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의해서 한글은 넓힐 수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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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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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承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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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한글이란···
원래 한글이라고 하는 것은, 제4대 세종대왕이 학자를 모으고, 1443년에 「훈민정음」으로서 완성해, 1446년에 공포된 문자입니다.
여기서 감이 날카로운 분이라면 눈치채실지도 모릅니다만, 공포까지 3년의 빈 곳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학자들이 반대했기 때문에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한자 이외의 문자(여기에서는 한글)를 마음대로 만들면, 종주국의 명(중국)으로부터 반역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위구했기 때문에, 라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또 당시의 조선 지식인들도, 한자를 버리고 한글을 사용하는 것은 문화의 퇴폐로 연결된다고 생각해, 일본, 티벳등의 고유의 문자를 가지는 나라들을 야만인으로서 업신여기고 있었기 때문에입니다.
어!?일!?되는 분이 계(오)신다고 생각합니다만, 이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조선인)은 오나카화를 존경해, 스스로는 코나카화를 자부해, 섬나라의 일본을 경멸하고 있었습니다( 「섬나라」라고 하는 차별 용어가 있네요).
그러한 민족 차별은, 문자에 대해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할까 원래 한글은 민중을 위해서 만들어진 문자였습니다.
그 때문에 완성 후 470년간은, 암크루(여자의 필적)나 아헥크루(아이 문자)라고 하는 멸칭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만, , ,
그러나!1913년에 「커다란 문자」라고 하는 의미의 「한글」로 명칭 변경되었습니다!!!
이상한 이야기입니다...
화제가 바뀝니다.
원래는 1886년에 이노우에 카쿠고로가 한자와 한글의 혼합문을 신문에 이용한 것으로 한글이 보급했습니다.
「네!?일본인이 한글을 보급시킨 아!?거짓말이다!!!」라고 생각되는 분이 계(오)신다고 생각하므로, 설명합니다.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기 이전은, 조선인의 문맹퇴치율은 10%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병합(1910년) 후, 일본은 학교 교육으로 조선어를 필수 과목으로 해, 한글의 보급은 급속히 진행되었습니다.
「조금 기다려?네?일본은 한글을 탄압해 일본어를 강요했지 않은거야?」라고 생각되는 분이 여럿 계(오)신다고 생각합니다만, 완전히 반대의 이야기입니다.
일본에 의해서 한글은 넓힐 수 있었습니다!!!
조선의 지배자층(양반)은, 일반 대중이 교육을 받는 것에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라도 문자를 읽을 수 있게 되면 지식이 일반적으로 넓게 널리 퍼져, 지배 구조가 무너져 버린다···」라고 당시의 양반들은 생각했겠지요.
그것은 구미 열강의 식민지도 같습니다.식민지의 주민에게 교육을 베푸는 등 있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통치하고 있던 한반도에서는 조선 교육령이 시행되어 한글을 필수 과목으로 하는 것에 결정되었습니다.
포인트
병합전은 100교에도 못 미쳤던 공립의 초등학교를 종전까지 5000교로 늘렸던 것도, 타이쇼 9년에 조선어 사전을 처음으로 만들었던 것도 조선 총독부입니다.
원래 조선어는 여섯 개의 방언 구분으로 나누어져 있고, 그것을 체계화시켰던 것도 조선 총독부입니다.
여기서 한국인이라면 「일본이 한글을 말satsu 자단이겠지!!!」라고 하게 되겠지요.
그러나 거기에 붙어 이런 것입니다.
위에 적은 것처럼, 조선 교육령에서 조선어의 수업은 필수 과목이었습니다.
그러나, 쇼와 13년이 되어 필수 과목으로부터 떼어졌습니다.
여기서 말합니다만, 조선어의 수업을 실시할지 어떨지는, 교장의 판단에 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장이라고 해도 일본인 교장과 조선인 교장이 있었습니다만, , ,
주로 조선인 교장 쪽이 조선어의 수업을 폐지했습니다!!!
대부분의 일본인 교장은 폐지하고 있지 않습니다.굳이 폐지할 필요도, 이유도 없기 때문에...
학생의 부형이나 주민중에는 공직자를 시작으로 하는 유력자가 있고, 그들은 폐지에 반대의 의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교장은 그들의 소리를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어?조선인 교장은?그들도 그런 것이겠죠?」라고 생각하겠지요.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나의 생각입니다만, 조선 출신의 교장은 아마 일본인 상사에게의 점수 돈벌이가 필요라고 생각했겠지요.
그래서 조선어를 가르치지 않고 , 일본어의 교육에 흥분했습니다.
http://note.chiebukuro.yahoo.co.jp/detail/n25154
원문보기
日本によってハングルは広められた
◎そもそもハングルとは・・・
そもそもハングルというのは、第四代世宗大王が学者を集めて、1443年に『訓民正音』として完成し、1446年に公布された文字です。
ここで勘が鋭い方ならお気づきになるかもしれませんが、公布までに3年の空きがあります。
なぜなら、当時の学者たちが反対したからです。
一説によれば、漢字以外の文字(ここではハングルのこと)を勝手に作れば、宗主国 の明(中国)から反逆と思われることを危惧したから、と考えられています。
また当時の朝鮮知識人たちも、漢字を捨ててハングルを使うことは文化の退廃につながると考えていたし、日本、チベットなどの固有の文字を持つ国々を野蛮人として見下していたからです。
えっ!?どゆこと!?となる方がいらっしゃると思いますが、これには理由があります。
彼ら(朝鮮 人)は大中華を敬い、自らは小中華を自負し、島国の日本を軽蔑していました(「島国」という差別用語がありますね)。
そのような民族差別は、文字においても影響を及ぼしていました。
というかそもそもハングルは民衆のためにつくられた文字でした。
そのため完成後470年間は、アムクル(女文字)やアヘックル(子供文字)といった蔑称で呼ばれていましたが、、、
しかし!1913年に「大いなる文字」という意味の「ハングル」に名称変更されたのです!!!
不思議な話です。。。
話が変わります。
もともとは1886年に井上角五郎が漢字とハングルの混合文を新聞に用いたことでハングルが普及しました。
「え!?日本人がハングルを普及させたあ!?嘘だ!!!」と思われる方がいらっしゃると思うので、説明します。
日本が朝鮮を統治する以前は、朝鮮 人の識字率は10%程度でした。
しかし併合(1910年)後、日本は学校教育で朝鮮語を必修科目とし、ハングルの普及は急速に進みました。
「ちょっと待って?え?日本はハングルを弾圧して日本語を強要したんじゃないの?」と思われる方が大勢いらっしゃると思いますが、全く逆の話です。
日本によってハングルは広められたのです!!!
朝鮮の支配者層(両班)は、一般大衆が教育を受けることに反対していました。
「誰でも文字が読めるようになれば知識が一般に広く行き渡り、支配構造が崩れてしまう・・・」と当時の両班達は考えたのでしょう。
それは欧米列強の植民地も同じです。植民地の住民に教育を施すなどありえないものでした。
しかし、日本が統治していた朝鮮半島では朝鮮教育令が施行され、ハングルを必修科目とすることに決められたのです。
ポイント
併合前は100校にも満たなかった公立の小学校を終戦までに5000校に増やしたのも、大正9年に朝鮮語辞典を初めて作ったのも朝鮮総督府です。
そもそも朝鮮語は六つの方言区分に分かれていて、それを体系化させたのも朝鮮総督府です。
ここで韓国人なら「日本がハングルを抹satsuしたんだろ!!!」ということになるでしょう。
しかしそれについてはこういうことです。
上に記したように、朝鮮教育令にて朝鮮語の授業は必修科目でした。
しかし、昭和13年になって必修科目から外されたのです。
ここで言いますが、朝鮮語の授業を行うかどうかは、校長の判断に任されていました。
しかし校長と言っても日本人校長と朝鮮 人校長が居ましたが、、、
主に朝鮮 人校長のほうが朝鮮語の授業を廃止したのです!!!
ほとんどの日本人校長は廃止していません。あえて廃止する必要も、理由もありませんから。。。
生徒の父兄や住民の中には公職者をはじめとする有力者が居て、彼らは廃止に反対の意向を持っていました。
ほとんどの校長は彼らの声を無視することは出来ませんでした。
「えっ?朝鮮 人校長は?彼らもそうなんでしょ?」と思うでしょう。
・・・私もそう思います。。。
・・・これは私の考えですが、朝鮮出身の校長はおそらく日本人上司への点数稼ぎが必要と考えたのでしょう。
なので朝鮮語を教えずに、日本語の教育に熱を入れたのです。
http://note.chiebukuro.yahoo.co.jp/detail/n25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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