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의사의 의거라고 하는 것은 당대의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장개석이 말하기를 "우리 중국의 일개 군단이 이룰수 없는 일을 조선인 한명이 해냈다."라고 말했습니다.
윤봉길의사는 중국인들에게는 위대한 이름으로 기억되기 시작하였고 그러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비로소 자금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활성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 윤봉길을 많이 흠모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윤봉길의사의 홍구공원의 의거는 바로 상해사변의 한가운데에서 일어났다는데 세계사적 의의가 있습니다.
이 홍구공원의 의거라고 하는 것은 역사적 맥락, 전체적인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1931년 만주사변이 터지면서 일본이 만주국이라는 가상의 나라를 만들어 차지합니다.
그리고 호시탐탐 중국의 강남까지 진출해서 중국의 전역을 자기들이 지배하고 싶어하는 대동아 공영권의 야욕을 완전히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그때에 김구선생이 생각하기에 조금 더 효율적인 투쟁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한인애국단을 조직해서 이런 의열투쟁을 치밀하게 계획을 합니다.
그래서 1932년초에 이봉창이라는 사람을 시켜서 동경 한복판에서 일황 히로히토가 지나갈때 폭탄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폭탄이 불발로 끝나서 결국은 계획이 불충분해서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중요한것은 여러신문에서 보도가 된 내용은
"한인이봉창저격일황불행부중"(韓人李奉昌狙擊日皇不幸不中)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깝게도 불행하게도 들어 맞지 않았다."라고 대서특필하고 사방에 이 "불행부중(不幸不中)"이라는 말이 나돌게 되었습니다.
중국사람들은 "일황 히로히토를 쏴죽였더라면 얼마나 좋겠냐"
이것이 사람죽여서 좋다는게 아니라 얼마나 일본사람들이 악독한 짓을 하고 살았으면 세상에 그 일본의 천황이 죽는 것을 이렇게 고대하고 있었겠습니까?
그런상황에서 일본사람들은 "불행부중(不幸不中)"이라는 말에 화가났습니다.
그래서 "이 중국놈들 싹쓸이 해야 한다."이러고 있는 판에 일본에서 주 상해 일본공사의 시게미쯔라는 사람이 살고있는 저택을 가짜로 자기들이 방화해서 불을 지르고 "중국놈이 불을 질렀다." 그것을 핑계로 상해를 침공합니다.
엄청난 군대가 와서 침공하는데 중국 국민당의 잘싸우는 부대가 잘 막았는데 장개석이 공산당과의 투쟁이 더 중요하다고 해서 싸우지 못하게 방해를 해서 결국은 상해가 일본에게 점령되었습니다.
그리고 상해를 점령한 전승 기념일을 히로히토의 생일날에 맞춰서 이 홍구공원에서 자기의 위대한 대제국의 위용을 과시하는 행사를 하는 자리에 윤봉길의 폭탄이 "꽝"
기미가요가 울려퍼지고 거기서 천황만세를 부르는데 물통에서 슈류탄 핀을 뽑아서 던져버리니까 아수라장이 되고 10여명이 중상을 입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때 그 중국사람들이 얼마나 속이 후련했는지 그건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장개석은 "우리가 일개 군단도 못한위업을 25세의 청년이 이걸 달성하다니 장하도다 장하도다 장쾌하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윤봉길의 폭탄 투척사실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 사건으로 인해서 어떻게 구조적으로 역사가 바뀌어 갔느냐 이게 중요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이 이 사건으로 인해서 전세계에 알려지게 되고 그래서 임시정부로 돈이 들어오게 됩니다.
자금이 유입되면서 우리 독립운동이 40년대까지 활성화 될수 있는 기반을 윤봉길 의사가 마련했다는 것이 위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윤봉길의사의 생명 하나로 인해서 얼마나 그 많은 생명이 구원을 얻을 수 있으며 동시에 우리 독립운동의 모든 열사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 주고 광복군의 활동으로 이어지기까지 그 정신이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