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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사할린에서 Josen인들을 학살하고 도주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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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한인 日 대량학살…희귀기록물 공개
러 정부보고서 “전쟁직후 5000명 행방 묘연”
강제동원 1만2000명 명부도… 진상요구 전망
 
세계일보 | 입력 2012.08.14 19:23| 수정 2012.08.14 20:24


67주년 광복절을 맞아 사할린 한인에 대한 희귀 기록물들이 대거 공개됐다. 특히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할린 한인들을 대량 학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러시아 정부의 문서와 사할린에 강제동원된 한인 1만2000여명의 명부가 공개돼 진상 조사와 보상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기록원은 러시아 사할린 국립문서보존소와 일본 재일한인역사관에서 입수한 사할린 한인들에 관한 기록물들을 14일 공개했다. 공개된 자료에는 사할린 한인들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공문서와 사할린 한인들의 귀환운동에 관한 기록, 사할린 한인의 명부와 서신이 포함됐다.


탄광노동자들이 거주하던 탄광촌 모습.


특히 1946년 러시아 정부의 보고서에는 사할린 서북부 에스토루 지역의 한인들이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보고서는 “2차 세계대전 이전 이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은 1만229명이었으나 전후 절반(5332명)밖에 남지 않았다”며 ”한인이 급격히 줄어든 이유는 피란, 귀환뿐 아니라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한인 학살 때문”이라고 적었다.

사할린에 강제동원된 탄광노동자들이 교육받는 모습.

국가기록원 이강수 연구관은 ”일본군이 5000명을 다 살해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러시아 정부는 한인인구가 급격히 감소한 이유로 명확하게 일본군의 한인 학살을 지목했다”고 설명했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 8월21∼23일 사할린에서 일본 헌병이 한인 27명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한 사례가 알려진 적은 있었으나 이 같은 대규모 학살 가능성이 제기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할린에 강제동원된 여성 탄광 노동자들이 석탄을 고르는 모습.
행정안전부 제공


1950년대 일본에서 작성한 일본 귀환자 명부 2권(778명), 1960∼70년대 사할린귀환재일한인회에서 귀환희망자를 조사한 명부 4권(1만2600여명), 1980년대 일본과 한국에서의 귀환운동과정에서 생산된 명부 14권(6000여명)도 공개됐다. 중복된 수를 제외하면 명부에 적힌 인원은 총 1만1211명으로, 지금까지 공개된 사할린 강제동원 한인 명부의 3배가 넘는 규모다.
자료를 분석한 건국대 한혜인 교수는 ”지금까지 사할린 한인 관련 명부 일부가 확인된 경우는 있지만, 명부와 서신, 가족관계 및 활동,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귀환운동 관련 기록 일체를 총망라해 일괄 수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우리 역사에서 잊혀진 사할린 한인들에 대한 역사를 복원하고, 현재 추진 중인 사할린강제동원 보상사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태영 기자 wooahan@segye.com">wooahan@segye.com


‘日, 사할린 한인 대량학살’ 추정 기록 공개 파장…일제 강제동원 보상신청·소송 크게 늘듯
국민일보 | 입력 2012.08.14 19:44

국가기록원이 14일 공개한 1946년 러시아 정부 보고서는 향후 한·일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귀환한 이들의 육성으로만 전해졌던 일본의 사할린 한인 학살에 대한 근거가 외국 정부의 보고서를 통해 밝혀졌기 때문이다. 추가 조사 등을 통해 구체적인 사례가 드러날 경우 국제적인 이슈가 될 가능성도 있다.


국가기록원이 이날 공개한 보고서 초안은 한 장짜리다. 45년 당시 사할린 지역 현장을 조사한 러시아 민정국 인구조사담당자가 직접 손으로 쓴 보고서다. 이 담당자는 보고서 초안에서 사할린 에스토루 지역의 거주 한인 인구의 급격한 감소 이유 중 하나로 ’일본군국주의자의 한인 살해’를 꼽았다. 정확히 몇 명이 언제 어떻게 살해됐는지는 문서에 기록돼 있지 않지만 러시아 정부의 조사담당자가 직접 작성한 만큼 상당한 근거를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기록원 김갑섭 기록관리부장은 ”사할린 지역에서 귀환한 많은 사람들이 일본군의 학살을 증언했지만 그동안은 증언 외에 달리 근거가 없었다”며 ”이번에 나온 근거를 토대로 추가 자료가 있는지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외대 방일권 교수는 “45년 당시 현장을 누빈 러시아 정부 민정국 담당자가 일본 군국주의자의 사할린 한인 살해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민간인 살해라는 비인도적인 처사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는 증거가 나온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방 교수는 ”재판이나 조사기록 등을 추가로 확보해야 할 것”이라며 ”정보 계통이나 군 계통에 관련 기록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사할린에 강제 동원된 한인 1만2000여명의 명부와 서신, 가족관계 관련 기록 공개도 향후 대일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사할린 강제동원 보상 신청이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 따르면 현재까지 사할린 강제동원 보상 신청건수는 2225건이며, 이 중 보상금 지급 결정이 난 경우는 1292건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보상 신청은 물론 대일 보상청구로까지 파장이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지난 5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기업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데 이어 대규모 강제동원 명부가 구체적으로 확인됨에 따라 일본기업을 상대로 한 집단소송 등의 가능성이 커졌다는 얘기다.


유엔 차원의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제기될 수도 있다. 박선영 전 의원은 자유선진당 의원 신분이던 지난 2010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발생한 일본의 사할린 한인 학살사건에 대해 유엔이 진상조사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발의했었다. 당시엔 큰 힘을 얻지 못했지만 일본의 학살 근거가 러시아 정부 문서를 통해 드러난 만큼 19대 국회에서 결의안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shjung@kmib.co.kr
 


‘일, 사할린 한인 대량 학살’ 추정 기록 공개
국가기록원, 1946년 옛 소련 정부 보고서 초안 입수
일 강제동원 2만2천여명 명부도…보상 급물살 탈 듯
경향신문 | 원희복 선임기자 | 입력 2012.08.14 21:17

일본이 사할린 한인을 대량학살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옛 소련 정부의 1940년대 보고서 초안이 공개됐다.
국가기록원(원장 송귀근)은 광복 67주년을 맞아 러시아·일본 등에서 수집한 사할린 한인 관련 기록물을 14일 공개했다.
공개된 1946년 소련 정부 보고서 초안은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사할린 서북부 에스토루 지역에 한인이 1만229명 살았지만 전쟁 후에는 5332명밖에 남지 않아 한인 인구가 50% 감소한 것으로 적고 있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인구가 준 데엔 본국 귀국, 이주, 귀화 등의 요인이 있어 일본군이 5000여명을 모두 살해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하지만 소련 정부가 일본군의 학살을 인구 감소의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사할린에서 벌어진 일본의 한인 학살 규모는 수십명 단위였다.

남사할린 서북부 에스토루 지역의 일본군에 의한 한인 학살 기록물.국가기록원은 또 수집한 1946년 러시아 중앙당 보고서에는 일본 정부의 사할린 강제동원자가 2만2817명으로 기록돼 있다고 밝혔다. 이는 현재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한인 사할린 강제동원자 수천명보다 훨씬 많은 수준이다. 한국은 사할린 강제동원자를 7만~8만명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공개된 기록물 중에는 1948년 ’쿠릴 지역 한인을 사할린으로 이주시켜 일괄 통제하라’는 소련 1급 문서와 ’사할린 한인의 귀한 문제를 언급하지 말라’는 보도지침도 있다.
이번에 공개된 대량학살 증거와 강제동원자 명부는 일제 강제동원 보상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 신청된 사할린 강제동원 보상 건수는 2225건이며, 이 중 보상금 지급 결정이 난 경우는 1292건에 불과하다.
박인환 지원위원장은 ”국가기록원과 긴밀히 협조해 대량학살 진상조사에 착수할 것”이라며 ”추가 증거자료 확보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국가기록원이 광복 67주년을 맞아 14일 공개한 사할린 강제노역 관련 기록물. 한인들이 사할린 한 벌목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사할린 강제노역에 동원된 한인 여성들이 탄광에서 석탄을 선별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국가기록원은 이 밖에 사할린 벌목장과 탄광에서 나무를 베고, 탄을 캐는 강제노역 영상도 함께 공개했다.


한혜인 건국대 교수는 ”이 자료는 사할린 한인에 대한 역사를 복원하고, 현재 추진 중인 사할린 강제동원 보상사업에 실질적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wonhb@kyunghyang.com >
 

日, 끔직한 만행…한인 5천명을 몰아넣고


”日, 종전후 사할린 한인 학살했다”
첫 공개 러시아 보고서 ”한인 1만명 전쟁끝나니 5천명밖에 안남아”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잇따를듯

기사입력 2012.08.15 09:08:05 | 최종수정 2012.08.15 09:42:25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할린 한인을 대량 학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러시아 정부의 1940년대 보고서 초안이 공개됐다.
또한 사할린에 강제동원된 한인 1만2000여 명의 명부와 서신, 가족관계 관련 기록도 공개됐다. 이에 따라 앞으로 사할린 강제동원 관련 보상 신청이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일본의 만행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 유엔 진상조사 등으로 파장이 확산될 수 있다. 정부의 관련 위원회는 정부 보고서 공개를 계기로 진상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박인환 지원위원장은 ”국가기록원과 긴밀한 협조하에 대량학살 진상조사에 착수할 것”이라며 ”추가 증거자료 확보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국가기록원이 14일 공개한 1946년 러시아 정부 보고서 초안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사할린 서북부 에스토루 지역에 한인이 1만229명 살았지만 전쟁 후에는 5332명밖에 남지 않아 한인 인구가 50% 감소했다. 러시아 정부는 한인 인구가 5000명 가까이 줄어든 이유로 피난이나 귀환과 함께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한인 학살을 지목했다.
이강수 국가기록원 연구관은 ”일본군이 5000명을 다 살해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러시아 정부는 한인 인구가 급격히 감소한 이유로 명확하게 일본군의 한인 학살을 지목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의 사할린 한인 학살은 1945년 8월 21~23일 일본 헌병과 경찰이 사할린 가미스카에서 남성 19명을, 미즈호에서 임신부와 어린아이를 포함해 27명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한 사례가 있다.


이번에 공개된 기록에는 1950년대 일본에서 작성한 일본 귀환자 명부 2권의 778명, 1960~1970년대 일본 사할린 귀환 재일한국인회의 사할린 귀환 희망자 조사명부 4권의 1만2600여 명, 1980년대 일본과 한국에서의 귀환운동 과정에서 만들어진 명부 14권 6000여 명 등이 포함됐다. 중복된 것을 제외하면 1만1211명이다.


이 같은 수치는 지금까지 일부 공개된 일본의 사할린 한인 강제동원 명부의 3~4배 규모이며, 서신과 가족관계 및 활동 관련 기록은 강제동원 사망ㆍ행방불명자 유족에게 보상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 따르면 현재까지 사할린 강제동원 보상 신청건수는 2225건이며, 이 중 보상금 지급 결정이 난 경우는 1292건에 불과하다.


러시아 정부의 인구 보고서 초안은 한 장짜리 질 나쁜 시험지로, 1945년 당시 현장을 누빈 러시아 민정국 인구조사 담당자가 직접 손으로 썼다. 이 담당자는 보고서 초안에서 사할린 에스토루 지역 한인 인구가 감소한 이유로 피난이나 귀환에 따른 인구이동과 함께 `일본 군국주의자의 한인 살해`를 꼽았다.


일본군의 사할린 한인 대량학살 근거와 함께 사할린에 강제동원된 한인 1만2000여 명의 명부와 서신, 가족관계 관련 기록이 공개됨에 따라 관련 보상신청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을 했던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경도 기자]

 

일본이 싫은 러시아가 증언하고 있네요

해방직후 사할린에서 한인 귀환 문제를 언급하지 말라는 보도지침






원문보기

どうしてサハリンで Josen人を虐殺して逃走したの? ^-^

サハリン韓人 日 ホロコースト…珍しい記録物公開
ロシア政府報告で “戦争直後 5000人行方杳然”
強制動員 1万2000人名簿も… 真相要で見込み

世界日報 | 入力 2012.08.14 19:23| 修正 2012.08.14 20:24


67周年光復節を迎えサハリン韓人に対する珍しい記録物たちが大挙公開された. 特に日本が第2次世界大戦以後サハリン韓人たちを大量虐殺したことに推定されるというロシア政府の文書とサハリンに強制動員された韓人 1万2000人余りの名簿が公開されて真相の調査と補償要求が激しくなることと見込まれる.
国家記録員はロシアサハリン国立文書保存所と日本在日コリアン歴史観で手に入れたサハリン韓人たちに関する記録物たちを 14日公開した. 公開された資料にはサハリン韓人たちに対するロシア政府の公文書とサハリン韓人たちの帰還運動に関する記録, サハリン韓人の名簿と書信が含まれた.


炭鉱労動者たちが居住した炭鉱村姿.


特に 1946年ロシア政府の報告書にはサハリン西北部エスToru地域の韓人たちが虐殺されたことに推定されるという内容が込められている. 見てからは “2次世界大戦以前この地域に居住する韓人は 1万229人だったが前後半分(5332人)しか残らなかった”と ”韓人が急激に減った理由は避乱, 帰還だけではなく日本軍国主義者たちの韓人学士のだから”と少なかった.

サハリンに強制動員された炭鉱労動者たちが教育受ける姿.

国家記録員李剛数研究官は ”日本軍が 5000人をすべて殺害したと断定することはできないがロシア政府は韓人人口が急激に減少した理由で明確に日本軍の韓人虐殺を指目した”と説明した. 2次世界大戦直後の 1945年 8月21〜23日サハリンで日本憲兵が韓人 27人を無差別的に殺害した事例が知られた事はあったがこのような大規模虐殺可能性の申し立てられたのは今度が初めてだ.

サハリンに強制動員された女性炭鉱労動者たちが石炭を選ぶ姿.
行政安全部提供


1950年代日本で作成した日本引揚者名簿 2冊(778人), 1960〜70年代サハリン帰還在日コリアン回で帰還希望者を調査した名簿 4冊(1万2600人余り), 1980年代日本と韓国での帰還運動過程で生産された名簿 14冊(6000人余り)も公開された. 重複された数を除けば名簿に書かれた人員は総 1万1211人で, 今まで公開されたサハリン強制動員韓人名簿の 3倍が越える規模だ.
資料を分析した建国大ハンヒェである教授は ”今までサハリン韓人関連名簿一部の確認された場合はあるが, 名簿と書信, 家族関係及び活動, そして多様な形態の帰還運動関連記録一体を総網羅して一括収集したことは今度が初め”と言いながら, ”国史で忘れたサハリン韓人たちに対する歴史を修復して, 現在推進中のサハリン強制動員補償事業に実質的な役に立つこと”と期待した.
李泰栄記者 wooahan@segye.com">wooahan@segye.com


‘日, サハリン韓人ホロコースト’ 推定記録公開波長…日帝強制動員補償申し込み・訴訟大きく増えるもよう
国民日報 | 入力 2012.08.14 19:44

国家記録員が 14日公開した 1946年ロシア政府見てからは今後の韓・日関係に相当な影響を及ぼす可能性が大きい. 帰還した人々の育成だけで伝わった日本のサハリン韓人虐殺に対する根拠が外国政府の報告書を通じて明かされたからだ. 追加の調査などを通じて具体的な事例が現われる場合国際的なイシューになる可能性もある.


国家記録員がこの日公開した見て下書きは一張ものだ. 45年当時サハリン地域現場を調査したロシア民政国人口調査担当者が直接手で書いた報告書だ. この担当者は見て下書きでサハリンエスToru地域の居住韓人人口の急激な減少理由の中で一つで ’日本軍国主義者の韓人殺害’を指折った. 正確に何人がいつどんなに殺害されたかは文書に記録されていないがロシア政府の調査担当者が直接作成しただけ相当な根拠を持っていることに推定される.

国家記録員ギムガブソブ記録管理部長は ”サハリン地域で帰還した多くの人々が日本軍の虐殺を証言したがその間は証言外に他に根拠がなかった”と ”今度出た根拠を土台で追加資料があるのか調査し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と言った.


韓国外大訪日圏教授は “45年当時現場を歩き回ったロシア政府民政国担当者が日本軍国主義者のサハリン韓人殺害を言及したという点で民間人殺害という非人道的な仕打ちが手広く成り立ったという証拠が出たことで評価することができる”と分析した. 部屋教授は ”裁判や調査記録などを追加に確保し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と言いながら ”情報系統や余分の系統に関連記録がある可能性がある”と言った.
サハリンに強制動員された韓人 1万2000人余りの名簿と書信, 家族関係関連記録公開も今後の対日関係に少なくない影響を及ぼすように見える. 今すぐサハリン強制動員補償申し込みが急増する可能性が大きい. 国務総理所属デイルハングゼングギガングゼドングワンピヘゾサ及び国外強制動員犠牲者など支援委員会によれば現在までサハリン強制動員補償申し込み件数は 2225件であり, この中補償金支給決定の私は場合は 1292件に過ぎない.


専門家たちは補償申し込みはもちろん対日補償請求にまで波長が拡がることができると眺めている. 去る 5月日帝強制徴用被害者たちに日本企業が損害賠償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最高裁判所判決が出たのに相次ぎ大規模強制動員名簿が具体的に確認されるによって日本企業を相手にした集団訴訟などの可能性が大きくなったという話だ.


UN次元の真相調査を促す声がまた申し立てられることもできる. パク・ソンヨンの前議員は自由先進党議員身分だった去る 2010年第2次世界大戦直後発生した日本のサハリン韓人虐殺事件に対してUNが真相調査に乗り出すことを促す決議案を発意した. 当時には大きい力を得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が日本の虐殺根拠がロシア政府文書を通じて現われただけ 19台国会で決議案をまた推進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声が高い.
ゾングスングフン記者 shjung@kmib.co.kr">shjung@kmib.co.kr


‘仕事, サハリン韓人大量虐殺’ 推定記録公開
国家記録員, 1946年昔のソ連政府見て下書き入手
である強制動員 2万2千名余名簿も…補償級水勢仮面ように
京郷新聞 | ワンフィボック先任記者 | 入力 2012.08.14 21:17

日本がサハリン韓人をホロコーストしたことに推定される昔のソ連政府の 1940年代見て下書きが公開された.
国家記録員(院長ソンググィグン)は光復 67周年を迎えロシア・日本などで収集したサハリン韓人関連記録物を 14日公開した.
公開された 1946年ソ連政府見て下書きは第2次世界大戦の前にはサハリン西北部エスToru地域に韓人が 1万229人暮したが戦争後には 5332人しか残らなくて韓人人口が 50% 減少したことで少ない.
国家記録員関係者は ”人口が与えたところには本国帰国, 移住, 帰化などの要因がいて日本軍が 5000人余りを皆殺害したと断定することはできない”と ”しかしソ連政府が日本軍の虐殺を人口減少の原因で指目したことは明らかだ”と言った. 今までサハリンで開いた日本の韓人虐殺規模は数十人単位だった.

ナムサハルリン西北部エスToru地域の日本軍による韓人虐殺記録物.国家記録員はまた収集した 1946年 ロシア中央党報告書には日本政府のサハリン強制動員者が 2万2817人に記録されていると明らかにした. これは現在日本政府が主張する韓人サハリン強制動員者数千名よりもっと多い水準だ. 韓国はサハリン強制動員者を 7万‾8万名水準で推正している.
また 公開された記録物の中には 1948年 ’千島地域韓人をサハリンで移住させて一括統制しなさい’と言うソ連 1級文書と ’サハリン韓人の珍しい問題を言及するな’は報道指針もある.
今度公開されたホロコースト証拠と強制動員者名簿は日帝強制動員補償に活気を吹き入れることと見込まれる. 国務総理所属デイルハングゼングギガングゼドングワンピヘゾサ及び国外強制動員犠牲者など支援委員会に申し込みされたサハリン強制動員補償件数は 2225件であり, この中補償金支給決定の私は場合は 1292件に過ぎない.
朴寅煥支援委員長は ”国家記録員と緊密に協調してホロコースト真相調査に取り掛かること”と言いながら ”追加証拠資料確保にも積極出る”と明らかにした.

国家記録員が光復 67周年を迎え 14日公開したサハリン強制労役関連記録物. 韓人たちがサハリン一材木伐採場で仕事をしている.
サハリン強制労役に動員された韓人女性たちが炭鉱で石炭を選別している. 国家記録員提供
国家記録員はこの外にサハリン材木伐採場と炭鉱で木を切って, 弾を掘る強制労役映像も一緒に公開した.


ハンヒェである建国大教授は ”この資料はサハリン韓人に対する歴史を修復して, 現在推進中のサハリン強制動員補償事業に実質的お手助けになること”と言った.
< ワンフィボック先任記者 wonhb@kyunghyang.com">wonhb@kyunghyang.com >

日, 無惨な蛮行…韓人 5千名を追いこんで


”日, 以前の後サハリン韓人虐殺した”
初公開ロシア報告書 ”韓人 1万名ゾンゼングクッナだから 5千名しか残らなく”
サハリン強制動員被害者訴訟続くよう

記事入力 2012.08.15 09:08:05 | 最終修正 2012.08.15 09:42:25

日本が第2次世界大戦以後サハリン韓人を大量虐殺したことに推定されるというロシア政府の 1940年代見て下書きが公開された.
もサハリンに強制動員された韓人 1万2000余名の名簿と書信, 家族関係関連記録も公開された. これによってこれからサハリン強制動員関連補償申し込みが押し寄せるように見える.
当時日本の蛮行に対する綿密な調査を要求する声が大きくなる見込みだ. UN真相調査などで波長が拡散することができる. 政府の関連委員会は政府見て公開をきっかけで真相調査に取り掛かる予定だ.


朴寅煥支援委員長は ”国家記録員と緊密なヒョブゾハにホロコースト真相調査に取り掛かること”と言いながら ”追加証拠資料確保にも積極出る”と明らかにした. 国家記録員が 14日公開した 1946年ロシア政府見て下書きによると第2次世界大戦の前にはサハリン西北部エスToru地域に韓人が 1万229人暮したが戦争後には 5332人しか残らなくて韓人人口が 50% 減少した. ロシア政府は韓人人口が 5000人近く減った理由で避難や帰還とともに日本軍国主義者たちの韓人虐殺を指目した.
李剛数国家記録員研究官は ”日本軍が 5000人をすべて殺害したと断定することはできないが, ロシア政府は韓人人口が急激に減少した理由で明確に日本軍の韓人虐殺を指目した”と言った.
今まで明かされた第2次世界大戦直後日本のサハリン韓人虐殺は 1945年 8月 21‾23日日本憲兵と警察がサハリン加味スカーで男性 19人を, 瑞穂で姙婦と子供を含んで 27人を無差別的に殺害した事例がある.


今度公開された記録には 1950年代日本で作成した日本引揚者名簿 2冊の 778人, 1960‾1970年代日本サハリン帰還在日韓国人回のサハリン帰還希望者調査名簿 4冊の 1万2600人余り, 1980年代日本と韓国での帰還運動過程で作られた名簿 14冊 6000余人などが含まれた. 重複されたことを除けば 1万1211人だ.


のような数値は今まで一部公開された日本のサハリン韓人強制動員名簿の 3‾4倍規模であり, 書信と家族関係及び活動関連記録は強制動員死亡・行方不明者遺族に補償の根拠になることができる.
国務総理所属デイルハングゼングギガングゼドングワンピヘゾサ及び国外強制動員犠牲者など支援委員会によれば現在までサハリン強制動員補償申し込み件数は 2225件であり, この中補償金支給決定の私は場合は 1292件に過ぎない.


ロシア政府の人口見て下書きは一枚の質悪い試験紙で, 1945年当時現場を歩き回ったロシア民政国人口調査担当者が直接手で使った. この担当者は見て下書きでサハリンエスToru地域韓人人口が減少した理由で避難や帰還による人口移動とともに `日本軍国主義者の韓人殺害`を指折った.


日本軍のサハリン韓人ホロコースト根拠とともにサハリンに強制動員された韓人 1万2000余名の名簿と書信, 家族関係関連記録が公開されるによって関連補償申し込みも級水勢に乗るように見える.
デイルハングゼングギガングゼドングワンピヘゾサ及び国外強制動員犠牲者など支援委員会関係者は ”最高裁判所判決に従って日帝強制占領期間強制動員をした日本企業らを相手で集団訴訟を出すことができること”と見込んだ.

[金頃も記者]

日本の嫌いなロシアが証言していますね

解放直後サハリンで韓人帰還問題を言及するなと言う報道指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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