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1965년, 소위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서 몸을 사리지 않고 최전선에서 지휘하다가 발목 지뢰를 밟아 오른발 앞부분을 절단해야 했다.
그뒤에 뛰어난 지도력을 인정받아 승진을 거듭 1997년 아시아계 최초로 미국 4星 장군(대장)이 되었다.
1997년, 유럽주둔 미 육군 제 7군 사령관 겸 보스니아 내전 당시 NATO군 총사령관을 지냈고, 1998년에는 육군참모차장에 올랐으며, 이듬해엔 아시아계 최초이자 非 백인 최초로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되었다.
2018년 현재까지도 미국 역사상 육해공을 통틀어 非 백인이 참모총장 자리에 오른 사례는 에릭 신세키가 유일하다.
거기다 그가 미육군의 참모총장이였던 시절
그는 아들 부시 정권 시절 기동성과 경량화를 강조하는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견해에 공감대를 표시하면서 세계 어느 곳이든 24시간 내에 미 육군을 파견할 수 있는 신속대응군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그리하여 그 유명한 스트라이커 여단이 창설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시련이 있었으니 미군 사상 최악으로 무능했던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부 장관은 크루세이더 자주포 및 M1 탱크 砲身강화 개량 등 화력 강화 사업 대부분을 취소해서 육군을 과도하게 경량화하려 하자, 신세키는 이에 반대입장을 취하면서 갈등을 빚었다.
이러한 갈등은 이라크 전쟁 때는 이러한 갈등이 더욱 심화되었는데,
신세키는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치안을 위해 최소 60만의 병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럼즈펠드로부터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소리를 들었다.
럼즈펠드는 단 15만 명만 투입하려고 했고 실제로 그랬다. 물론 그 이후의 전황은 미군을 수렁으로 몰아넣었고. 2006년 11월, 의회에서 존 아비제이드 미국 중동 방면 통합 사령부(USCENTCOM) 사령관은 "신세키가 옳았으며, 그의 말대로 우리는 더 많은 병력이 필요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경질되었다고도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임기를 모두 마치고 조기 전역했다.
그는 전역식에서 "여러분은 유능한 지도자가 되기 전에, 여러분이 이끌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이 없으면 명령할 수는 있지만 지도력을 발휘할 수는 없습니다. 지도력 없는 명령은 공허함과 불신, 오만으로 가득 찬 공백에 지나지 않습니다."라고 럼즈펠드를 겨냥한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