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 탄압으로 미국 등으로 이주해 한때 2만명까지 줄었다가 1990-2000년대 이후 다시 돌아오고 있어 2010년대 귀화자를 포함한 순수 화교 인구는 5만명 정도다. 화교 모계 또는 부계가 1990년부터 결혼을 하여 한국으로 귀화하고 그 화교 혼혈의 자식들까지 합치면 10만명은 족히 넘는다. 한국 화교의 고향은 중화인민공화국 산둥반도이지만 중화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고, 주로 부산, 인천, 서울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출신지는 대부분 중국 대륙 산둥성이다.
대부분이 청나라때 임오군란의 핑계로 군인들의 허드랫일을 도우기 위해 청나라에서 강제로 파견된 소작농과 노비 출신들이다. 이들은 조선인들을 약탈하는데 동원되었으며, 1910년 화교들이 조선을 수탈하여 청나라에 송금하는 돈이 1억엔이 넘어, 일제의 화교 송금에 대한 단속이 있었다. 또한 화교들의 약탈에 조선인들은 불만이 높아져, 화교 배척 운동 등 화교들을 학살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청나라 군인들은 모두 배를 타고 돌아갔지만 이들은 돌아갈 길이 막막하여 인천에 살게 되었다. 생업을 위해 상업에 종사하였고 청나라의 지령을 받아 조선의 약탈을 하였다. 한때 인천에 거주하는 중국인이 1만명에 달하였다. 이주초기에 이들은 하층민들이 주로 하던 이발사, 요리사, 재단사로 일하였으나, 근래에는 여행가이드가 가장 많고, 한약방, 무역업, 잡화상, 식재료상을 하고 있다.
일본을 너무 좋아하는 청나라 할아버지
조상님에 죄를 짓는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