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익 日本帝國 육군 중장
-1941년 3월 일본제국육군 소장 진급, 보병 제108여단장(중국 허베이省)
-팔로군 소속 빨갱이들 때려잡으심
-1942년 4월~1944년 3월: 일본제국 육군 공주령학교 부교장
-1944년 3월 필리핀 주둔 일본제국군 남방군 총사령부 병참총감. 연합군 포로수용소 소장 겸직.
-1944년 10월 일본제국 육군 중장 진급
-종전 후 전범으로 사형
김석원 日本帝國 육군 대좌
-1937년 발발한 중일전쟁 당시 山西省 東苑에서 2개 중대 일본군으로 1개 중국군 사단을 격퇴
- 조선인 최초로 3급무공훈장 수여
- 종전 후 한국전쟁에서 맹활약
이우 일본제국 육군 중좌
-조선 왕족
-1941년 일본육군대학 졸업
-1944년 북지나 방면군 제1사령부 참모 장교
-1945년 6월 중좌 진급
박정희 만주군 중위
- 일본제국 육군사관학교 3등으로 졸업
-해방후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에 뽑혀 18년간 한국 통치
김수환 일본제국육군 소위
- 남조선의 유명한 추기경이 됨
이외에도 2차대전 때 일본군-만주군 장교로 활약하던 조선인들은 수백명
(참고로 해방 당시 광복군 총병력은 339명 http://yeoksa.blog.fc2.com/blog-entry-568.html)
2차대전 종전후 일본군 조선인 전범은 148명.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조선인 전몰자는 2만여명에 이른다.
日帝는 지나사변의 장기화로 군인들이 부족해졌다. 이에 일제는 조선인들에게도 皇軍(황군)에 복역하도록 지원병을 모집하기에 이른다. 지나사변에서의 일제의 연전연승에 환호한 조선남자들은 일본군에 구름같이 지원했다. - 1938년 ~ 1943년 조선인 일본육군특별병 지원자 추이
<조선인 특별지원병제 응모자 배율>
채용수 / 응모자 / 배율
1938년 406명 2, 906명 7. 7
1939년 613명 12, 348명 20. 1
1940년 3, 060명 84, 443명 27. 6
1941년 3, 208명 144, 443명 45. 1
1942년 4, 077명 254, 273명 62. 4
1943년 6, 300명 303, 394명 48.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