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군 장교가 300년 전 적군인 조선의 장수를 떠올리며 힘을 얻었다는 아이러니는 어떻게 벌어진 일일까. 일제강점기 진해 주둔 일본해군은 매년 통영에 있는 이순신 사당 충렬사를 찾아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정작 조선에서는 이순신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때였다. 독립운동가 박은식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에 이르렀나? 우리 인민이 이순신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이순신전")고 한탄했다.
본은 참패한 과거를 딛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고 자각했다. 1902년 해군대학 교재 "일본제국해상권력사강의"는 이순신의 인품과 전략을 자세히 서술한다. "이순신은 13척의 船帶를 지휘하여 해류를 이용해 포화를 퍼붓고 독전하여… 아군은 해상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육군은 더욱 어려워졌다." 저자 오가사와라 나가나리 교관은 "이순신은 호담활달함과 동시에 정세치밀한 수학적 두뇌도 갖춰 전선 제조법, 진열의 변화, 군략과 전술에 이르기까지 모두 개량해나갔다"고 평가했다.
쓰시마 해전을 승리로 이끈 도고 헤이하치로의 "T자 전술"은 이순신의 학익진과 닮았다. 그러나 도고가 이순신이나 학익진을 언급한 적은 없다. 이순신에 대해 "영국 넬슨보다 훌륭한 군신(軍神)"이라고 말했다는 1964년 잡지 기사가 있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패전 이후 일본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는 다시 이순신에 주목했다. 그는 소설 "언덕 위의 구름" 등에서 "병사를 거느리는 재능과 전술 능력, 그리고 충성심과 용기를 볼 때 실존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될 정도의 군인"이라고 썼다. 지금도 일본 교과서는 임진왜란 서술에서 대부분 이순신을 언급한다.
일본인 그린 이순신 그림


일본 교과서 거북선과 이순신 기록되어 있다

이순신이 만든 학인진. 빨강은 조선, 파랑은 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