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제25대 왕인 무령왕의 후손인 일본왕의 소원은
자신의 선조인 무령왕릉을 참배하는 것이지요w
자손으로써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것을 못하면 평생의 한이 될 것이다ww
한국은 이러한 인간으로써의 도리까지 막을 생각은 없다ww
오히려 일본왕의 방문을 환영할 것이지만 일본의 우익들이 이러한 것을
싫어하므로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w

백제 무령왕릉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각종 보물들w
* 무령왕
성은 부여, 이름은 사마, 혹은 융, 시호는 무령이다. 이름을 따서 사마왕이라고도 하며,
중국의 양서에서는 성과 이름을 합해 여융이라고도 나타내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동성왕의 둘째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일본서기에는 문주왕의 동생인
곤지의 아들로 동성왕과는 이복형제 사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백제는 고구려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긴 뒤 매우 큰 혼란에 빠져 있었으며,
전염병이 창궐하는 등 백성들의 삶도 피폐해져 있었다.
무령왕은 고구려의 남하에 맞서 국방 체제를 정비하는 한편,
백성들의 삶을 보살피려 노력하였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달솔 우영을 시켜 5천의 병사를 이끌고 고구려 수곡성을 공격케 했으며,
이듬해에도 군사를 보내 고구려의 변경을 침공하였다.
512년(무령왕 12)에는 고구려가 가불성과 원산성을 공격해오자 무령왕은 직접 기병 3천을
거느리고 나가서 이를 물리쳤다.
한편, 무령왕은 백제의 왕들 가운데 출생과 사망 연대가 처음으로 정확히 확인되는 왕이기도 하다.
공주 송산지 고분군에서 발견된 무령왕릉의 지석에는 무령왕을 “영동 대장군 백제 사마왕”이라고
나타내고 있으며, 그가 62세 때인 계묘년 오월병술삭칠일에 죽었고, 2년 뒤인
을사년(525년) 팔월계유삭십이일에 대묘에 안장했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