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출생. 강대원 박사는 한국 전쟁 중에 해병대 통역장교로 복무한 후 1955년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공부하다가 도미해 1년만인 1956년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에서 이학석사(M.Sc)를 받았다. 그리고 3년만인 1959년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그 해에 당시 세계 최고의 연구소인 미국 벨연구소에 입사했고 30년간 근무했다.
강대원 박사가 최초로 개발에 성공한 MOSFET 반도체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D램이나 플래시메모리 등 모든 반도체의 기초가 되고 있다.
1947년 월리엄 쇼클리와 바딘, 브래튼 등 3인이 공동 개발한 세계 최초의 반도체인 트랜지스터 BJT(Bipolar Junction Transistor)는 특성상 고집적화하거나 대량 양산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전력소비가 큰 데다 제조가 까다로워 손쉽게 대량 생산할 수 없는 반도체였다.
1960년 강대원 박사가 오늘날 반도체 산업의 성장 발판을 마련한 전계효과트랜지스터(MOSFET)를 세계 최초로 제조했고, 이 모스펫은 현재까지의 전자공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대량 생산되는 거의 모든 반도체가 이를 기초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강대원 박사는 이 외에도 1967년 비휘발성 메모리의 기본 원리인 플로팅게이트를 세계 최초로 구현해, 디지털카메라나 아이팟 등 MP3에 들어간 낸드플래시의 기초를 닦았다. 그 외에 수많은 미국 특허와 미국 내 전자공학 교과서에 그의 이름이 실리고 있다.
한국물리학회 종신회원으로 국내 전자공학계에도 학회지를 통해 벨연구소의 선진 기술을 소개하는 등 학문 발전에도 기여했다. 한 때 LG전자의 고문을 맡는 등 국내 전자산업의 태동기에 힘을 보탠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2년 5월 13일 외부 세미나를 끝내고, 뉴저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대동맥류 파열이 일어나 뉴저지 뉴브룬스윅의 성베드로 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았으나 합병증으로 타계했다.
3. 평가[편집]
집적회로(IC)의 개발자로 노벨상을 수상한 잭 킬비는 2000년 자신의 노벨상 수상소감을 적은 공적서에 "강대원 박사의 MOS-FET(모스펫: 전계효과금속산화물반도체) 기술이 오늘날 반도체 산업의 발전을 이끌었다"며 그의 공로를 치하했다.
MOSFET을 최초로 개발한 공로로 2009년에 미국 상무부 산하 특허청의 발명가 명예의 전당(National Inventors Hall of Fame)에 올랐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국내 학계, 업계가 없다는 데는 아쉬움이 크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이에 한국반도체학술회의가 2017년부터 그의 업적을 기리는 "강대원 상"을 제정했다. 박병국 서울대 교수가 첫 수상자의 영예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