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10월, 일본 도쿄의 한 경매장에 시선을 끄는 유물 한 점이 나타났다. 선조가 임진왜란 당시 김시민 장군의 업적을 기리며 내린 교서 "김시민 선무공신 교서(金時敏 宣武功臣 敎書)"다.

가로 287cm, 세로 38.4cm인 "김시민 선무공신 교서"의 앞부분에는 김시민 장군의 업적이, 뒷부분에는 김시민 장군을 포함해 임진왜란에서 공을 세워 선무공신으로 올려진 열여덟 장군의 이름이 기록돼 있다. 김시민 선무공신 교서는 이순신 선무공신 교서를 비롯해 지금까지 전해지는 7개의 선무공신 교서 가운데 가장 상태가 좋아 유물적 가치가 높다.
김시민 장군은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성 대첩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웅은 아니다. 그런데 일본은 이순신 장군이나 권율 장군에게 패한 것보다 김시민 장군에게 진 것을 훨씬 더 비중 있게 기록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진: KBS ‘TV 조선왕조실록’ (1997.09.30) 자료 화면)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은 조선의 최대 곡창지대인 호남을 차지하려고 김시민 장군이 지키는 진주성을 공격했다. 당시 일본군 병력은 3만 명, 조선 군은 3,800명에 불과했다. 병력으로 보면 일본군이 이길 것이 뻔한 싸움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김시민 장군을 필두로 한 우리 군은 진주성을 지킬 수 있었을까.
진주 백성과 의병이 자발적으로 힘을 보태고, 김시민 장군이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심리전을 효과적으로 펼쳤기 때문이다. 김시민 장군은 탁월한 전략가였다. 전투에 여자와 노인을 총동원해 남장이나 변장을 시켜 모두 병사로 보이게 했다.
게다가 활을 쏘는 듯한 모습의 허수아비를 세워 일본군이 허수아비를 적군으로 알고 총을 쏘도록 유도해 적들의 총알을 바닥냈다. 밤이 되면 구슬픈 가락으로 피리를 불어 일본군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오랑캐가 허술한 틈을 타서 진주성을 공격해온다는 보고를 듣고 급히 달려 본진으로 달려 들어오니…밤낮을 잊고 싸움을 독려하고 지모(智謀)와 계략(計略)을 냄이 더욱 기묘(奇妙)하였으며, 약한 군사로써 오히려 강한 적을 제압하였도다."
-김시민 선무공신 교서 中-
당연히 이길 것으로 생각했던 전투에서 대패한 일본은 "뜻하지 않은 패배"를 안긴 김시민 장군에 대한 기록을 다른 사람의 것보다 더 많이 남겼다. 특히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진주성 공략에 실패한 장수 7명에게 크게 화를 내고, 진주 목사 김시민의 목을 베어오라는 특명까지 내렸다.
교서는 김시민 장군 종가에 전해져 내려오다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유출된다. 이후 2005년 11월, 도쿄에서 경매품으로 등장한 교서는 일본인 고서점상에서 1,200만 엔(당시 약 1억 원)에 낙찰된다.
이듬해인 2006년 1월, 경남의 한 지역일간지가 이런 사정을 알리면서 진주 시민들은 교서를 환수하기 위해 모금을 시작한다.
또, 같은 해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환수 운동이 전국적으로 알려져 전 국민이 교서 환수를 위해 힘을 모았다. 결국, 2006년 7월 24일 "김시민 선무공신 교서"를 돌려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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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심사정 촉잔도권, 경천사지 10층 석탑, 김시민 선무공신 교서
오는 15일 방송되는 KBS "천상의 컬렉션"(저녁 7시 10분 방송, KBS 1TV)에서 개그맨 서경석이 "김시민 선무공신 교서"를 소개한다. 배우 김수로는 "심사정 촉잔도권"을, 배우 최여진은 "경천사지 10층 석탑"을 소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