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위종 열사의 손녀 류드밀라 예피모바(왼쪽)와 증손녀 율리아 피스쿨로바. [사진 제공 = 김영사]](https://file.mk.co.kr/meet/neds/2019/07/image_readtop_2019_528650_15632645603828988.jpg)
한국이 독립을 위해 힘쓴 이위종 열사를 기억하는 건 굉장히 중요합니다. 모든 민족은 자신의 역사를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죠. 고리타분한 역사학자지만 저도 이위종에 관한 책을 하나 썼어요. 다른 방면에서 이위종의 삶을 다룬 책을 보는 게 흥미로워 한국을 찾았습니다."
1907년 대한제국 고종의 밀명을 받아 네덜란드 헤이그에 특사로 파견됐던 이위종 열사(1887~?) 증손녀 율리아 피스쿨로바 박사(50·전 모스크바 국립대 교수)의 말이다. 이위종 후손 두 사람이 한국을 찾았다. 손녀 류드밀라 예피모바(83)와 함께 두 사람은 재야 사학자 이승우가 쓴 `시베리아의 별, 이위종`(김영사) 출간을 기념해 방한했다.
이위종은 23세 나이에 헤이그 특사로 발탁된 주러시아 공사관 참서관이었다. 당시 프랑스어, 영어, 러시아어에 능통한 유일한 한국인이었고 만국평화회의에 참석을 거부당했지만 외국 언론 인터뷰를 주도해 을사늑약의 부당한 체결 과정을 널리 알렸다. 헤이그의 언론인들 앞에서 `한국의 호소`라 불리는 연설을 하고 조국의 독립을 호소한 것도 그였다. 이승우 작가가 4년에 걸쳐 쓴 이 책은 이위종을 `봉건과 근대, 동양과 서양, 강대국과 약소국의 경계를 넘나든 영웅`으로 평가한다.
예피모바는 "서울에 올 때마다 선조의 고향이라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후손들의 행복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피스쿨로바 박사는 "저도 모친도 그분을 직접 뵌 적은 없다. 모친에 따르면 늘 즐겁고 화기애애한 사람이셨고, 유행을 잘 따르는 미남이셨다고 전해 들었다"면서 "이위종의 증손녀인 게 자랑스럽다. 역사학자로서 20세기 초 한국과 러시아 관계를 공부했고, 지금은 이위종과 그의 부친 이범진에 대해 더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소련 시대에 이위종에 대한 연구 기록은 없다. 1990년 한·러 수교 이후 이위종 연구가 시작됐다. 러시아 내무부 국가 기록에서 이범진과 이위종이 외교관으로 활동했다는 기록을 발견했다. 역사학자이기도 한 저는 그 문서를 보고 굉장히 감격했다"고 덧붙였다.
이위종 열사
사진설명이위종 열사
법부대신, 주미 공사, 주러 공사 등을 지낸 이범진의 차남으로 당대 최고 엘리트였던 이위종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파리 생 시르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외교관이 된 그는 헤이그 특사로 파견된 이후 일본에 의해 종신형을 받았다. 이로 인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시베리아에서 항일운동을 지속했다.
안중근뿐 아니라 최재형·이범윤과 함께 의병단체 동의회를 조직했고, 연해주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강대국 러시아의 힘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제정 러시아 장교로 세계대전에 참석했고, 볼셰비키 혁명군 사령관으로 활약했다. 한국인 외교관으로는 최초로 러시아 여인 엘리자베타와 결혼해 세 딸도 낳았다.
책 저자인 이승우는 일본 외무성 기밀문서와 전문을 기반으로 이위종의 행방불명과 의문스러운 죽음에 일본이 개입했으리라 추정한다. 혁명군사위원회가 이위종을 중심으로 대규모 고려인 군대를 조직하려 하자 첩보를 입수한 일본이 이위종 납치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는 가설이다. 책에는 미상으로 알려진 그의 죽음을 1921년으로 특정한다.
저자는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했지만, 이위종의 최후를 비롯한 일부는 상상력으로 쓴 팩션"이라면서도 "이위종은 100여 년 전 한국인 최초의 코스모폴리탄이었다. 전 세계를 외교 활동으로 누볐고 전쟁과 혁명의 삶을 선택했다. 그는 사회주의자가 아닌 공화주의자였다"고 말했다.

제일 오른쪽 인물이 李瑋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