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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동대사(東大寺)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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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奈良) 동대사(東大寺)에서 크게 놀라는 관광객들

그 절과 불상은 백제·신라 후손이 만들어 준 것 / 월간 아리랑

김정동(목원대 교수, 문화재 전문위원)

 

크기에 놀라는 관광객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일본 중부 지방을 여행하게 되면 거의 대다수가 들르는 절이 하나 있다. 나라(奈良)의 동대사(東大寺; 도다이지)이다. 관광객들은 이 절의 대불전(大佛殿)을 보고 매우 놀란다. “왜 이렇게 크지… 일본 것은 작다는데…”하며 당황스러워 한다. ‘왜(倭)’ 라는 말, ‘축소지향’ 따위의 단어에 오랫동안 길들여져 있기에 일본에서 큰 것을 보면 당황하는 것이다.

필자도 오래 전(1981.8.14) 동대사에 갔을 때 너무 놀라서 입을 닫을 수가 없었던 적이 있다. 동대사 전역도 그렇지만 그 큰 대불전 안에는 또한 엄청난 크기의 시커먼 대불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이름도 대불(大佛: 다이부츠)이라고 했던가? 대불은 인간의 왜소함을 가르쳐 주고 있는 듯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대불전의 내진주 기둥을 기어서 들락거린다. 재미로 하는 짓이지만 스스로의 작음을 재인식하게 해주는 일기도 했다. 언젠가 후지산에 갔을 때도 “일본은 참 큰산을 가졌구나” 하고 혼자 말했던 적이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본 그 산은 아름답기보다는 오히려 커서 나를 압도했다. 어떤 사물을 한 단어로 정의 내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다시한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참 교육이 중요하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겼었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전해주는 것이 참 역사 교육이라고 생각되었다. 특히 한일 관계에서는-.

동대사의 비밀?
얼마전 아사히 신문사에서는 ‘대불(大佛) 개안(開眼) 1250년 동대사의 모든 것 전(展)’을 개최한다고 보도했다(2002.4.17). 나라 공원 내에 있는 나라국립박물관에서 열릴 이 전시회(2002.4.20-7.7)의 보도기사에는 동대사를 만든 스님들의 이름이 거명되어 있었는데 필자의 주목을 끈 사람은 행기(行基, 668-749)와 양변(良弁, 로우벤; 689-773) 스님이었다. 기사 중 그림 하나도 눈을 끌었는데 그것은 일본 남북조시대의 그림인 ‘사면어영(시조우노미에, 四聖御影)’이었다. 이 그림은 동대사의 안내 책자에도 이미 실려 있는 것인데, 동대사와 대불 조성에 관여한 네 사람을 그린 것이다. 여기에도 행기와 양변 스님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러면 그 스님들은 누구인가? 오늘의 숙제인 것이다.

동대사는 나라시대(奈良時代)에 세워졌다. 동대사란 절 이름은 ‘나라 동쪽의 관대사(官大寺)’란 뜻으로 지었다. 일종의 국립 가람으로 당시 일본으로서는 중요한 정부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일본 인구 5백만 명이던 시절 동원된 인력만도 2백만이 넘었다. 대역사였던 셈이다.여기서 ‘나라시대’는 710년부터 794년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직전까지를 말하는데 백제·신라와 깊은 관계가 있을 때였다. 동대사는 743년 착공된다. 불교가 백제에서 일본으로 전래한 것이 552년인데 거의 2백년이 지난 때의 일이다. 이미 신라에서는 676년 부석사가, 715년에는 불국사에 다보탑과 석가탑이 그리고 720년에는 황룡사 9층탑이 각각 건립되었다.

그즈음 일본에 세워졌던 절은 667년의 관세음사(觀世音寺)가 최초이고 741년에 세워진 국분사(國分寺)가 두 번째 쯤 되고 있었다. 동대사는 그후 최초·최대의 절이 되는 것이다.
이 절 짓기에 백제계의 행기와 양변 스님이 앞장섰고 백제·신라계의 건축가들이 그들을 뒷받침 했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이 절을 중국인의 도움을 받아 일본 정부가 세운 것이라고 호도하고 있다. 어떤 자료에도 백제·신라계의 주도로 세워졌다라고는 적혀 있지 않다. 동대사의 비밀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행기와 양변 스님
일본 교과서에 행기 스님의 이름이 나타나는 것은 나라시대의 ‘천평문화(天平文化)’가 꽃필 무렵이다. 당시 일본은 불교 국가였다. 일본인들은 행기를 ‘교키’라고 불렀다. 행기는 백제계로 일본에 건너 간 왕인(王仁) 씨 계족(系族)의 후손이었다. 행기의 조부는 왕진이(王辰爾)라는 이름의 선사(船使)였다. 배를 전문으로 하는 직업이었다. 왕진이는 나니와(難波; 오사카 지방)의 항구를 개척한 사람이었다. 그는 고구려 자(尺)를 가지고 일본의 항만을 개척해 준 은인인 것이다.


행기는 668년 오늘날 오사카 부근, 사카이(堺)시 가원정(家原町)에 있는 가원사(家原寺)에서 백제 왕족 고지재지(高志才智)와 백제 여인 봉전(蜂田)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는 가와치(河內) 지방 대조군(大鳥郡) 가원 땅이었다.(홍윤기, 『행기 큰 스님』, 자유문학사, 1996) 그즈음 왕(王) 씨가 고지(高志) 씨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일본화한 것이다. 따라서 행기 스님의 성은 백제의 왕씨이기도 하고 고지 씨이기도 하다. 행기는 15세에 출가하여 나라 야쿠시지(藥師寺)에서 신라 승 혜기(惠基)로부터 ‘유가유식론’을 배웠으며, 18세 때는 아스카지(飛鳥寺) 남쪽 선원에서 백제 승 도소(道昭, 629-700)로부터 배운다. 도소는 행기와 인척관계에 있었다.


행기는 22세 때 백제 승 의연(義淵, ?-728) 밑으로 들어간다. 금종(金鐘)이라는 어린이를 돌보면서였다. 그 어린이는 금취(金鷲)라고도 불렸다. 아베(阿部) 씨 집안의 아이였다. 4세기 경 아스카 지방을 지배했던 백제인 아직기(阿直岐)의 후손인 것이다. 이 어린이가 후에 커서 행기 스님의 뒤를 이어 동대사를 마무리한 양변 스님이다.

행기는 24세 때 백제 승 덕광(德光)법사로부터 구족계를 받고 정식 스님이 된다. 29세 때부터는 일본 전역에 불교를 포교, 사회사업을 벌인 최초의 스님이 된다. 그는 이후 아스카 지방에 49개에 이르는 크고 작은 절을 짓는다. 오사카와 교토 지방의 강에 가교(架橋), 치수(治水) 하는 일도 벌여 공을 쌓는다. 행기는 건축과 토목의 승려였던 셈이다. 그는 지도도 만들어 일본 최초의 전국지도인 「행기도(行基圖)」(805년)를 남겼다. 이는 일본 지도 제작의 효시가 된다. 행기도는 「연력(延曆) 24년 여(輿) 지도」 혹은 「행기 일본도」라고도 한다.


행기는 738년 71세 때 조정으로부터 다이토쿠(大德)라는 칭호를 받는다. 그즈음 의상대사의 제자인 심상(審祥)대덕도 모신다. 심상 대덕은 양변 스님의 금종사(金鐘寺)에 머문다. 행기 스님은 이후 불사에 힘을 쓴 공로와 동대사와 대불 건립에 진력한 공로로 745년 1월 21일 대승정에 올라 상인(上人)이라 호칭된다. 생전에 보살(菩薩)이란 칭호도 얻었다. 행기 화상은… 전국 각지의 고을이며 시골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교화시켰다.…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다투어 모여들었다.… 그는 몸소 제자들을 거느리고 피해를 입은 여러 곳에다 다리를 세우고 제방을 쌓았다. 사람들은 모두들 찾아와서 그의 일을 협력해 주었다.그렇게 민중들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은덕을 입어 오고 있다.… 행기 화상이 머무르는 곳에는 어디나 수도하는 수도장이 섰다. 일본 각지에 모두 49개소에 이른다.


행기 스님의 불업(佛業)이 가마쿠라(鎌倉)에도 남아 있다. 가마쿠라의 스키모토사(杉本寺)에는 후지와라(藤原)시대의 ‘십면관음입상(十面觀音立像)’의 부분이 남아 있는데 이것은 행기 스님이 전해 준 것이라고 한다. 가마쿠라 불교는 민중과 깊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는 행기 스님이 원효대사와 같은 민중의 편에 섰던 스님이라는 것과 연결되는 일이다. 행기 스님은 749년 2월 2일 그가 세운 49원의 하나인 스가와라사(菅原寺)에서 82세를 일기로 열반한다. 그리고 2월 8일 생구산(生駒山)의 동릉(東陵)에서 화장된다. 행기를 뒤이어 양변 스님이 동대사 불업의 총책임자 자리를 이어 받는다. 양변 스님도 앞서 말한대로 역시 백제계의 스님이었다. 백제의 학문승이었다고 한다.(김달수, 『일본 속의 한국문화 유적을 찾아서』, 2, 대원사, 1997)

양변 스님은 먼저 동대사 자리에 금종사를 짓는다. 금취사라고도 했다. 현재 동대사의 별당인 삼월당(三月堂)이 금종사 금당 자리에 해당한다. 금취사는 그즈음 신라의 건축 대가로 불리던 저명부백세(猪名部百世, 708-778)가 지은 것이다. 저명부의 가문은 5세기 중엽에 신라에서 왜로 건너 간 유명한 건축가 집안이었다. 저명부 가문에서 또 한 분의 그 옛날 왜 나라 왕실 목공이던 역사적 인물은 ‘저명부진근(猪名部眞根)이라는 건축가였다. 저명부진근은 큰 돌판 위에다 손도끼를 가지고 나무를 깎았는데, 워낙 솜씨가 빼어나서 도끼가 돌판에 부딪치는 일이 없어 도끼날이 빠지지 않고 항상 말짱했다. 매일처럼 진근은 왕궁에서 궁전 짓는 일을 했다.(홍윤기, 『행기 큰 스님』, 자유문학사, 1996) 그들 모두는 신라의 원효대사(617-686), 의상대사(625-702)와 동시대의 인물들이었다.

 

동대사 세워지다
751년 9월 동대사의 금당(金堂)인 대불전이 준공된다. 큰 기둥 84본으로 세워졌다. 같은 해 신라의 경주에서는 불국사가 준공되고 있다. 두 절의 나이가 같은 것이다. 이를 볼 때 백제와 신라의 건축가와 조불사(造佛師)들이 동대사의 집짓기에 영향을 주었음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본존인 대불은 이듬해인 752년 4월 9일 개안 공양되는데 금동불로 만들어진 것이다. 구리 74만 근이 들어갔다. 경복(敬福, 638-766)이 이 동불 주조에 크게 시주했다. 경복은 백제의 귀족 창성(昌成)의 친손자로 왜 동북부의 무츠(陸奧) 지방을 다스리던 권력자였다. 불상은 앉은 키 15미터 얼굴 길이가 5미터나 되어 속칭 대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원래의 이름은 ‘비로사나불(毘盧舍那佛)’이다. 15미터 짜리 불상은 중국의 운강석굴(雲岡石窟, 14-16미터), 용문석굴(龍門石窟, 17미터)에 버금가는 것이다.

“이 불상을 몸소 조각한 조불사는 한국인 국공마려(國公麻呂, 712-774) 조불장관(造佛長官)입니다. 국공마려 장관의 할아버지는 백제에서 덕솔 벼슬을 하던 국골부라는 고관입니다. 그리고 거대한 비로자나대불(毘盧遮那大佛)을 모신 대불전의 웅장한 건물을 지은 절 목공 역시 한국 사람입니다. 그 분은 신라인 저명부백세입니다.… 그러니까 이 동대사 가람은 고대 한국인들이 힘을 합쳐 만든 것입니다.”(홍윤기, 앞책, 1996)  저명부백세는 종5위하라는 고관으로 동대사 건축의 책임자였다. 여기서 국공마려는 국중련공마려(國中連公麻呂)를 말하고, 비로자나대불은 비로사나불(毘盧舍那佛)을 말하는 것이다. 동대사의 대불전과 여러 건축물들, 그리고 대불은 백제계의 두 스님의 주도로 백제와 신라의 기술자들이 함께 만든 것이다. 일종의 백제사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고려판 화엄경 소장
이 큰 절과 불상은 만들어진 지 1백년이 지난 855년 2월 지진과 화재로 파괴된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다. 바닥에 나뒹굴던 불상의 머리 부분은 6년 후인 861년에야 다시 제 자리에 올려 질 수 있었다. 그 일 자체가 큰 일이었다. 이후에도 내전으로 대불전을 비롯한 목조 건물들은 반파, 전파되기를 계속한다. 에도시대인 1709년에도 다시 수리 복원된다. 이미 여러 차례 개보수가 되고 있는 것이다. 메이지 시대인 1868년 3월 28일에는 신불(神佛)분리정책이라는 것이 생겨 동대사는 버려지고 황폐해 진다. 이후 1980년 10월 대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된다. 대불은 불체(佛體) 자체와 대좌(臺座)가 창건 당시의 것이지만 양손과 머리 부분은 당시의 것이 아니고 후세에 계속 보수된 것이다.


오늘 우리가 보는 대불전은 당시의 것이 아닌 1709년 이후의 것이다. 창건 당시 규모의 3분의 2규모 정도로 축소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것도 전면 57미터, 깊이 50미터, 높이 48미터로 세계 최대 규모의 목조건축물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동대사는 일본불교 화엄종(華嚴宗)의 대본산이 되어 있다. 그 안에는 수많은 국보·중요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는데 우리와 관계된 것은 ‘고려판 화엄경 수소연의초(隨疏演義 )’뿐이다. 이 서적(書跡)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행기와 양변 스님의 흔적
이제 동대사 경내로 들어가 보자. 제일 먼저 중층(重層)의 남대문을 통과해야 한다. 역시 중층인 중문(中門)을 거치면 대불전이 나오고 대불을 볼 수 있다. 대불전을 나서 오른쪽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행기당(行基堂)이 있다. 행기당 뒤로는 양변 스님의 어영당(御影堂)인 개산당(開山堂)이 있다. 그 뒤쪽에는 국보인 삼월당이 있다. 그 제일 높은 쪽에는 양변 나무(良弁杉)가 있다.


일본인들은 오래 전부터 행기와 양변을 제사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을 일본 사람으로 알고 지내는 제사였다. 뒤늦게 1263년 3월에는 행기의 사리 공양이 대불전에서 열렸다. 양변 스님은 773년 12월 16일 입적했는데 동대사는 그의 기일을 지금도 잘 지켜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교과서에는 행기와 양변 스님의 이름이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있다. 교과서에 있든지 없든지 두 나라 사람 대부분은 행기와 양변 스님을 잘 모르고 있다. 더구나 그들이 백제계라는 것도-.

[근대사현장]

번역문보기

日本トンデサ(東大寺)の起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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긶깛긐긎궼 738봏 71띘궻렄궻뮧맢궔귞뫞뱦뗦(묈벩)궴궋궎뤝뜂귩롷궚귡. 궩궻궟귣귽긖깛묈럗궻믫럔궳궇귡릕륂(륱뤜)묈벩귖럅궑귡. 릕륂묈벩궼뿼뺃궓뻍궠귪궻씈뢢롊(뗠뤲럾)궸궴궵귏귡. 긶깛긐긎궓뻍궠귪궼댥뚣븾럷궸쀍귩궰궘궢궫뚻쁉궴긣깛긢긖궴묈븾뙕뿧궸궰궘궢궫뚻쁉궳 745봏 1뙉 21볷묈몀맫궸뤵궕궯궲룮릐(뤵릐)궴뚁뤝궠귢귡. 띪맊궸뺤랥(뺤랥)궴뙻궎(궻궼)뤝뜂귖벦궫. 긶깛긐긎귘궚궵궼갷 멣뜎둫뭤궻뫚귘밹q귩궇귏궺궘뺖궖됷귟궶궕귞, 딎뫝궻릐갲귩떝돸궠궧궫.갷 뛱궘룋궟궴궸뫝궘궻릐갲궕몚궯궲뢜귏궯궲뿀궫.갷 붯궼렔귞믫럔궫궭귩]궑궲뷀둙귩뷀궯궫뫝궘궻룋궸뫉귩뙕궲궲믥뻞귩먑귪궬. 릐갲궼둊릕궺궲뿀궲붯궻럅럷귩떐쀍궢궲궘귢궫.궩궻귝궎궸뼬뢔궫궭궼뜞볷궸럧귡귏궳붯궻돳벩귩뭶궲뿀궲궋귡.갷 긶깛긐긎귘궚궵궕궴궵귏귡룋궸궼궵궞궳귖뢇벞궥귡롵뱒뤾궕뿧궯궫. 볷{둫뭤궸둊 49깣룋궸궻귍귡.


긶깛긐긎궓뻍궠귪궻븉떾(븾떾)궕뒜몈(뒜몈)궸귖럄궯궲궋귡. 뒜몈궻긚긌[긾긞긣[롊(릻{럾)궸궼Fujiwara(뱻뙱)렄묆궻 갻긘긳~깈깛긐@깛긂귽긳긖깛긐(뽋듡돶뿧몴)갽궻븫빁궻럄궯궲궋귡궻궸궞귢궼긶깛긐긎궓뻍궠귪궕`궑궫궞궴궬궴뙻궎. 뒜몈븾떝궼뼬뢔궴[궋듫똚귩댸렃궢궲뿀궫. 궞귢궼긶깛긐긎궓뻍궠귪궕뙰얎묈럗궻귝궎궶뼬뢔궻뺇궸~귏궯궫궓뻍궠귪궴궋궎궻궴똰궕귢귡럷궬. 긶깛긐긎궓뻍궠귪궼 749봏 2뙉 2볷붯궕뿧궲궫 49긂긅깛궻궿궴궰궻긚궕깗깋긖(맀뙱럾)궳 82띘귩볷딯궳읁왦궥귡. 궩궢궲 2뙉 8볷긜깛긐긐긖깛(맯뗯랹)궻긤깛긐깑깛긐(뱦쀋)궔귞됌몤궠귢귡. 긶깛긐긎귩덙궖똯궋궳뿼뺃궓뻍궠귪궕긣깛긢긖븉떾궻몟먖봀롌먊귩롷궚똯궙. 뿼뺃궓뻍궠귪귖멟뢲궢궫궴궓귟귘궯궾귟뷨띙똚궻궓뻍궠귪궬궯궫. 뷨띙궻긪긞긏깛긚깛긐궬궯궫궴뙻궎.(뗠쓮, 걑볷{궻뭷궻듰뜎빒돸댿먘귩릕궺궲걒, 2, 묈뙶럾, 1997)

뿼뺃궓뻍궠귪궼먩궸긣깛긢긖먊궸씈뢢롊귩띿귡. 뗠릤럷궴귖뙻궯궫. 뙸띪긣깛긢긖궻빶벐궳궇귡랳뙉궬(랳뙉벐)궕씈뢢롊뗠벐먊궸궇궫귡. 뗠릤럷궼궩궻궟귣륷뾽궻뙕뭱뫮돽궸뚁궽귢궫뮊뼹븫뷨띘(뮇뼹븫뷨맊, 708-778)궕띿궯궫궻궬. 뮊뼹븫궻됄뽩궼 5맊딬뭷뾲궸륷뾽궳`궸뱊궯궫뾎뼹궶뙕뭱됄됄궬궯궫. 뮊뼹븫됄뽩궳귏궫덇릐궻궩궻먎궻궶궨뜎돞렭뽜뛊궬궯궫쀰럍밒릐븿궼 갻]~깈깛긐긳긙깛긐깛(뮇뼹븫^뜧)궴궋궎뙕뭱됄궬궯궫. ]~깈깛긐긳긙깛긐깛궼묈궖궋됷귡뭝뤵궸궶궫귩렃궯궲뽜귩랁궯궫궕, 궇귪귏귟쁱멟궕궦궽뵴궚궲궕긤깑긬깛궸귆궰궔귡럷궕궶궘궲궻볷궕뙁궔궠궶궋궳궋궰귖뼰뙁궬궯궫. 뻽볷궻귝궎궸긙깛긐깛궼돞{궳{밶띿귡럷귩궢궫.(긼깛갋깇깛긎, 걑긶깛긐긎묈궓뻍궠귪걒, 렔뾕빒둾럍, 1996) 붯귞둊궼륷뾽궻뙰얎묈럗(617-686), 귽긖깛묈럗(625-702)궴벏렄묆궻릐븿궫궭궬궯궫.

 

긣깛긢긖뿧궲귞귢귡
751봏 9뙉긣깛긢긖궻뗠벐(뗠벐)궳궇귡묈븾밶궕뢹뛊궠귢귡. 묈궖궋뭽 84{궳뿧궲귞귢궫. 궻귝궎궶볷륷뾽궻떍몪궳궼븾뜎럾궕뢹뛊궠귢궲궋귡. 볫궰궻먥`봏궕벏궣궻궬. 궞귢귩뙥귡렄뷨띙궴륷뾽궻뙕뭱됄궴몾븾롊(몾븾럗)귞궕긣깛긢긖궻됄몾귟궸뎓떯귩^궑궫궞궴귩뙥먑궯궲뙥귞귢귡.


{뫖궳궇귡묈븾궼뾺봏궻 752봏 4뙉 9볷둎듻떉{궠귢귡궻궸뗠벟븾궳띿귞귢궫궻궬. 궇궔궕궺 74뼔궓귝궩궕볺궯궲뛱궯궫. 똹븵(똦븶, 638-766)궕궞궻뱦븫귩뮃몾궸묈궖궘{롥궢궫. 똹븵궼뷨띙궻딲뫎뤉맰(뤉맟)궻볙뫕궳궵궎궢궲뱦뻢븫궻긟(뿤돏) 뭤뺴귩렊귕궫뙛쀍롌궬궯궫. 븾몴궼띆궯궫봶 15긽[긣깑딁뮮궠궕 5긽[긣깑귖궶궯궲뫋뤝묈븾궴궋궎뼹멟궕븊궋궫. 뙰갲궻뼹멟궼 갻긮깓긖긥긳깑(뷌쏧q볗븾)갽궬. 15긽[긣깑븾몴궼뭷뜎궻긂깛긊깛긐긞긏긐깑(_돦먐똀, 14-16긽[긣깑), 뿳뽩먐뙄(뿳뽩먐똀, 17긽[긣깑)궸쀲귞궶궋궻궬.

갾궕븾몴귩렔귞뮘뜌궢궫몾븾롊궼듰뜎릐긐긞긏긕깛긐}깏깈(뜎뚺뻸쁂, 712-774) 몾븾뮮뒸(몾븾뮮뒸)궳궥. 긐긞긏긕깛긐}깏깈뮮뒸궻궓뽮궠귪궼뷨띙궳벩뤐귩뒸륟귩궢궫긐긞긏긕|깑긳궴궋궎뛼뒸궳궥. 궩궢궲땺묈궶긮깓긗긥묈븾(뷌쏧롏볗묈븾)귩럅궑궫묈븾밶궻뾜묈몊뙲궶뙕븿귩뙕궲궫궓럾뽜뛊귘궼귟듰뜎릐궳궥. 궩궻뺴궼륷뾽궳궇귡뮊뼹븫뷨띘궳궥.갷 궬궔귞궞궻긣깛긢긖돻뿑궼뛼쀭묈둾듰뜎릐궫궭궕쀍귩뜃궢궲띿궯궫궻궳궥.갿(긼깛갋깇깛긎, 귺긳`긃긞긏, 1996)  뮊뼹븫뷨띘궼뤲5궫귕궬궴궋궎뛼뒸궳긣깛긢긖뙕뭱궻먖봀롌궬궯궫. 궞궞궳긐긞긏긕깛긐}깏깈궼긐긞긏긛깛긐깏깈깛긕깛긐}깏깈(뜎뭷쁀뚺뻸쁂)귩뙻궯궲, 긮깓긗긥묈븾궼긮깓긖긥긳깑(뷌쏧q볗븾)귩뙻궎궻궬. 긣깛긢긖궻묈븾밶궴뫝궘궻뙕뭱븿궫궭, 궩궢궲묈븾궼뷨띙똚궻볫릐궻궓뻍궠귪궻롥벑궳뷨띙궴륷뾽궻땆뢱롌궫궭궕덇룒궸띿궯궫궻궬. 덇롰궻뷨띙롊궬궴뙻궑귡궻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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뜞볷럡궫궭궻뙥귡묈븾밶궼뱰렄궻븿궳궼궶궋 1709봏댥뚣궻븿궬. 몁뙕뱰렄딮뽎궻 3빁궻 2딮뽎댧궸뢫귏궯궫궻궬. 궢궔궢뜞궻븿귖멣뽋 57긽[긣깑, [궘 50긽[긣깑, 뛼궠 48긽[긣깑궳맊둉띍묈딮뽎궻뽜몾뙕뭱븿궸댾궋궶궋궻궬. 긣깛긢긖궼볷{븾떝됗셑@(됗뙲@)궻묈{랹궸궶궯궲궋귡. 궩궻뭷궸궼딎뫝궻뜎뺬갋뢣뾴빒돸띭궕룋뮮궠귢궲궋귡궻궸럡궫궭궴똚궯궫궞궴궼 갻뛼쀭붎됗뙲똮릣멹뎶`룊(寧`뎶`@)갽궬궚궬. 궞궻룕먒(룕먘)궼뢣뾴빒돸띭궸럚믦궠귢궲궋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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볷{릐궫궭궼궦궋귆귪멟궔귞긶깛긐긎궴뿼뺃귩띟J귩뛱궯궲궋궫궻궬. 귖궭귣귪볫릐귩볷{릐궳빁궔궯궲됡궟궥띟J궬궯궫. 덇뺖뭯귢궲 1263봏 3뙉궸궼긶깛긐긎궻럡뿕떉{궕묈븾밶궳둎궔귢궫. 뿼뺃궓뻍궠귪궼 773봏 12뙉 16볷볺먒궢궫궕긣깛긢긖궼붯궻딖볷귩뜞귖귝궘롧궯궲뿀궲궋귡. 궢궔궢럡궫궭떝됆룕궸궼긶깛긐긎궴뿼뺃궓뻍궠귪궻뼹멟궕멣멢땽_궠귢궲궋궶궋. 떝됆룕궸궇귣궎궕궶궋궴궔뿼뜎릐묈븫빁궼긶깛긐긎궴뿼뺃궓뻍궠귪귩귝궘빁궔귞궶궋. 궩궻뤵궸붯귞궕뷨띙똚궴궋궎궻귖-.

[뗟묆럍뙸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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