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시타 도모유키(일본어: 山下 奉文, 1885년 11월 8일 ~ 1946년 2월 23일)
이분은 일본제국 군인으로 WW2당시 육군 대장으로 꽤 높은 지위의 인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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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군은,
뛰어난 군사적인 능력을 지녔고, 많은 전과를 올렸으나 동시에 뼛속까지 제국주의 사상과 일왕제일 사상에 젖어있던 군국주의적 인물이었습니다. 또한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부하들을 가혹하게 다뤘고, 이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인 부하들은 민간인, 포로 학살을 저질렀습니다. 그가 직접적으로 학살을 지시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적어도 두건의 학살사건에 연루되고, 이를 바로잡지않은, 부하들이 저지르는 전쟁범죄를 방관 내지 장려한 죄로 후일 B급 전범으로 기소되어 처형됩니다.
이 장군이 아래의 두 학살 사건을 지휘합니다.
1. 숙칭대학살
1942년, 싱가포르를 점령한 일본군은 현지에 거주하던 중국인 화교들을 집단으로 학살했습니다. 이름은 숙칭 대학살(肅清大虐殺, 중국어 간체자: 肃清大屠杀, 정체자: 肅清大屠殺) 아래의 사진은 우차우에 세워진 추모비 입니다. 일본 정부 측에서는 약 4 ~ 5천 명이 학살에 의해 희생됐다고 추산하고 있으며,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화교 측에서는 약 10여만명이 학살됐다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2. 마닐라 대학살
마닐라 대학살(영어: Manila Massacre, 타갈로그어: Masaker sa Maynila, 일본어: マニラ大虐殺)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5년 2월에 필리핀에서 퇴각하던 일본군이 필리핀 마닐라의 민간인에게 자행한 약탈, 강간 및 학살 사건입니다. 서방의 신빙성있는 자료에 따르면, 이 학살로 인해 필리핀 희생자 수는 10만명에 이른것으로 집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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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패망한 이후,
항복할 당시에는 포로로 취급받았지만, 곧 전범으로 필리핀의 마닐라에서 군사 재판을 받았습니다. . 야마시타는 숙칭 대학살과 마닐라 대학살 등의 책임을 물어 사형을 언도받았습니다. 처형은 그가 원하던 군복을 입은 채로 총살형이 집행되는 것이 아닌 교수형으로 결정되었으며 하다못해 교수형으로 하더라도 군복을 착용하는 것을 요구했으나 이를 인정되지 않고, 죄수복을 입은 채 이루어졌다. 처형된 이후, 그는 다른 B, C급 잡범들과 함께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었습니다.
아래 영상은 죄수복을 입은 야마시타 장군이 군인으로서 명예로운 총살을 당하는 것이 아닌, 비굴한 교수형으로 처형당하는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