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KJCLUB 한일 문화교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gonbei2의 근황은?

조회수 : 533
JA 255 property3 2,811,753

나의 노후도 부모의 노후도 내몫… ‘화려한 싱글’의 삶은 멈췄다

올케는 좋은 사람이에요. 하지만 어머니를 며느리에게 맡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당연히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죠.” 김씨가 말하는 ‘당연히’는 어디서 왔을까.

기혼 자녀들은 배우자와 자식들을 돌보느라 바쁘다. 결혼하지 않고 부모와 정서적·물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비혼 딸들은 부모 돌봄을 책임지는 1순위로 자연스럽게 여겨지게 된다.

“어머니가 그렇게 오래 사실지 몰랐어요. 처음 고관절이 부러졌을 땐 연하곤란(삼킴곤란)으로 식사도 제대로 못하셨어요. 그런데 기적같이 한 해, 한 해 사셨어요.” 김씨는 조카딸과 함께 어머니를 모실 집으로 이사했다. 거동이 불편한 치매 어머니를 노년에 접어들기 시작한 김씨가 홀로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매일 요양보호사가 네 시간씩 찾아오긴 했지만, 나머지 하루 20시간은 김씨의 몫이었다.

가장 힘들 때는 김씨의 몸이 성치 않을 때였다. 한 번은 고관절에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응급실을 찾아가 여러 검사를 받았지만 원인을 찾지 못하고 퇴원했다. “당시 고관절이 빠졌다가 사진을 찍고 검사받는 과정에서 저절로 맞춰진 것 같아요. 아파서 움직이기 힘든데 목발을 짚고 집으로 왔죠. 어머니 대소변도 받아야 하니… 죽을 노릇이었어요.” 거동이 불편한 상황에서 어머니의 용변을 처리하고 씻기다가 두 사람이 함께 욕실에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나도 어머니도 옷 벗고 있었는데… 어떡해요. 남동생에게 급하게 연락을 했죠. 눈 딱 감고 도와달라고….”

■ 비혼 딸의 ‘독박돌봄’

치매는 노인을 어린아이로 되돌려 놓는다. 어린아이가 주 양육자에게 의존하고 매달리듯이, 치매 노인도 주 돌봄자에게 의존한다. 어머니는 김씨와 함께여야만 식사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형제들은 큰 도움이 되질 못했다. “어머니가 ‘안 먹는 치매’였어요. 제가 드려야 겨우 먹는데, 식사하는 데 서너 시간이 걸리기도 했죠. 그러니 꼼짝할 수가 없었어요.”

김씨는 활동적인 사람이었다. 여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죽음에 관심을 갖고 노년과 죽음을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행복한노년문화연구소’를 세우고 강연 등의 활동을 했다. 하지만 어머니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김씨의 삶의 범위는 급격히 축소됐다. 강의도 가까운 곳으로만 다녔고, 중요한 행사가 있어도 갈 수가 없었다. “치매 노인은 누군가 전적으로 매달리지 않으면 힘들다. 개인적 삶이 사라지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어머니를 돌본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결혼을 안 했기 때문에 부모님께 불효랄까, 죄송스러운 마음이 있었어요. 육체적으로 힘든 건 말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지나고 보니 어머니를 모신 건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잃은 것도 많다. 김씨는 6년 전 멈춘 ‘김선숙의 삶’을 되돌리는 중이다. 병실의 간이 책상에는 2012년 출간을 준비하던 책 <사진으로 쓰는 자서전>의 초고가 놓여 있었다. 김씨는 책 출간을 목전에 두고 포기한 게 가장 뼈아프다고 했다.

“60세부터 어머니를 모셨는데 벌써 66세네요. 어느새 할머니가 내 앞에 와 있어요.” 김씨는 자신이 “빈털터리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형제들의 왕래도 소원해지자, 남은 것은 공허함과 아픈 몸이었다. “어머니 돌아가시니까 세상에 나 혼자라는 걸 몸으로 느끼겠더라고요. 비혼인 사람들에게 저는 웬만하면 결혼하라고 해요.” 홀가분해 보이기도, 쓸쓸해 보이기도 하는 김씨가 말했다.

■ 일-돌봄의 위태로운 줄타기

치매 노모를 돌보느라 소진된 김씨가 아프고 외로운 건 ‘비혼’이기 때문일까. 노인 돌봄의 책임을 ‘가족 바깥’에 있는 비혼 자녀에게 손쉽게 떠맡겨 버리는 것이 문제는 아닐까.

치매 어머니와 6년째 함께 살고 있는 박현숙씨(56·가명)는 직장에 다니면서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머릿속은 늘 긴장상태다. 하루 세 시간씩 도와주는 요양보호사가 오후 2시에 돌아가면, 퇴근시간까지 어머니는 홀로 있어야 한다. 매일 저녁 집에 들어갈 때면 “엄마가 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진 후, 수술 후유증으로 치매가 찾아왔다. 처음엔 장남인 오빠가 어머니를 집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집을 떠나 며느리의 돌봄을 받는 걸 어머니가 좋아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쓰러지기 전까지 함께 살던 딸 박씨에게 많이 의지했다. 어머니를 돌보는 문제로 오빠와 갈등이 생겼을 때, 비혼이던 박씨가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왔다. 남동생도 비혼이었지만 자연스럽게 어머니 돌봄은 딸인 박씨의 몫이 됐다.



“처음엔 걱정도 하고 많이 울었어요. 몸도 아프고 정신적으로도 지치고. 그러다 시간이 지나니까 나아지더라고요. 다행히 어머니가 ‘예쁜 치매’예요. 잘 드시고, 박수 치고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시고. 밤에 안 자고 노래를 부르세요.”

약을 꾸준히 복용해 치매 진행이 더딘 어머니에게 박씨는 뜨개질, 멸치 다듬기 등 손을 쓰는 일을 많이 하게 한다.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가까운 복지관으로 나들이도 다닌다. 하지만 다른 길로 새버린 어머니를 잃어버려 근처 파출소에서 찾은 일도 두 번이나 있었다. 여름엔 더워서 기저귀를 하지 않고 외출했다가 대변을 보는 바람에 이웃들에게 민폐를 끼치기도 했다.

박씨는 계속 어머니를 홀로 돌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일을 놓고 어머니 돌봄을 전담한다면 못할 것 같다. 한 사람이 케어를 전담하면 삶이 망가진다고 생각한다”며 “어머니 병이 악화되면 시설에 보내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에게 비혼의 삶에 대해 물었다. “후회하지 않아요. 나는 엄마 한 명 돌보면 되지만, 결혼한 친구들은 남편에 아이에 부모까지 돌봐야 하잖아요.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있지만, 지금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박씨가 말했다.

■ 부모 돌봄은 비혼의 예견된 미래?



현재 부모가 건강한 비혼 여성들은 ‘다가올지도 모르는 미래’를 예감하고 있다. 비혼인 김수진씨(35·가명)는 부모 돌봄이 “100%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김씨의 아버지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실직했다. 그 후 비정규직이나 일용직 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었다. 남동생이 하나 있지만 외국에서 살고 있다. 김씨는 “부모님 스스로 노후를 책임지기 어려운 상황에서 앞으로 경제적인 능력을 얼마나 갖출 수 있을지가 제일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엄마 세대와 내 세대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주변에서 출산 후 경력단절, 독박육아를 하면서 심신이 망가진 친구들을 많이 봤다”며 “정부의 해결 방식이 여성이 모든 걸 감당하면서도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걸 보고 내 세대에서는 해결되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에 비혼으로 살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14세 때 다친 어머니를 돌본 경험이 있다. 김씨는 “아버지가 명예퇴직 후 어머니가 장사를 하다가 다쳐서 오래 누워 계셨다. 당시 나는 미성년자였지만 아버지는 돌봄을 하지 않았고, 내가 남동생과 어머니를 돌봐야 했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딸이니까 엄마가 정서적으로 저에게 의존하는 것도 있고… 저도 엄마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도 생겨요. 애증관계랄까요.”

김씨는 “노후 돌봄 문제를 비혼이든 기혼이든 여성 문제로 미뤄두지 말고 사회적 문제로 인식했으면 좋겠다”며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보호자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의 문제로 접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ㆍ비혼 아들의 이야기 
“어머니 중증 되면 내가 일과 돌봄 중 하나는 포기해야 될까봐 두렵다”

“어머니를 보면 어린애 같단 생각을 해요. 자식이 없다보니…. 쪼글쪼글한 자식을 키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박성식 공공운수노조 정책국장(48)은 치매 어머니와 둘이 산다. 3년여의 결혼생활이 끝난 후 ‘돌싱’이 됐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지내는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됐다. 박 국장은 “혼자 지내실 때 어머니 표정이 어두웠다”며 “이혼한 건 죄송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어머니를 모시고 사니까 좋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비혼화와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부모를 돌보는 비혼 남성도 증가하고 있다. 박 국장도 그중 하나다. 



지난해 여름, 어머니가 날짜를 헷갈려하고, 조금 전 벌어졌던 일을 다시 물어보는 일이 잦았다. 결정적으로 식사 도중 “늬 아버지 이름이 뭐더라”고 묻는 어머니를 보고 이상하다는 걸 확신했다. 아버지와 본인의 남편이 같은 사람이란 걸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치매 초기 진단을 받은 지난해 9월 박 국장은 일을 그만뒀다. 어머니 상태가 악화되던 시기라 옆에서 돌보기 위해서였다. “혼자 있고 정서적으로 불안하면 치매가 급속히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서 옆에서 모시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올해로 88세다. 늦둥이 외아들로 박 국장을 낳았다. 어머니 치매는 아직 초기지만, 치매 진행을 늦추기 위한 약을 먹게 하는 게 큰 일이었다. “치매 증상 가운데 하나가 불신이 심해지는 거예요. 이상한 약을 준다며 드시질 않으려 하더라고요. 다행히 붙이는 패치 약은 거부하지 않아 붙이고 있어요.”

자식이 없는 박 국장에게 누군가를 돌본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모들은 다른 존재를 위해서 에너지를 쏟는 경험을 하는데, 그런 경험이 없으니 미성숙된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어머니를 돌보면서 다른 존재를 보살피는 소중한 경험을 하는 것 같아요.” 그는 씻는 걸 잊는 어머니에게 “세수하라”는 잔소리도 한다. “내가 어머니에게 그런 말을 구사할 줄 누가 알았겠냐”며 웃음을 지었다. 

3개월 동안 어머니 곁을 지킨 박 국장은 1월부터 새 직장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노동조합 일이라 ‘경력단절’로 인한 구직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요양보호사는 주 2회 3시간씩 방문한다. 하루 두 번 안부 전화를 빼먹지 않고 한다. 아직은 일과 돌봄의 양립이 가능하지만, 요양보호사의 방문횟수와 시간이 늘어나길 희망한다. 

어머니를 돌보는 동안은 비혼인 상태를 바꿀 생각이 없다. 그는 “파트너가 생기더라도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감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상태가 악화된다면? 박 국장은 확신이 없다. 그는 “중증으로 가는 게 제일 두렵다. 모든 게 스톱될 거라고 생각한다. 일을 그만두고 돌봄에 집중하거나, 포기하고 요양원에 보내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머니 돌봄을 끝내고 나면 나도 50대가 될 텐데, 그때의 삶은 이전과 같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돌봄을 위해 일을 중단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겠구나, 고령 노동자들이 하는 단순 직무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는 어머니의 정신과 신체가 함께 서서히 소진돼 편히 세상을 떠나길 희망한다.


gonbei2 노처녀로 시골 부모를 돌보는 삶을 산다고 말한 것을 보면 아마도...

원문보기

gonbei2の近況は?

私の老後も親の老後も私の取分… ‘派手なシングル’の生は止めた

今年するように良い人です. しかしお母さんを嫁女に任せることはできないと思いました. 私が当然仕え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ったんです.” 金さんが言う ‘当然’はどこから来ただろうか.

既婚お子さんたちは連れ合いと子たちの面倒を見るために忙しい. 結婚しないで親と情緒的・物理的に密接な関係を結んでいたビホン娘たちは親面倒を見ることを責任を負う 1順位で自然に思われるようになる.

“お母さんがそのように来ると言う暮すかも知れなかったです. 初めて股関節が折れた時は年下困難(サムキムゴンラン)で食事もまともにできなかったです. ところで奇蹟のように一年, 一年暮しました.” 金さんは甥と一緒にお母さんの面倒を見る家に引っ越した. 挙動が不便な痴ほうお母さんを老年に入り始めた金さんが一人きり面倒を見る事は易しくなかった. 毎日療養保護司が四時間ずつ尋ねて来たりしたが, 残り一日 20時間は金さんの分け前だった.

一番大変な時は金さんの体が丈夫ではない時だった. 一番(回)は股関節に極甚な苦痛が尋ねて来た. 応急室を尋ねて多くの検査を受けたが原因を捜すことができずに退院した. “当時股関節が抜けてから写真を撮って検事受ける過程で自然に合わせられたようです. 痛くて動きにくいのに松葉杖をついて家に来たんです. お母さん大小便も受けなければならないから… 死ぬことだったです.” 挙動が不便な状況でお母さんの用便を処理と洗わせている途中二人が一緒にふろ場に倒れる事故が発生した. “私もお母さんも脱いでいたが… どうします. 弟に急に連絡をしたんです. 目ぴったりつぶって助けてくれと言って….”

■ ビホン娘の ‘ドックバックドルボム’

痴ほうは年寄りを子供に戻しておく. 子供が株養育者に寄り掛かってぶら下げられるように, 痴ほう年寄りも株ドルボムザに寄り掛かる. お母さんは金さんと一緒ににすると食事をした. こんな状況で他の兄弟たちは大きい役に立つことができなかった. “お母さんが ‘食べない痴ほう’だったです. 私が差し上げるとやっと食べるのに, 食事するのに三四時間がかかったりしたんです. だから身動き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です.”

金さんはスポーティーな人だった. 妹さんの死をきっかけで死に関心を持って老年と死を研究して博士学位を受けた. ‘ヘングボックハンノ−ニョンムンファヨングソ’を立てて講演などの活動をした. しかしお母さんを面倒を見始めながら金さんの生の範囲は急激に縮まった. 講義も近くだけで通ったし, 重要な行事があっても行くことができなかった. “痴ほう年寄りは誰か全面的にぶら下げられなければ大変だ. 個人的生が消えるのは深刻な問題”と言った.

お母さんの面倒を見たことに対する後悔はない. “結婚をしなかったからご両親に親不孝か, 申し訳ない心がありました. 肉体的に大変なのは言うこともできないが, それでも経ってみたらお母さんの面倒を見たのは福だと思います.”

しかし失ったことも多い. 金さんは 6年前止めた ‘金船宿の生’を戻すところだ. 病室の簡易机には 2012年出刊を準備した本 <写真で書く自敍伝>の草稿が置かれていた. 金さんは本出刊を目前に残してあきらめたのが一番骨身にしみると言った.

“60歳からお母さんを仕えたがもう 66歳ですよね. いつのまにかお婆さんが私の前へ来ています.” 金さんは自分が “無一物になったようだ”と言った. お母さんがお亡くなりになった後兄弟たちの往来も願われると, 残ったことは空虚さと痛い体だった. “お母さん帰るから世の中に私一人ということを身で感じるんですよ. 非婚姻人々に私はできるなら結婚しなさいと言いなさい.” 身軽に見えたり, 寂しく見えたりする金さんが言った.

■ である-ドルボムの危なげな網渡り

痴ほう老母の面倒を見るために消尽された金さんが痛くてさびしいのは ‘ビホン’であるからだろう. 年寄りドルボムの責任を ‘家族外’にいるビホンお子さんに手軽く押し付けてしまうのが問題ではないか.

痴ほうお母さんと 6年目一緒に住んでいる朴賢淑さん(56・仮名)は職場に通いながら療養保護司の助けを借りてお母さんを面倒を見ている. 職場に通いながらも頭の中は常に緊張状態だ. 一日三時間ずつ手伝ってくれる療養保護司が午後 2時に帰ると, 引け時までお母さんは一人きりなければならない. 毎日夕方家に入る時ならば “ママがよくいるか” と思う考えに胸がどきどきする.

お母さんが脳出血で倒れた後, 手術後遺症で痴ほうが尋ねて来た. 初めには長男であるお兄さんがお母さんを家に連れて行った. しかし家を発って嫁女の面倒を見ることを受けることをお母さんが好きではなかった. お母さんは倒れる前まで一緒に住んだ取る朴さんにたくさん頼った. お母さんの面倒を見る問題でお兄さんと葛藤が生じた時, ビホンだった朴さんがお母さんを家にお供をした. 弟もビホンだったが自然にお母さん面倒を見ることは娘である朴さんの分け前になった.



“初めには心配もとても多く泣きました. 体も痛くて精神的でもくたびれて. そうして時間が経つからよくなるんですよ. 幸いにお母さんが ‘きれいな痴ほう’です. よく召し上がって, 拍手して歌うのを好きで. 夜に寝なくて歌を歌ってください.”

薬を倦まず弛まず服用して痴ほう進行がのろいお母さんに朴さんは編み物, いわし整えるなど手を使う事をたくさんするようにする. 療養保護司の助けを借りて近くの福祉館で外出も通う. しかし他の道で漏れてしまったお母さんを忘れてしまって近く交番で捜したことも二回もあった. 夏には暑くておむつをしないで外出してから代弁を見るせいで隣りたちに民弊をかけたりした.

朴さんはずっとお母さんを一人きり面倒を見られるんとは考えない. “仕事をおいてお母さん面倒を見ることを専担したらできないようだ. 一人がケアを専担すれば生が壊れると思う”と “お母さん病気が悪くなれば施設に送ることも思っている”と言った.

朴さんに非婚儀生に対して問った. “後悔しないです. 私はママ一人面倒を見れば良いが, 結婚した友達はご主人に子供に親まで面倒を見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 老後に対する不安感があるが, 今がもっと良いと思います.” 朴さんが言った.

■ 親面倒を見ることは非婚儀予見された未来?



現在親が元気なビホン女性たちは ‘近付くかも知れない未来’を予感している. 非婚姻金手陳さん(35・仮名)は親面倒を見ることが “100% 自分の分け前だと思う. 具体的計画を立て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はないかと言う段階”と言った. 金さんのお父さんは国際通貨基金(IMF) 外為危機の時失職した. その後不正規職や日雇い労動をして生計を引き継いだ. 弟が一人いるが外国で住んでいる. 金さんは “ご両親自ら老後を責任負いにくい状況でこれから経済的な能力をいくら取り揃えることができるかが一番心配”と言った.

金さんは “ママ世代と私の世代は違うと思ったが周辺で出産後経歴断絶, 督迫育児をしながら心身がだめになった友達をたくさん見た”と “政府の解決方式が女性がすべてのことを手におえながらもソーシャルライフができるようにすることに焦点が合わせられていることを見て私の世代では解決されアンゲッグナという考えにビホンで暮すことに決心した”と言った.

金さんは 14歳の時けがをしたお母さんの面倒を見た経験がある. 金さんは “お父さんがリストラ後お母さんが商売をしてからけがをして長く横になっていらっしゃった. 当時私は未成年者だったがお父さんは面倒を見ることをしなかったし, 私が弟とお母さんを面倒を見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と言った. “どうしても娘だからママが情緒的に私に寄り掛かることもあって… 私もママの生を理解して共感しながら面倒を見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義務感も生じます. エズンググァンギェラルカです.”

金さんは “老後面倒を見問題をビホンでも既婚でも女性問題で延ばしておかずに社会的問題で認識したら良いだろう”と “面倒を見ることを要する人と保護者を社会的にどんなに支援しなければならない問題に近付いたら良いだろう”と言った.

・ビホン息子の話
“お母さん重度になれば私が日課面倒を見中一つはあきらめなければならない恐ろしい”

“お母さんを見れば子供みたいだという考えをします. 子がいないから…. チォグルチォグルした子を育てるという気がしたりします.”

朴性式公共運輸労組政策局長(48)は痴ほうお母さんと二人が住む. 3年余りの結婚生活が終わった後 ‘ドルシング’になった時お父さんがお亡くなりになって一人きり過ごすお母さんと一緒に住むようになった. 朴局長は “一人で過ごす時お母さん表情が暗かった”と “離婚したのは申し訳ないが一方ではお母さんを仕えて暮すから良いという考えをしたりする”と言った. 非混和と高令化が急速に進行されながら親の面倒を見るビホン男性も増加している. 朴局長もなかでも一つだ.



去年夏, お母さんが日付を判断がつかながって, 先程起った事をまた問って見る事がひんぱんだった. 決定的に食事途中 “ヌィお父さん名前が何だったよ”と問うお母さんを見て変なの確信した. お父さんと本人のご主人が同じ人と言うのを全然憶えることができない気付きだった. 痴ほう初期診断を受けた去年 9月朴局長は仕事をやめた. お母さん状態が悪くなった時期で横で面倒を見るためだ. “一人でいて情緒的に心細ければ痴ほうが急速に進行される可能性が高くて横で仕えたかった”と言った.

お母さんは今年で 88歳だ. ヌッドングが一人息子で朴局長を生んだ. お母さん痴ほうはまだ初期だが, 痴ほう進行を延ばすための薬を飲むようにするのが大きい事だった. “痴ほう症状の中一つが不信がひどくなるんです. 変な薬を与えると召し上がらないようとするんですよ. 幸いに付けるパッチ薬は拒否しなくて付けています.”

子がいない朴局長に誰かの面倒を見た経験は今度が初めてだ. “親たちは他の存在のためにエネルギーをこぼす経験をするのに, そんな経験がないから未成熟された部分がないか思いました. お母さんを面倒を見ながら他の存在の面倒を見る小中限経験をするようです.” 彼は洗うことを忘れるお母さんに “顔を洗いなさい”と言う小言も言う. “私がお母さんにそんな言葉を駆使すること誰が分かったの”と顔をほころばした.

3ヶ月の間お母さんのそばを守った朴局長は 1月から新しい職場に出勤し始めた. レーバーユニオン仕事だから ‘経歴断絶’による求職が大きく難しくはなかった. 療養保護司は週 2回 3時間ずつ訪問する. 一日二度安否電話を漏らさないでする. まだ日課ドルボムの両立が可能だが, 療養保護司の訪問回数と時間が増えるのを希望する.

お母さんの面倒を見る間は非婚姻状態を変えるつもりがない. 彼は “パートナーができても負担を与えたくない. 私が手におえることができるまで手におえること”と言った. しかしお母さんの状態が悪くなったら? 朴局長は確信がない. 彼は “重度で行くのが一番恐ろしい. すべてのものがストップされると思う. 仕事をやめて面倒を見るに集中するとか, あきらめて療養院に送るとかふたつの中で一つと思う”と言った.

“お母さん面倒を見ることを終わらせてからは私も 50代になるでしょうに, あの時の生は以前のようではないと思います. 面倒を見ることをために仕事を中断すればまた始めることができる年ではないね, 高令労動者たちがする単純職務ができるという考えもします.” 彼はお母さんの精神と身体が一緒に徐徐に消尽されて楽に世を去るのを希望する.


gonbei2 オールドミスで田舍親の面倒を見る生を暮すと言ったことを見ればたぶん...

좋아요·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

댓글 ( 2 )

게시물 목록

2,811,753

  1. KO 255 nimai
  2. KO 255 morort
  3. KO 255 theStray
  4. KO 255 morort
  5. 조회수 : 112
    KO 255 morort
  6. 조회수 : 131
    KO 255 jap6cmwarotaZ
  7. KO 255 propertyOfJapan
  8. KO 255 amateras16
  9. KO 255 theStray
  10. JA 255 ドンガバ
  11. JA 255 竹島先住民
  12. KO 255 propertyOfJapan
  13. KO 255 nimai
  14. KO 255 propertyOfJapan
  15. JA 255 あかさたなはまやら
  16. 2 조회수 : 159
    JA 255 旋風魔帝I
  17. JA 255 ef58
  18. KO 255 amateras16
  19. 조회수 : 114
    KO 255 amateras16
  20. 조회수 : 86
    KO 237 ysfos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