으로 나눠져 있기 때문에 논문형식이라고 보는게 좋다.
책을 통해 일본의 국가 탄생과정을 역사적으로 공부하는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 중하나가 일본 천황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천황제는 왜 만들어지게 되었는가 하는 궁금증 쉽게 풀 수 있다.
하지만 쇼토쿠태자라는 인물의 대해 설명은 대부분 이해가 어렵고 나해한 자료가 많았기 때문에 책을 읽기전에는 쇼토쿠태자에 대한 자료검색부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서기 전체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나 글쓴이가 꼬집어주는 내용을 차근차근 살펴보면 오랜 기간에 걸쳐 다양한 편집을 걸쳐 끼어 맞추어진 이야이가 일본서기다.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일본서기를 파헤치는 과정 중 가장 난해한 것은 이 책이 만들어진 당시가 과거 였기 때문에 왜곡하여 편찬한다는 것은 쉬운일이나 그것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과정은 현실에서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당시 쓰였던 관련 자료를 수집해야하고 조사해야하면 분석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일본서기의 내용과 대조하여 어디가 진실이고 거짓인지를 확인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또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문학 (만엽집, 고사기)등등 여러 작품에서도 일본의 시대적 변천사를 알아 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쉽사리 문학이라는 예술로써 볼 것이 아니라 심도 깊은 작품해석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출처] 2013년 6월 17일 오후 12시 27분에 저장한 글입니다.|작성자 써니
읽어 손해는 없다.
나태하고 지력이 낮은 빨강에는 무리일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