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 침몰로 보인 일중한국 「수병」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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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承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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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 침몰로 보인 일중한국 「수병」의 차이
2014.5.7 11:05
4월 17일, 전복해, 가라앉아 가는 여객선의 근처에 모인 한국 해군의 해난 구조 부대의 대원들=한국·진도바다(AP)
「벌써 가라앉아 버린다
」
한국의 여객선《세월(세워르) 호/총 톤수 6825톤》이 황해에서 전복한 4월 16일, 68세의 베테랑 선장과 승무원 약 30명의 거의가 이렇게 무서워해 지금 밖에 없으면 승객을 버려 나 먼저 도망갔다.결과, 300명 이상이 death망이나 안부 불명이 되었다.용서되지 않는
이, 직업에의 자랑이나 의식이 부족한 「추악한 행동」은 한국인에 한정되지 않는다.현재의 일본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반면, 어느 나라에도, 언제의 세상에도, 자기희생을 싫어하지 않는 「영웅」이 있다.많게는 역사를 그냥 지나침 했을 뿐의, 이름도 울어 사람들이지만, 구전하는 것으로 「추악한 행동」에 브레이크는 걸린다.사고 현장 북방의 같은 황해에서 120년 정도 전, 약관 18세의 일본 남아가 끝까지 임무를 완수해, 이렇게 묻는이라고 짧은 생애를 끝냈다.
「 아직 가라앉지 않습니까
」
황해 해전에서 가리킨 애국심
메이지 278년 전쟁(청일 전쟁) 중의 1894년 9월 17일, 대일본제국해군 연합 함대 기함의 방호 순양함《마츠시마/상비 배수량 4278톤》은, 청국해군·북양 함대 소속으로 동양1의 견함과 두려워 한《진원/상비 배수량 7220톤》의 거포탄을 받아 승무원 96명의 death 상처가 난 물건을 낸다.전사에 유명한《황해=압록강 해전》이다.
피투성이로 가로 놓이는 삼등 수병·미우라 호라지로(1875~94년)도 싸움 death 하는 28명의 한 명이 된다.미우라는 마침 지나간 마츠시마 부장에게, 북양 함대 기함으로 진원의 동형함《정원/상비 배수량 7144톤》이 가라앉았는지를 「소리를 조리개라고」(사사키오부츠나 작사의 군가·용감한 수병의 일절) 물었다.부장이 전투 불능에 빠진 취지를 설명하면 「미소를 흘리면서 숨 끊어졌다」라고 한다.
18세의 잇스이병이 가리킨 애국심과 책임감에 무료 머리가 수그러진다.마음 맞아 눈물나기 시작한다.다만, 미우라와 같은 하늘 맑음인 귀감은 당시의 일본에는 확실히 존재했다.
마츠시마가 피탄했을 때, 연합 함대 초대 사령장관의 이토스케유키(도와 유키) 중장(1843~1914년/후에 원수 해군 대장)은, 스스로 손해를 검시하기 위하여 함교를 나왔다.라고 이토의 발밑에, 확실히 생명 다하려고 하는 수병이 혼신이 힘을 집중해 겨 모여 왔다.수병은 말한다.
「각하, 무사했습니다인가」
이토는 수병의 손을 확실히 잡아 「이토는 이 대로 괜찮지.안심해라」라고 응해 갑판에서 제자리 걸음까지 해 보였다.수병은 「각하가 무사하면 싸움은 승리입니다.만세
」(이)라고, 최후의 말을 발표해 숨이 끊어진다.
자기희생의 기원은 무사도
해전의 승리는, 일본에 해상권을 가져와, 중국 대륙에의 항해 파병 등, 전국 전반을 유리하게 진행하는 중대한 분수령이 되었다.국가 존망의 갈림길은, 이름도 울어 전사에 의한 자기희생의 수였다, 라고 말해도 용서되자.그리스도자인 우치무라 간조(1861~1930년)에게 배우면, 자기희생의 기원은《일본에 있어서의 유일한 도덕·윤리이며, 세계 최고의 사람의 길》과 격상 되어야 할《무사도》에 인.가라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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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船沈没で見えた日中韓「水兵」の差
韓国船沈没で見えた日中韓「水兵」の差
2014.5.7 11:05
4月17日、転覆し、沈んでいく旅客船の近くに集まった韓国海軍の海難救助部隊の隊員たち=韓国・珍島沖(AP)
「もう沈んでしまう…」
韓国の旅客船《世越(セウォル)号/総トン数6825トン》が黄海で転覆した4月16日、68歳のベテラン船長と乗組員約30人のほとんどがこう怯え、今しかないと乗客を見捨てて我先に逃げ出した。結果、300人以上がdeath亡か安否不明となった。許されない…が、職業への誇りや意識を欠いた「醜悪な行い」は韓国人に限らない。現在の日本でも起こり得る。半面、どの国にも、いつの世にも、自己犠牲を厭わぬ「英雄」がいる。多くは歴史を素通りしただけの、名もなき人々だが、語り継ぐことで「醜悪な行い」に歯止めはかかる。事故現場北方の同じ黄海で120年ほど前、弱冠18歳の日本男児が最後まで任務を全うし、こう問うて短い生涯を終えた。
「まだ沈みませんか…」
黄海海戦で示した愛国心
明治二十七八年戦役(日清戦争)中の1894年9月17日、大日本帝國海軍聯合艦隊旗艦の防護巡洋艦《松島/常備排水量4278トン》は、清國海軍・北洋艦隊所属で東洋一の堅艦と恐れられた《鎮遠/常備排水量7220トン》の巨砲弾を受け、乗組員96人のdeath傷者を出す。戦史に名高い《黄海=鴨緑江海戦》である。
血だるまで横たわる三等水兵・三浦虎次郎(1875~94年)も戦deathする28人の一人となる。三浦は通り掛かった松島副長に、北洋艦隊旗艦で鎮遠の同型艦《定遠/常備排水量7144トン》が沈んだかを「声をしぼりて」(佐佐木信綱作詞の軍歌・勇敢なる水兵の一節)尋ねた。副長が戦闘不能に陥った旨を説明すると「微笑を漏らしつつ 息絶えた」という。
18歳の一水兵が示した愛国心と責任感に只頭が下がる。心打たれ泣けてくる。ただし、三浦のような天晴れな亀鑑は当時の日本には確かに存在した。
松島が被弾した際、聯合艦隊初代司令長官の伊東祐亨(すけゆき)中将(1843~1914年/後に元帥海軍大将)は、自ら損害を検分すべく艦橋を下りた。と、伊東の足元に、まさに命尽きようとする水兵が渾身の力を込め這い寄ってきた。水兵は言う。
「閣下、ご無事でありましたか」
伊東は水兵の手をしかと握り「伊東はこの通り大丈夫じゃ。安心せよ」と応え、甲板で足踏みまでして見せた。水兵は「閣下がご無事なら戦いは勝ちであります。万歳っ…」と、最期の言葉を発して事切れる。
自己犠牲の淵源は武士道
海戦の勝利は、日本に制海権をもたらし、中国大陸への渡海派兵など、戦局全般を有利に進める重大な分水嶺となった。国家存亡の分かれ目は、名もなき戦士による自己犠牲の数であった、と言っても許されよう。キリスト者であった内村鑑三(1861~1930年)に学べば、自己犠牲の淵源は《日本における唯一の道徳・倫理であり、世界最高の人の道》と激賞されるべき《武士道》に認む。曰く-
《日本武士は、その正義と真理のため生命を惜しまざる犠牲の精神に共鳴して神の道に従った。武士道がある限り日本は栄え、武士道がなくなるとき日本は滅びる》
この点、戦力で全く上回る北洋艦隊だったが、水兵は言うに及ばず一部艦長までが怖じ気づき敵前逃亡を図る。北洋艦隊は母港である対岸の山東半島北東部・威海衛まで潰走する。聯合艦隊は追跡し、港湾口を塞いだ。北洋艦隊司令長官の丁(てい)汝(じょ)昌(しょう)提督(1836~95年)は脱出を試みるも、果敢に斬り込む自己犠牲の実践者はいない。むしろ、水兵らは反乱を企て、脱出作戦を封じる有り様。清國軍には、軍紀や自己犠牲を支える武士道の如き普遍的価値観が欠如していたと観て差し遣いあるまい。
一方日本の側は、伊東自身が武士道の実践者であった。丁に書信を送る。
《僕は世界に轟鳴する日本武士の名誉心に誓い、閣下にむかいて暫く我邦に遊び、もって他日、貴国中興の運、真に閣下の勤労を要するの時節到来するを竢たれんことを願うや切なり。閣下、それ友人誠実の一言を聴納せよ》
伊東は丁に対し、捕らわれても後に軍功を立てた幾多の先例を示しながら「活躍の場が必要とされる清國再興の時節到来まで、日本に亡命し待ってはどうか」と「武士道に誓い、友人の誠から」切々と訴えたのだった。丁は深く感じ入るも、丁重に断り服毒suicideを遂げ、北洋艦隊は降伏する。
極限でこそ見える国柄
伊東の武士道は尚続く。丁の棺が粗末なジャンク船で帰国すると聞くに至り、伊東は鹵獲した清國側輸送船を提供し、丁の亡骸の後送に充てる。葬送の日、聯合艦隊各艦は半旗を掲げ、松島は弔砲を撃ちて弔意を表した。タイムス誌が「丁提督は祖国よりも却って敵に戦功を認められた」と報ずるなど、伊東の武士道は国際が絶賛する。清帝は丁の財産を没収し、葬儀も許さなかったのだ。予期したかのように、丁は降伏に臨み「将兵らを赦し、郷里に帰還させてほしい」と要請。祖国ではなく、伊東の武士道を信頼している。
しかし、中国は今も昔も武士道の価値が理解できない。帝國政府や海軍中央の叱責に腹切る覚悟で葬送を決心した伊東の、追認した政府・海軍の、それぞれの武士道が理解できない。丁への仕打ちの持つ蛮性に気付きもしない。中国に中華思想を植え付けられ「擬似中国=小中華」に堕ちた韓国も同じ。
拓殖大学の呉(オ)善(ソン)花(ファ)教授(57)は4月21日、九州正論懇話会での講演で、韓国の反日感情の背景に潜む文化・歴史に触れ「文治主義の韓国は武士道の国・日本を野蛮な国と蔑視し『われわれが正さなければ軍国主義が復活する』と思っている」と語った。
「真の武士道とは何か」を、中韓に説いて聴かせねばならない。呉氏はまた、沈没事故で乗組員が真っ先に逃げ出した事実を指摘し「極限状態でこそ社会の在り方が見える。韓国人は反日の時は団結するが、愛国心はなく、徹底的な利己主義だ」と言い切った。
都合良く歴史を捏造・粉飾し、恥と思わぬ中韓に「真の武士道とは何か」を説く虚しさも、深く感ずる。それでも《武士道がなくなるときは、日本の滅びるとき》と予見した内村の警鐘を真正面で受け止め、日本人自身が武士道を国際で体現しなければ、中韓の「醜悪な行い」をあぶり出せない。(政治部専門委員 野口裕之)
http://sankei.jp.msn.com/world/news/140507/kor14050711050001-n4.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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