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1910년의 庚戌國恥(일본에서는 조선병합) 사건일까.
간략하게 말하면
대한제국의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조약을 통과시켜, 8월 29일 국권을 상실하게 되었던 사건을 말한다.
위의 역사적 대 사건에서 한국과 일본의 시각차이는 180도이다.
일본은 위의 사건을 조선이 근대문명의 단계로 들어서는 혁신적인 사건으로 생각하는 반면
한국은 일본의 착취, 강탈경제에 예속되어 단순한 공업국으로 전락하게 되는,
즉, 식민지 奴가 되었던 사건으로 생각하고 가르치고 있다.
물론 나는 한국의 입장에 동조한다.
조선병합이 비록 조선의 전체적인 능력을 향상시키고, 근대세계로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고
할 수 있지만, 실상은 식민지와 다를 것이 없었다.
겉으로는 평등한 병합임을 주장하였지만,
실상은 회사령(1910년)을 통해 조선인의 자유로운 상행위와 기업육성을 방해, 금지하였으며
산미증식계획(1920년대)을 통해 조선의 쌀을 무제한으로 일본에 공출시켰다.
또한 1925년 치안유지법을 공포하여, 조선인의 자유를 일본인의 10% 이하로 축소,
강제적인 행위를 가능하게 하여 奴와 같은 취급을 하였다.
그리고 만주사변(1931년) 이후 남면북양정책을 통해 조선반도 전체를 군참기지화로 변화시켰고,
제3차 조선인 교육령을 통해(1938년) 조선인을 단순히 전쟁물자를 만들고 전쟁에 투입시키기 위한
동물 이하로 개조시켜 나갔다.
또한 중일전쟁(1938년) 이후에는 강제 징용령, 학도병령을 통해 조선의 남아를 강제적으로 징집하였고,
1942년에는 조선어 학회 사건을 일으켜 민족의 혼과 같은 조선어를 완전히 말살하려 하였다.
물론 나 개인적으로는 위안부는 매춘부였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지만.(예외)
아무튼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고, 그 주민을 奴로 다루었다고 생각하는군요.
이것은 진실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일본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과거 1965년 한일 국교수립 당시 김종필-오히라 각서를 통해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배상의
명목으로 5억엔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