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퇴위"로 군국주의 시도 일본 우파에 제동 건 아키히토 일왕
왜 일왕이 갑자기 사퇴 결심을 했을까. 일본 안팎에서는 아베 신조 총리를 겨냥하기 위한 카드가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아베 총리의 평화헌법 개정에 반대했던 아키히토 일왕이 총리를 견제하기 위해 꺼내든 카드라는 분석이다. 만약 일왕이 생전 퇴위를 하게 되면 아베 정권이 필요한 법 정비 등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전쟁 수행 조항을 명문화 하기 위한 개헌이 지연될 수 밖에 없다. 세간의 관측처럼 아키히토 일왕의 승부수가 통할지, 일본 국민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비교적 한국에 친근감을 표시해 왔다. 그는 왕세자 때 “한국을 한번 가보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1989년 즉위 후 회견에서 “(방한) 기회가 있다면 이해와 친선관계 증진에 노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2012년 9월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쓰루오카 고지(鶴岡公二) 당시 외무성 종합외교정책국장에게 “언제인가 우리 부부가 한국을 방문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만류로 아직까지 아키히토 일왕은 한국 땅을 밟지 못했다.
아키히토 일왕이 한국에 친근감을 표시한 이유는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백제계의 후손으로 믿고 있다. 2001년 68회 생일을 맞이한 그는 기자회견장에서 “간무(桓武)왕(재위 781~806년)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는 사실이 ‘속일본기’에 기록돼 있다”며 “한국과 깊은 인연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또 왕실에 한국 요리사를 초청해 김치·잡채파티를 열고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다 사망한 고 이수현씨를 소재로 다룬 영화도 관람했다. 그의 당숙인 아사카노미야(朝香宮誠彦王)는 2004년 충남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아키히토 일왕은 수 차례 일제의 조선 침략을 반성했다.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만난 그는 “일본 때문에 초래된 불행했던 시기에 한국인들이 겪었던 괴로움을 생각하면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통석의 염은 ‘애석하다’는 뜻의 우회적 표현으로 사과는 아니라는 비판을 받았다.
1994년 3월에 그는 지금은 고인이 된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나서 “한반도 여러분께 크나큰 고난을 안겨준 시기가 있었다”며 “몇 해 전 이에 대해 깊은 슬픔을 표명했고 지금도 변함없는 심정”이라고 언급했다. 2005년 6월에는 미국령 사이판의 한국 전몰자 위령지인 ‘한국평화기념탑’에 참배했다.
이 같은 아키히토 일왕의 모습은 급격히 우경화하는 아베 총리의 행보와 대조를 이뤘다. 아키히토 일왕은 지난해 8월 도쿄에서 열린 ‘전국전몰자추도식’에 참석해서도 “앞선 제 2차 세계대전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런 그의 모습들은 평화를 지키려는 노력으로 평가를 받았다. 따라서 그의 퇴위 의사는 의도된 승부수인지 알 수 없지만 역설적이게도 극우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아베 정권에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