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나라 시인, 굴원(屈原)과 단오, 단오식 >
이름은 평(平). 원(原)은 자. 일찍부터 그 명성이 널리 알려졌다.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그의 시들은 초기 중국 시단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양쯔 강 중부 유역의 큰 나라였던 초나라의 왕족으로 태어났다. 굴원은 제(齊)와 동맹해 강국인 진(秦)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진의 장의(張儀)와 내통하고 있던 정적과 왕의 애첩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왕은 제와 단교했으나 결국 진에게 기만당하고 진의 포로가 되어 살해당하고 말았다. 회왕이 죽은 뒤 큰아들인 경양왕(頃襄王)이 즉위하고 막내인 자란(子蘭)이 영윤(令尹:재상)이 되었다. 굴원은 회왕을 객사하게 한 자란을 백성들과 함께 비난하다가 또다시 모함을 받아 양쯔 강 이남의 소택지(沼澤地)로 추방되었다. 〈어부사 漁父辭〉는 그때 쓴 작품이다. 그는 유배지에서 무속적 민속의식을 관찰하고 그의 작품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전설들을 수집했다. 맨처음 회왕에게 내쫓기어 유배되었을 때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장편 서정시 〈이소 離騷〉를 써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굴원은 애타게 자기의 충정을 노래하다가 한 번 용서받은 바 있었으나, 다시금 참소를 받아 경양왕에 의해 멀리 양쯔 강 남쪽 강남지방으로 내쫓기는 몸이 되었다. 굴원은 유배에 대한 절망감으로 강가를 하염없이 거닐며 시를 읊조리다가 〈회사(懷沙)의 부(賦)〉를 마지막으로 고결한 성품을 그대로 간직한 채 돌을 안고 미뤄 강에 몸을 던졌다.
단양절(端陽節)이라고도 하는 중국의 단오절은 양쯔 강과 한수이 강 유역으로부터 서남과 화남 지방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명절로 지켜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단오를 최대 명절 중 하나로 여기는데 전해지는 바로는 전국시대의 위대한 애국시인 굴원을 기념하던 것이 이 명절의 기원이라고 한다. 굴원이 미뤄 강에 몸을 던진 후, 사람들이 작은 배를 저어 강을 따라가며 그를 구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후 굴원의 기일이 되면 사람들은 그때와 비슷한 행동을 하여 그의 혼을 달랬고, 대나무통 속에 쌀떡을 담아 강에 던져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훗날 이러한 의식은 점차 변하여 오늘날과 같은 즐거운 명절이 되었다. 단오절의 주요행사는 용선 경주인데 사람들이 징과 북을 요란스레 두드려대는 가운데 용의 모양으로 장식한 길다란 배를 저어 경주를 한다. 용선 경주는 힘과 자신감, 그리고 중국 민족의 특색을 여실히 보여준다.
단오절에 먹는 단오식 중에 하나인 차륜병은 수리취나 쑥을 짓이겨 멥쌀가루에 넣어 반죽한 뒤 수레바퀴 모양의 떡살로 문양을 낸 절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