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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는 원래 류쿠 왕국이라는 독립국이었으나 19세기말 일제에 편입되면서 일본 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본땅이라곤 해도 식민지 취급을 받을때가 종종 있었고 일제는 오키나와 전투때도 주민들을 징집하고 세뇌를해 자결을 종용하거나 위에 드라마처럼 민간인에 부비트랩을 설치하고 총알받이로 쓰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 밖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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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14-17세 남학생 1780명을 징집해 창설한 철혈근황대 - 890여명이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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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15-19세 여학생 222명과 인솔교사 18명 총 240명으로 구성된 간호부대 히메유리 학도대-미군에게 포위당한채 방공호에 갇혀있던 히메유리 학도대에게 군부가 돌연 해산명령을 내려 히메유리 학도대는 1주일동안 방공호에 갇힌채 폭격,자결등으로 136명이 사망했고 추가로 10명이 아라사키 해안에서 집단자결을 명받고 자결하였습니다.

- 슈리성에 성조기를 꽂는 미해병대
일제는 미군이 상륙하기전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끊임없이 세뇌를 합니다. " 귀축영미놈들은 남자들은 잔인하게 살해하고 여자들은 강간한다 그런일을 당할바엔 명예롭게 자결하자! " 이에 세뇌당한 오키나와 주민들은 집단자결하거나 아버지가 일가족을 죽이고 자결하거나 아들이 어머니와 여동생을 죽이는사례까지 있었습니다. 자결할 용기가 없거나 미군의 포격에 살아남은 주민들은 살해되고 강간당할꺼라는 공포에 울부짖었지만

오히려 미군은 아이들과 여성들을 적극 보호하였습니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자신의 행동에 절망하고 일제에 분노하였습니다. 이들은 미군에 협조하여 민간인으로 위장하고 투항하는 일본군을 색출하는데 기여했습니다.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
일본군 사망자는 77000여명인 반면 일제의 만행과 미군의 포격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자는 10만여명에달해 이를 기리기 위해 오키나와에는 평화기념공원이 조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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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동포 살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