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한반도.만주.대만을 지배하던 일본이 수도(도쿄)를 한국 용인으로 옮기려 했다."
경원대 총장을 지낸 김의원(74.대한건설진흥회 회장) 박사는 틈틈이 수집한
120여 권의 희귀 자료를 2001년 국토연구원에 기증한 뒤 최근 발간한
자료 해설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 박사에 따르면 일본은 40년대 초 15년 후를 목표로 입안한 비밀 국토계획인
"중앙계획소안(中央計劃素案)"에서 경성부(서울) 남쪽 교외,
일본 내 오카야마와 후쿠오카 등 세 곳을 대동아권의 수도 이전 후보로 제시했다.
당시 서울 인근은 지진이 없고 일본 세력권(만주-한반도-일본)의 중앙에 위치해
일본이 수도 입지로 탐낼 만했다는 것이다.
새 수도에는 왕궁과 정부 기관만 이전할 계획이었다.
김 박사는 "나중에 일본 전직 관리 등과의 면담에서 수도 이전 후보였던
경성 교외가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가 있는 계곡 일대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일제는 용인 지역 측량까지 마쳤고, (옛)건설부 도로과장을 지낸
이헌경 대한콘설탄트 회장도 광복 직후 도로과 서류함에서
측량 도면을 봤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중앙계획소안은 일본 본토와 조선.만주.대만에 걸쳐 지역별 산업 생산 목표를
제시한 뒤 내지 150곳, 조선 23곳, 대만 20곳 등 총 193곳의 공업지구를 지정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계획은 조선인 800만 명을 만주로 강제 이주시키고,
그 자리를 일본 농민 800만 명으로 채운다는 것이 전제였다.
이주 계획이 실현됐다면 일본인은 한반도 인구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김 박사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했다면 이 계획은 실현되었을 것이고
우리는 만주로 쫓겨났을 게 뻔하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55년 서울시 도시계획전문위원을 시작으로 건교부 도시국장.
국립지리원장.국토개발연구원장.경원대 도시계획학과 교수 등을 역임한
국토정책 전문가다.
해설서 전문은 국토연구원 홈페이지(www.krihs.re.kr)에서 볼 수 있다.
허귀식 기자
천박한 일본인w 한국이 그렇게 좋은지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