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언론은 자국 중심적이며 배타적인 사고방식에 빠진 나머지 일본의 왕실이 한국의 왕실과 혈연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솔직하게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일본 언론은 상업화의 영향으로 국민의 관점이 아니라 광고주의 입장에서 보도하고 있으며, 폐쇄된 기자실을 통해 정부와 밀착돼 주로 정부의 입장을 전하고 있습니다. 일본 언론은 또한 자국의 주변국 침략 역사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아 젊은이들의 역사적 무지를 유도하고 있습니다.”이 같은 매우 비판적 발언은 지난해 11월 25~26일 한국언론재단의 주최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아시아 언론학자와 언론인들이 모인 국제 저널리즘 학술대회에서 나왔다. 발언의 주인공은 일본 도시샤 대학의 와타나베 다케사토(渡邊武達) 교수. 와타나베의 지적은 한·중·일 3국과 싱가포르·태국·몽골 등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온 26명의 언론인·언론학자들이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토론한 자리에서 나왔다. 필자는 와타나베 교수가 당시 행한 ‘일본 언론의 발전과 도전’이라는 발표문과 그와의 e메일 교환으로 모은 정보를 근거로 ‘일본 언론의 문제점’을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한다.
-지난해 11월 일본 항공자위대의 다모가미 도시오(田母神俊雄) 막료장이 일본군은 국제협정에 의해 정당하게 중국과 한국에 진출(주둔)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제출해 물의를 빚었습니다. 당시 일본 언론의 보도를 평가해 주세요.
“저는 언론학자로서 일본 언론이 다모가미 사건을 보도하는 데에 상당히 무책임했다고 평가하며, 동시에 일본 언론이 ‘표현의 자유’에 관한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고 진단합니다. 일본 언론은 공평성과 객관성을 잘못 알고 있으며, 그들은 언론의 책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일본과 아시아 역사를 공부하더라도 과거 군부통치 하의 일본이 행한 수많은 행동들을 침략이라고 규정짓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 언론들은 다모가미 사건 보도에서 ‘찬성, 반대, 중립’이라는 기계적 형태로만 전달했을 뿐, 사실을 점검하고 타당한 해석을 통해 진실에 도달하려는 언론의 자율성을 찾을 수 없습니다. 아사히 신문 11월13일자를 보아도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객관적 사실을 보도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왜 잘못됐나요.
“언론이 발생한 사건만을 전달하고 독자들(시청자들)에게 평가나 판단을 맡기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미디어는 사건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독자가 사건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의미나 맥락까지 넣어서 보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공중의 신뢰를 배신하는 것입니다. 1947년 미국의 허친스 보고서(Hutchins Report)는 언론이 이런 해설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시했습니다. 다수의 양심적인 일본 언론인들은 이 같은 언론의 당위론적 역할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광고 수입 감소로 인해 강요된 비용 절감 차원, 인터넷의 영향, 정치·경제계 유력 인사들의 영향력 등으로 현재 이들의 양심이 실현될 수 없습니다. 언론인들의 이런 양심이 실천되지 못한다면 일본의 저널리즘은 ‘존재 이유(raison d"etre)’를 상실할 것입니다. 일본 언론은 지금까지 자민족 중심의 배타적이며 민족주의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향후 언론은 이런 협량한 민족주의적 견해를 확산시킬 게 아니라 지구촌의 발전을 위한 글로벌한 가치체계를 확산시켜야 합니다.”
-구체적 사례를 들어 설명해 주십시오.
“일왕 헤이세이(平成)가 2001년 12월23일 자신의 생일을 맞아 일본의 왕실은 한국의 왕실과 밀접한 혈연 관계를 갖고 있다고 말했으나 일본 언론은 그의 발언을 거의 무시했습니다. 왕실 사람들의 언행을 시시콜콜 보도했던 관행으로 보아 이것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당시 아사히 신문만 1면이 아닌 2면 또는 3면의 하단에 작게 그의 발언을 기사화했습니다. 한 한국인 학생은 저에게 한국 언론은 1면 머리기사 등으로 크게 보도했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의 왕실이 혈연 관계 등 여러 측면에서 한국의 왕실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역사적 사실이며 이 점은 일본의 역사학자들도 부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일본·중국이 역사적으로 강한 문화적 유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일본 언론은 한국인과 중국인을 차별하려는 자국의 주류 사상 때문인지 그 발언을 크게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일본 언론은 축구 기사를 더 크게 썼습니다. 이것을 보면 일본의 미디어는 잠재적으로 강력한 ‘일본 중심주의(Japanese centrism)’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고 추측됩니다.” (와타나베 교수는 영어 발표문에서 ‘일본 왕’에 대해 ‘황제(emperor)’라고 칭했다.)
-일본 언론도 상업화돼 있습니까.
“일본내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은 상업적 미디어입니다. 따라서 언론은 광고주의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있으며, 독자(시청자)의 시각은 거의 언론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O.J. 심슨 사건의 보도 사례에서 본 바와 같이 상업화된 미디어는 선정주의로 빠져들기 쉽습니다. 극심한 시청률 경쟁으로 인해 NHK는 1992년 거짓으로 가득찬 <무스탕 티벳(Mustang Tibet)>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했고, 간사이TV는 <발굴! 생활백과사전>에서 “일본식 메주콩(낫토, 納豆)이 젊은 여성의 다이어트에 좋다”는 근거없는 내용을 방송했습니다. 일본의 상업 방송들은 광고수입의 유지-확대를 위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습니다. 공영방송인 NHK는 국회 예산심의에서 정치인들을 설득하기에 유리한 입장을 점하고 방송사의 ‘존재 이유’를 과시하려는 목적 등으로 시청률에 목을 맵니다. 이런 행태는 ‘공익’이라는 원칙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일본 상업텔레비전 방송의 주요 시간대 프로그램 중 80%가 오락 종류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와타나베 교수는 지난해 12월 필자에게 자신과 미국인 탐사기자 애덤 갬블(Adam Gamble)이 공저한 영문 저서 <배신당한 공중-내부에서 살펴본 일본 미디어의 잔학성과 이것이 서방세계에 주는 경고>(A Public Betrayed --An Inside Look at Japanese Media Atrocities and Their Warning to the West. 2004)를 보내주었다. 이 책은 ‘난징 대학살 흐리기 및 진정한 언론인 공격하기’ ‘옛 성(性)노예를 다시 공격하기: 두 번째 저지르는 강간’ 등 매우 공격적 제목으로 일본 언론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있다.
필자는 제임스 팰로스(James Fallows)의 <뉴스 파괴하기>(Breaking the News. 1997)나 로버트 맥체스니(Robert McChesney)의 <부유한 미디어, 가난한 민주주의>(Rich Media, Poor Democracy. 2000) 등 미국 언론학자나 전·현직 언론인들이 자국 언론의 문제점을 비판한 책들은 여러 권 접했다. 하지만 NHK의 전직 언론인 가와사키 야스시(川崎泰資)가 쓴 (일본어판, 2000. 아사히 문고)이나 와타나베의 <배신당한 공중>처럼 일본인이 일본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한 글은 별로 접하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공영(公營)방송’이라고 하지 않고 ‘공공(公共)방송’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와타나베 교수는 “얼마 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에서 이라크 기자의 신발 공격을 받았을 때 일본 언론은 왜 이런 행위가 발생했는지 충분히 맥락을 설명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와타나베는 “일본 언론이 난징 대학살 사건을 호도하는 보도 등을 통해 일본인들이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없도록 만들고, 일본인만을 위한 편협한 민족주의를 부추겨 한국이나 중국을 경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왜 일본 언론이 종군 위안부에 대해 공격적으로 보도합니까?” “일본의 정치·경제 지도자들은 과거 군국통치의 비행(非行) 기록을 지워 버리기를 원하고 있어요. 요즘 젊은이들이 과거 전쟁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야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보호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와타나베교수의 설명을 들으니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총리의 진실하지 못한 최근 언행이 이해됐다. 한겨레신문 2009년 1월7일자 15면에 의하면 아소 총리는 2006년 11월 가문의 기업인 ‘아소 광업’이 2차대전 당시 조선인들과 연합군포로를 강제로 동원해 노역을 시켰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후생노동성이 최근 관련 자료를 공개하고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간사장이 중의원 본회의에서 질의를 하자 사실을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