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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과 남경대학살(193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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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나라에서는1936년 : 손기정,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우승; 일장기 말소사건
1937년 : 황국신민서사 제정; 신사참배 강요; 화신백화점 개점중일전쟁의 폭발점이 되었던 노구교.

중일전쟁의 폭발점이 되었던 노구교.일본의 관동군은 노구교 사건을 일으켜 중국침략의 빌미로 이용했다. 사진은 노구교를 경비하는 중국 병사.

중일전쟁은 이른바 노구교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1937년 7월 7일 북경 서남 교외의 노구교, 일명 마르코폴로 브릿지 근처에서 몇 발의 총성이 울렸다. 일본군은 근처에서 야간연습을 하고 있었다. 발포가 어느 쪽에서 이루어졌는지 불분명했지만 일본은 이 총격을 일본에 대한 중국의 도발행위로 간주하고 즉각 보복공격을 퍼부었으며 일본정부는 중국정부에게 사죄 및 발포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만일 이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대규모의 군대를 동원하겠다는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다.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는 이 조건을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노구교 사건 이후 몇 차례의 충돌이 있었지만 현지에서는 정전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내각회의를 열어 이 사건을 중국이 계획적으로 일본에 무력 대항한 것으로 단정하고 중대결정을 했다는 발표를 했다. 그 중대결정이라는 것은 곧 전쟁이었다.

일본 내의 군대들이 속속 중국에 파견되었으며 8월 13일에는 상해로 전쟁이 확대되었다. 1937년 8월 15일 일본의 고노에 내각은 "지나군(중국군)의 폭력을 응징하여 남경정부의 반성을 촉구하기 위해 지금 단호한 조치를 취할 때에 이르렀다"고 발표하여 전면전을 선포했다. 이른바 중일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중일 양국의 군대는 치열한 전투를 계속했으며 11월에 일본군은 국민정부의 수도이자 중국의 중요거점인 남경을 점령하기에 이른다. 중일전쟁이 시작된 지 6개월여 만인 12월 13일이었다. 국민정부가 떠나간 남경에는 전쟁의 화를 피해 각지에서 모여든 난민과 주민들이 무방비상태로 남게 되었다. 5만여 명의 일본군이 장악한 남경에서는 이때부터 약 2개월 동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잔인한 학살과 rape 등 차마 입에 올리기조차 끔찍스러운 온갖 잔학행위가 일본군에 의해 자행되었다. 일본인의 만행은 거기에 가담했던 일본군인, 그것을 목격한 일본인 종군기자, 외국인 기자들에 의해 생생한 증언으로 밝혀졌다. 그것은 차마 인간의 탈을 쓰고는 할 수 없는 잔혹한 짓이었다.

다음은 죽음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중국인의 증언이다.

"부두에 도착하자 날이 어두워졌다. 일본군은 우리를 20명씩 한데 묶었다. 묶고 나면 바로 기관총으로 쏴 갈겼다. 나는 앞에 있어서 다른 사람을 따라 강으로 뛰어들었다. 총소리가 계속 귀를 때렸다. 기관총 소리가 멈추고 일본군은 한 사람씩 총검으로 찔렀다. 죽지 않고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총검질이 끝나자 시체들을 불로 태웠다."

〈아사히 신문〉의 한 기자는 그가 목격했던 것을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부두에는 시커멓게 탄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일본군은 시체를 한 구씩 강물에 내던지고 있었다. 신음소리, 시뻘건 피, 경련하는 손발···."

"넓은 강 위엔 온통 시체였다. 강변에도 시체가 높이 쌓여 끝이 안 보였다. 시체 중에는 군인은 물론 일반 백성, 어린아이까지 있었다. 시체는 강물을 따라 하류로 흘러내려갔다."

수십 년이 지난 뒤 이 학살에 가담했던 일본군인의 일기가 우연히 발견되었는데, 그 일기에는 "요즘 심심하던 중 중국인을 죽이는 것으로 무료함을 달랬다. 죄 없는 중국인들을 산 채로 매장하거나 장작불에 밀어 넣어 몽둥이로 때리거나 혹은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다"라고 쓰여져 있다. 전쟁터에 강제로 내몰려져 이미 인간성이 파탄된 상처받은 민초의 모습이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 기자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남경 점령은 일본군에게 있어서 정치 ·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이 군사적 승리는 야만적 잔혹행위, 포로들의 대량학살, 강탈, rape 및 양민학살로 일본민족의 명예에 오점을 남겼다."

1946년 극동국제군사재판, 이른바 도쿄 재판 판결에 따르면, 이 때 살해된 사람만도 비전투원 1만 2천 명, 패잔병 2만 명, 포로 3만 명 등이고, 근교로 피난 간 시민 5만여 명 등 합계 13만여 명이 2개월 동안 살해되었다. 그러나 이 숫자는 최소한의 것이고 실제로는 30여만 명이 살해되었을 것이라고 하는데 물론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중국의 유명한 작가의 한 사람인 임어당은 이 전쟁의 참사를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이후 오늘에 이르러 처음으로, 병사들이 웃는 얼굴로 어린아이를 공중으로 던졌다가 떨어져 내려오면 날카로운 총검의 끝으로 받아내고는 그것을 스포츠라 부르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또한 포로가 눈이 가려진 상태로 참호 옆에서 총검술 등과 같은 훈련의 표적으로 사용되었다."

일본군의 만행은 남경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점령한 곳은 어디에서든 계속되었다. 일본 군부는 왜 이러한 만행을 유도, 조장, 혹은 방치했을까? 방치라고 하기에는 2개월이라는 시간이 너무 길다. 어떠한 경우라도 중국을 확실히 정복하고야 말겠다는 무언의 강력한 선언이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지나치며 어리석다. 그 무자비한 폭력 앞에 인간이 잠시 숨을 죽일 수는 있을지언정 영원히 침묵할 수 있겠는가?

일본군은 1938년 5월에는 서주를 점령했으며 10월에는 무한, 광주 등을 점령했다. 남경의 국민당 정부는 일본을 피해 무한으로 옮겼다가 다시 중경으로 수도를 옮겼다. 국민당 정부가 떠난 자리에 남겨진 민중들은 자력으로 항일 자위조직을 만들어 일본군에 대항하게 되었다. 팔로군은 이들을 지원하면서 해방구를 키워나갔다. 일본은 중국의 주요부분을 점령하였으나, 실제로는 점과 선에 불과했고 넓은 농촌은 항일유격대가 통제하고 있었다. 일본군은 서남 지역으로 후퇴한 국민정부 측에도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지 못한 채 전선이 교착되었다.

짧은 시간 내에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하려 했던 일본의 의도는 빗나갔다. 남경대학살이라 이름 지어진 일본인들이 던졌던 사상초유의 무리수는 일본의 역사에 커다란 불명예로, 인류의 역사에는 지울 수 없는 의문점으로 남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피에 굶주린 지옥의 병사들 - 중일전쟁과 남경대학살(1937년) (중국사 다이제스트 100, 2012.3.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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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中戦争と南京大虐殺(1937年)

あの時我が国では1936年 : 孫基禎, ベルリンオリンピックでマラソン優勝; 日の丸抹消社でも
1937年 : 皇国臣民誓辞制定; 神もうで強要; 化身デパート開店日中戦争の爆発店になった老身校.

日中戦争の爆発店になった老身校.日本の関東軍は老身校事件を起こして中国侵略の言葉尻で利用した. 写真は老身校を驚備する中国兵士.

日中戦争はいわゆる老身校事件で始まった. 1937年 7月 7日北京西南郊外の老身校, 一名マルコポーロブリッジ近くで何足の銃声が鳴らした. 日本軍は近くで夜間演習をしていた. 発砲がどっちで成り立ったのか不明だったが日本はこの銃撃を日本に対する中国の挑発行為で見做して直ちに仕返し攻撃を浴びせたし日本政府は中国政府にお詫び及び発砲責任者処罰を要求した. もしこの要求条件が受け入れられなければ大規模の軍隊を動員するという脅迫まで躊躇しなかった.

張介石の国民党政府はこの条件を聞き入れ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立場を確かにした. 老身校事件以後何回の衝突があったが現地では停戦協定が締結された. しかし日本は内閣会議を開いてこの事件を中国が計画的に日本に無力対抗したことで淑やかで重大決定をしたという発表をした. その重大決定というのはすぐ戦争だった.

日本内の軍隊たちが続々と中国に派遣されたし 8月 13日には傷害で戦争が拡がった. 1937年 8月 15日日本の河野に内閣は ¥"経つね(中国軍)の暴力を戒めて南京政府の反省を促すために今断固たる措置を取る時に至った¥"と発表して全面戦争を宣布した. いわゆる日中戦争が本格的に始まったのだ.

中日両国の軍隊は熾烈な戦闘を続いたし 11月に日本軍は国民政府の首都と同時に中国の重要拠点である南京を占領するのに至る. 日中戦争が始まってから 6ヵ月あまりぶりの 12月 13日だった. 国民政府が立ち去った南京には戦争の火を避けて各地で集まって来た難民と住民たちが無防備状態で残るようになった. 5万名余の日本軍が掌握した南京ではこの時から約 2ヶ月の間想像することができない位の残忍な虐殺と rape などどうしても口にあげることさえひどいあらゆる残虐行為が日本軍によって恣行された. 日本人の蛮行はそこに加わった日本軍である, それを目撃した日本人従軍記者, 外国人記者たちによって鮮やかな証言で明かされた. それはどうしても人間の面がかぶってからは言えない残酷な仕業だった.

次は死の中で九死一生に生き返えた中国人の証言だ.

波止場に到着すると日が暗くなった. 日本軍は私たちを 20人ずつ一所縛った. 縛ってからはすぐ機関銃でざあっとぶんなぐった. 私は前において他人に付いて川で跳びこんだ. 銃声がずっと耳を殴った. 機関銃音が止めて日本軍は一人ずつ銃剣で突いた. 死んでいなかった人々が悲鳴を上げた. チォングゴムジルが終わると死骸たちを不老乗せた.

〈朝日新聞〉の一記者は彼が目撃したことを次のように証言している.

波止場には真っ黒く弾死骸が山盛りのように積もっていた. 日本軍は死骸を一句ずつ川水にほうり出していた. うなり, 真っ赤な血, ひきつけする手足・・・.

広い川の上にはいちめん死骸だった. 川辺にも死骸が高く積もって終りが見えなかった. 死骸の中には軍人はもちろん一般民, 子供までいた. 死骸は川水を注いで下流で下がって行った.

数十年が過ぎた後この虐殺に加わった日本軍人のおこるのが偶然に発見されたが, その日記には ¥"このごろ退屈だった中中国人を殺すことで退屈さをなぐさめた. 罪のない中国人たちを買ったまま埋葬するとか薪の火に押し入れて棒で殴るとかあるいは残忍な方法で殺した¥"と使われている. 戦地に強制で追い出されられてもう人間性が破綻された傷受けた閔初の姿だ.

アメリカの 〈ニューヨークタイムズ〉 記者は次のように使っている.

¥"南京占領は日本軍において政治 ・ 軍事的に非常に重要だった. しかしこの軍事的勝利は野蛮的残酷行為, 虜たちのホロコースト, 強奪, rape 及び良民虐殺で日本民族の名誉に汚点を残した.¥"

1946年極東国際軍事裁判, いわゆる東京裁判判決に従えば, この時殺害された人だけも非戦闘員 1万 2千名, 敗残兵 2万名, 虜 3万人などで, 近郊に戦乱を避けて住まいを移した市民 5万名余など合計 13万名余が 2ヶ月の間殺害された. しかしこの数字は最小限の物で実際では 30余万人が殺害されたはずだと言うのにもちろん正確な数字は誰も分からない.

中国の有名な作家の一人である臨御当たりはこの戦争の惨事を次のように使っている.

¥"神さまが人間を創造した以後今日に至って初めで, 兵士らが笑う顔で子供を空中に投げてから落ちて下れば鋭い銃剣の終りに受け出してからはそれをスポーツだと呼ぶ姿を見たのだ. そしてまた砲でが目が選り分けられた状態でざんごうの隣で銃剣術などのような訓練の標的に使われた.¥"

日本軍の蛮行は南京で止むのではなく占領した所はオデ−エソでも続いた. 日本軍部はどうしてこのような蛮行を柔道, 助長, あるいは捨ておいただろうか? 放置と言うには 2ヶ月という時間がとても長い. どんな場合でも中国を確かに征腹したあと巻くという無言の力強い宣言だったと言うにはとてもひどくて愚かだ. その無慈悲な暴力の前に人間がしばらくかたずをのむことはできようとも永遠に黙ることができるか?

日本軍は 1938年 5月には西株を占領したし 10月には無限, 光州などを占領した. 南京の国民党政府は日本を避けて無限に移してからまた中経に首都を移した. 国民党政府が去った席に残された民衆たちは自力で抗日自慰組職を作って日本軍に対抗するようになった. 八路軍はこれらを支援しながら解放口を育てて行った. 日本は中国の主要部分を占領したが, 実際では点と線に過ぎず広い農村は抗日遊撃隊が統制していた. 日本軍は西南地域で後退した国民政府側にも決定的な打撃を加え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まま電線が膠着された.

短い時間内に戦争を勝利で仕上げようと思った日本の意図は外れた. 南京大虐殺と名前建てられた日本人たちが投げた史上初めの無理数は日本の歴史に大きな不名誉で, 人類の歴史には消すことができない疑点で残るようになった.

[ネイバー知識百と] 血に飢えた地獄の兵士ら - 日中戦争と南京大虐殺(1937年) (中国史ダイジェスト 100, 2012.3.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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