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국제법학자 레이는 제2차 한일 협약 체결 당시 강박(强迫)이 사용했다
을사조약때 당시 고종의 비준이 없으며
이하영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등 대한제국에 매국했으며 고종은 헤이그밀사도 보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의정대신 한규설과 민영기는 을사조약 체결을 끝까지 반대했다.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주차군사령관과 헌병사령관 대동, 하야시와 함께 무장 병력으로 궁궐을 포위한 상태에서 조약체결을 강요
대한제국 외부대신 박재순과 일본공사 하야시에게는 양국통치권자의 위임절차가 없었음
일본은 국제적으로 공약한 "한국의 독립"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했음
고종은 국서를 만들어 을사조약이 무효임을 공식 선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