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에는 없는 조선 국왕의 투구가 일본 박물관에 전시되었다.(사진=국립도쿄박물관 도록)
1905년부터 본격화된 일본인들의 고분 도굴은 빼놓을 수 없는 한국 문화재 파괴 사례다.
이들은 주로 경주, 부여, 공주, 평양 백제 등등 전국 곳곳에서 불법 도굴을 자행했다.
경주 신라 고분도 일본 도굴꾼들의 약탈 대상이었으며 특히 경주에는 항상 수십 명의 도굴꾼들이 있었다고 한다.
(일제는 문화재 도굴을 편히 하기 위해 고려장이란 풍습도 날조했다
이토히로부미 -고려청자 최대의 장물아비
이토가 통감으로 있을시 이완용을 등에 업고 개성 일대의 고려 고분 도굴을 부추겼눈데 당시 일본인 고려자기 도굴꾼만
수천명이 이르렀다.그때 수천점의 고려청자가 일본으로 빼돌렸는데 1965년 반환된 보물 452호 청자 거북모양 주전자가
대표적인 예다.(이토히로부미가 일왕에게 헌사)
또 이토가 일본으로 두번에 걸쳐 반출한 한국 도서는 규장각에서 반출된것을 포함해 77종 1028책이다.
1916년 강화도 고려 고분 조사에서 고려자기 도굴 참상을 목격한 일본인 고고학자 이마니시 류도 이렇게 쓰고 있다.
자고로 조선인은 조상 묘에 손을 대는 법이 없었는데,악질 일본인들이 남의 나라 조상의 묘를 비정하게 도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