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적이 고성(固城)[2]·죽림(竹林)·거제(巨濟)를 침구하자 합포(合浦)의 천호(千戶) 최선(崔禪)과 도령(都領) 양관(梁琯)등이 전투를 벌여 격퇴하고 적 3백여 명을 죽였는데, 왜적의 침구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 《고려사》 충정왕 2년|}}
이 운명적인 언급 이후, 고려와 왜구의 관계는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이 기록이 언급하고 있는 1350년부터 고려 왕조가 역사상에서 사라진 1391년까지, 장장 40여년 동안 총 394건이나 되는 왜구의 침공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이 왜구에 대한 공격은 이 40년 동안 1353년, 1356년, 1368년, 1386년의 단 4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발생하였다.
현재 오랑캐 원나라의 국운은 이미 끝났으나 변방사막의 백성들은 아직 한꺼번에 통치할 수가 없는 형편이며 짐의 군대가 아직 요동과 심양지역으로 출동하지 않았기에 그 틈을 타 광포한 자들이 가끔 나타날 것이 예상된다. 그놈들이 중국의 근심거리는 되지 않겠지만 고려를 소란하게 만들까 우려된다. 하물며 왜놈들이 십년 넘게 바닷섬을 휘젓고 다녀 고려왕국의 모든 사정을 세세히 알고 있으리니 이것 또한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국왕이 그들을 물리치려 할 경우, 깊은 해자와 높은 보루 및 충분한 비축물자가 없으면 사방에서 원병이 오더라도 적들의 예봉(銳鋒)을 꺾고 사로잡지 못할 것이다." ─ 《고려사》 공민왕 19년|}}
명나라도 왜구 문제에 이후 골머리를 앓긴 하지만, 명사(明史) 일본전(日本傳)을 보면 왜구가 본격적으로 명나라를 괴롭히기 시작한것은 1369년이고, 명사 태조본기에서도 1369년에 왜구가 산동을 공격한 기록이 있다. 따라서 주원장이 왜구 문제로 고려에 대해 걱정하는 뜻을 보였을 당시에는 명나라에서는 왜구가 아직까지는 아주 큰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여하간 고려를 침공하는 왜구는 명나라에서까지 유명세를 떨칠 정도였다

수 천년 한반도의 동반자 였던 ..중국 ....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