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나는 한국의 독립 이외로 바라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사형에 처한다]라는 판결이 내려지고 안중근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알고 있었습니다. 사형 이상의 형벌은 없습니까?]
양심의 가책과 안중근이라는 남자에 대한 경외심에 안중근을 감시하고 있던 헌병 cihba tosichi의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곧 살해당할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지금도 조국의 평화와 독립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
헌병 chiba는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chiba : [안중근씨. 일본인으로서 사죄하고 싶습니다. 미안합니다. ]
안중근 : [서로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마지막까지 자기의 임무에 충성을 다합시다.]
안중근의 모습에 마음이 움직인 또 다른 사람이 있다. 뤼순 감옥의 형무소장이였던 kurihara.
kurihara는 어떻게든 동양 평화론을 완성하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겨진 시간은 너무 적었다.
kurihara가 보낸 안중근의 처형을 연기해 달라는 글이다.
15일간 처형 집행 연기를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바램을 이뤄지지 않았다.
kurihara : [당신을 도와주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당신이 바라는 것이 있다면 뭐든지 말해주세요]
안중근: [그럼 하얀 한복을 준비해 주세요. 그것을 수의로 하고 싶습니다]
뤼순 감옥의 일본인들은 안중근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었다.
kurihara의 부인은 열심히 한복을 만들었다.
안중근은 옥중에서 동양 평화론의 저술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는다.
언제나처럼 차분하고 여유 있는 사람이였다.
조용히 죽음을 맞으려 나가고 있었다.
옥중에는 무엇인가 남겨져 있었다.

안중근이 남긴 마지막 유언이다. 그것은 일본군 헌병 chiba를 위해 남긴 것이였다.
[군인은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이 본분이다 by 안중근]
그것을 본 chiba는 [감사합니다!!]라고 마지막으로 안중근에게 말한다.
죽여서는 안되는 사람이였다. 그러나 그 뒷모습은 어떤 동정도 연민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1910년 3월 26일 안중근 31살.
오전 10시 4분 사형 집행.
10시 15분 절명.
그리고 안중근의 처형으로부터 6개월 후였다. 1개의 조약이 발표되었다.
한일 병합.
조국은 지도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미야기현 구리하라군. 헌병 chiba tosichi의 고향
그의 무덤에는 안중근의 안중근의 유언을 새긴 큰 비석이 세워져 있다.
헌병 chiba는 안중근이 사형을 당한 후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안중근의 명복을 빌었다.
양심의 가책과 죄의식으로 자신을 책망했던 그는 오로지 합장을 계속하는 것으로 남은 인생의 의미를 발견한 것이다.
안중근이라는 남자에게 받은 깊은 감명을 간직한 채.
미완성된 동양 평화론.
그것은 끝까지 완성되지 못했다
과연 그는 무엇을 남기려고 했던 것일까
중국, 한국, 일본의 평화 회의를 개최
정치 경제의 공동체를 만든다
이른바 동아시아 운명 공동체 구성이다.
그는 86년 전에 이미 동아시아의 정치 밸런스를 인식한 대단한 인물이였던 것이다.
그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다. 이웃을 박해하는 자는 결국 폐왕의 근심을 피할 수 없다
한국 독립에 모든 걸 바친 인생이였다
그러나 그는 혼자만이 아니였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다
안중근이 옥중에서 아내에게 보낸 편지가 남겨져 있다
[우리들은 이슬처럼 덧없는 세상에서 천주의 마음에 따라 부부의 연을 맺고 다시 주의 명에 따라 여기서 헤어지게 되었지만 또 머지않아 주의 은총에 의해 천국, 영복의 근원에 모일 것입니다
할 말은 많지만 후일 천국에서 기쁘고 즐겁게 재회해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고 믿고 바랄 뿐입니다. ]
안중근
결국 조국에는 돌아갈 수 없었던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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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은 교과서에 이 내용을 실어 제대로 교육해라.
http://www.youtube.com/watch?v=9f48d6Mpb0g
일본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