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신문은 지난 2000년 8월 22일자에서 기밀해제된 미 국립공문서관의 자료를 토대로 당시 정황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1951년에 체결된 대일강화조약에 즈음하여 처음에 한국은 전승국의 일원으로 명기되어 조인식에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당시 요시다 시게루 총리와 미국의 존 델러스 특사와의 회담으로 인해 조약 체결 5개월 전에 전승국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1949년 조약 초안의 연합국 명단에는 한국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51년 4월 23일 요시다 시게루 총리는 미국측 조약초안 담당자 존 포스터 델러스와의 비밀회담을 통해 ‘일본 국내의 조선인들은 거의 대부분이 공산주의자들이다. 그들이 평화조약의 수혜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한국이 조인국으로 참가하게 되면, 일본은 어이없는 청구금액 소송에 휩싸일 것이다’라고 주장해 미국측이 이 제안을 수용하고, 한국은 전승국 명단에서 빠지게 된다…”
한일협정에 언급된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제2장 영역 제4조 재산 a항”에는 ‘제 2조에 해당하는 지역에 있는 연합국, 또는 그 국민의 재산이 아직 반환되어 있지 않은 경우 시정을 담당하고 있는 당국이 반환하지 않으면 안된다(第2条に掲げる地域にある連合国又はその国民の財産は、まだ返還されていない限り、施政を行つている当局が現状で返還しなければならない)’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본문 중 제2조에 등장하는 연합국에 한반도는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된다면,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의거해서 한반도는 대일청구의 권리및 독립국, 연합국의 일원임이 명백해지는데 정작 조인식에는 참여할 기회도, 발언권도 얻지 못한 셈이다.
결국은 돈 때문이었다. 구두쇠 일본이 어마어마한 배상금을 주기 싫어 미국에 로비해 한국이 또 손해를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