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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원래 조선 땅" 뒷받침하는 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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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지도 제작자들이 그린 동북아지도에 명기

[오마이뉴스오문수 기자]

▲  일본국회도서관에 소장된 <대청황여전도> 모습으로 조선지도 아래 대마도가 명기돼 있다 ⓒ 김문길


"대마도는 원래 조선 땅입니다. 그런데 독도도 일본 땅이라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한 달 전 독도방문길에 만났던 김문길 교수가 "대마도는 조선 땅"이라는 자료를 보내며 한말이다. 부산외국어대학에서 일본어를 강의했었던 김 교수. 일본 국립교토대학과 고베대학원에서 한일관계사를 전공한 분으로 일본어가 능통하다.

김 교수는 20여년간 일본에서 독도를 연구했고 일본인이 제작한 고지도와 고문서를 발견·연구해 일본인들에게 "독도는 조선땅"이라고 강연하고 있다. 공로를 인정한 보훈청에서는 그를 독도를 강연하는 국가 교수로 임명하기도 했다.

▲  김문길 교수 모습. 한 달여전 이사부기념사업회원들과 함께 독도를 방문하기 위해 코리아나호 선상에서 강의하던 모습이다. ⓒ 오문수


일본에서 수많은 자료를 수집해 대한민국 정체성을 알리기 위해 애쓰는 그가 이번엔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자료를 보내왔다. 김 교수가 보낸 자료 내용이다.

18세기말 중국 "청"나라 시절 서양지도학자들이 출판한 "대청황여지도"... 대마도는 조선 땅 명기 돼

중국 청나라시절 지도가 완성된 것은 서양의 측량술이 들어오면서부터다. 1688년 청나라 강희제는 중국 북방과 조선, 일본을 정확히 알기 위해 새로운 지도를 편찬하기로 작정했다.

당시 서양에서는 측량술에 의해 새로운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학자들이 멀리 떨어진 동양까지 와서 지도를 제작할 리는 만무했다. 다행이 지도제작을 원하는 강희제의 소원을 이루어줄 사람들이 나타났다.

천주교를 포교하려는 예수회 선교사들... 강희제의 요구에 부응해 지도 제작해

▲  청나라 강희제 시절 제작한 <십육성구변도> 의 <조선도>부분에 나오는 조선지도로 대마도가 나와있다 ⓒ 김문길


유럽의 천주교인들은 동양에도 천주교를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중국에 천주교를 알리는 건 쉽지 않았다. 포교를 위한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중국통치자인 강희제의 제안을 받아 측량술을 가르쳐주기 위해 입국했다. 이들은 포교활동과 더불어 중국 만주일대와 러시아 등지를 다니며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서양예수교 선교단 가운데는 역학을 전공한 ?루비스토가 있었고, 지도제작에 능한 프랑스 학자 쟈루튀가 있었다. 이들이 6년간 각지를 돌아보고 1796년에 내놓은 지도가 <십육성구변도(十六省九邊圖)>이다.

지도 제작 후 강희제는 죽고 후임 건융제가 동판으로 그려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십육성구변도에는 원래 중국지도, 러시아지도, 조선지도가 있다. 당시 만든 지도를 보면 방위호가 최초로 있고 조선지도에 대마도를 그렸다. 김 교수가 자신의 주장을 덧붙였다.

"<대청황여전도(大靑皇輿全圖)>는 서양의 측량술이 들어오기 전에 그린지도로 서양 측량술로 조사할 때 모델로 사용한 것입니다. 서양측량술로 그린 십육성구변도에도 조선지도에 여전히 대마도를 넣어 그렸습니다"

일본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지만 쉬쉬하는 편이고 독도는 한국땅이라 주장하는 단체의 일원들이 대마도도 과거에는 조선 속국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태풍으로 표류해 대마도를 거쳐 귀국한 현정스님..."대마도인들, "우리도 조선인이다"라고 주장했다"

1817년 11월 16일 경주 기림사에서  불상을 싣고 해남 대흥사로 향하던 현정스님은 태풍을 만나 오시마 섬에 표류했다가 대마도를 거쳐 7개월 만에 귀국한 후 <일본표해록>을 남겼다. <일본표해록> 67페이지와 68페이지에 보면 흥미로운 기록이 적혀있다.

▲  태풍으로 일본에 표류해 7개월간 머물다 귀국한 현정스님이 쓴 <일본표해록>. 기록속에는 대마도인들로부터 "우리도 조선인이다"라고 들었던 말을 기록한 글이 있다. ⓒ 오문수


"대마도 사람들은 대부분 조선어가 능하였다. 우리를 보러온 사람들 대부분이 "우리도 조선인이다"라고  하였다. 평소의 언어는 조선어와 일본어였으며, 한 번도 일본을 본국이라 말한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에 도착한 후에 동래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대마도는 본래 우리 땅이며 그 사람들도 우리나라의 자손이라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대마도 사람들이 와서 "나도 조선사람"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1796년 청나라에서 출판한 <십육성구변도>와 현정스님이 쓴 <일본표해록>이 출간된 1821년 사이에는 25년의 간극이 있지만 거의 동시대로 볼 수 있다. 약 200여년전 대마도가 우리 땅이었다는 주장과 기록도 있었는데 독도마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인들을 냉정하게 되돌아볼 때이다.

 

대마도 반납해라 도둑 倭寇 J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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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対馬島は元々朝鮮地" 裏付ける古地図

西洋誌も製作者たちが描いた北東アジア指導に銘記

[oh my news誤文数記者]

▲ 日本国会図書館に所長された <大青皇不変も> 姿で朝鮮誌も下の対馬島が銘記されている c。 金文起を


"対馬島は元々朝鮮地です. ところで独島も日本地だと言ったらなさけないです."

一ヶ月前独島訪問の旅程に会った金文起を教授が "対馬島は朝鮮地"という資料を送って述べた言葉だ. 釜山外国語大学で日本語を講義した金教授. 日本国立京都大学と神戸大学院で韓日関係詞を専攻した方で日本語がうまい.

金教授は 20余年間日本で独島を研究したし日本人が製作した古地図と古文書を発見・研究して日本人たちに "独島はゾソンタング"と講演している. 功労を認めたボフンチォングでは彼を独島を講演する国家教授に任命したりした.

▲ 金文起を教授姿. 一ヶ月前ぐらい引っ越し部記念事業会院たちとともに独島を訪問するためにコリアナ号船上で講義した姿だ. c。 誤文数


日本で幾多の資料を収集して大韓民国アイデンティティを知らせるために労力する彼が今度は対馬島が私たちの地という資料を送った. 金教授が送った資料内容だ.

18世紀末中国 "請い"国時代西洋指導学者たちが出版した "大青皇余地も"... 対馬島は朝鮮地銘記になって

中国清時代指導が完成されたことは西洋のツックリャングスルが入って来るからだ. 1688年清ガングフィゼは中国北方と朝鮮, 日本を正確に分かるために新しい地図を編纂することに決心した.

当時西洋ではツックリャングスルによって新しい地図を描いていた. しかし学者たちが遠く離れた東洋まで来て地図を製作するはずがなかった. 幸いが地図製作を願うガングフィゼの願いを遂げてくれる人々が現われた.

カトリックを布教しようとするイエズス会宣教師たち... ガングフィゼの要求に応じて指導製作して

▲ 清ガングフィゼ時代製作した <シブユックソンググビョンも> 義 <朝鮮も>部分に出る朝鮮指導で対馬島が出ている c。 金文起を


ヨーロッパの天主教人たちは東洋にもカトリックを知らせたかった. しかし中国にカトリックを知らせるのは易しくなかった. 布教のための良い方法がないか悩むところに中国治者であるガングフィゼの提案を受けてツックリャングスルを教えてくれるために入国した. これらは布教活動といっしょに中国満洲一帯とロシア等地を通って地図を描き始めた.

西洋キリスト校宣教団の中では易学を専攻した ?ルビストがあったし, 地図製作に上手いフランス学者ジャルトイがあった. これらが 6年間各地を見回って 1796年に出した指導が <シブユックソンググビョンも(十六省九辺図)>だ.

指導製作後ガングフィゼは死んで後任ゴンユングゼが銅版で描いて世の中に出すようになった. シブユックソンググビョンドには元々中国誌も, ラッシュアジも, 朝鮮指導がある. 当時作った地図を見れば防衛号が最初であって朝鮮指導に対馬島を描いた. 金教授が自分の主張を付け加えた.

"<大青皇不変も(大青皇輿全図)>は西洋のツックリャングスルが入って来る前にグリーン指導で西洋ツックリャングスルで調査する時モデルに使ったのです. ソヤングツックリャングスルでグリーンシブユックソンググビョンドにも朝鮮指導に相変らず対馬島を入れて描きました"

日本学者の間ではこんな事実が分かっているがもみ消す方で独島は韓国の地だから主張する団体の一員たちが対馬島も過去には朝鮮属国だから主張しています"

台風で漂流して対馬島を通して帰国したヒョンジョンお坊さん..."対馬島だって, "私たちも朝鮮人だ"と主張した"

1817年 11月 16日競走ギリムサで仏像を積んで海南大興寺に向けたヒョンジョンお坊さんは台風に会うよ島に漂流してから対馬島を経って 7ヶ月ぶりに帰国した後 <イルボンピョヘロック>を残した. <イルボンピョヘロック> 67ページと 68ページに見るとおもしろい記録が書かれている.

▲ 台風で日本に漂流して 7ヶ月間とどまって帰国したヒョンジョンお坊さんが使った <イルボンピョヘロック>. 記録の中には大麻道人たちから "私たちも朝鮮人だ"と聞いた言葉を記録した文がある. c。 誤文数


"対馬島人々は大部分朝鮮語が上手かった. 私たちを見に来た人々大部分が "私たちも朝鮮人だ"と言った. 普段の言語は朝鮮語と日本語だったし, 一番(回)も日本を本国と言ったことがなかった"

我が国に到着した後東莱人々の言葉を聞いて見たら対馬島は本来我が地でありその人々も我が国の子孫だと言った. そうだから対馬島人々が来て "私も朝鮮の人"と言ったことだ"

1796年清で出版した <シブユックソンググビョンも>とヒョンジョンお坊さんが使った <イルボンピョヘロック>が出刊された 1821年の間には 25年の間隙があるがほとんど同時代に見られる. 約 200余年前対馬島が私たちの地だったという主張と記録もあったが独島さえ自分の地だと言い張る日本人たちを冷情に返り見る時だ.

対馬島返りなさい泥棒 倭寇 J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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