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쓰레기다!
세상이 두려워요” 은둔 청년, 전국에 51만명
스스로를 방에 가둔다… 은둔형 32%가 3년 넘게 외부와 단절
취업·인간관계에 스트레스 받고 “이 나이까지 부모 도움” 자괴감
실패 낙인 집단문화와 온라인 기술 발달로 은둔생활 갈수록 늘어
서울에 사는 정모(27)씨는 중학교 2학년이었던 2008년 처음으로 방에서 은둔(隱遁)을 시작했다. 부모님은 맞벌이로 일을 했고, 외둥이였던 정씨는 PC 게임에 빠져 살다가 결국 학교를 자퇴하고 ‘자기 방’에 틀어박혔다. 하루에 12시간씩 잠을 자고, 눈을 뜨면 방 안에서 컴퓨터로 게임을 하거나 영화·드라마를 온종일 봤다. 오직 ‘화장실 갈 때’ ‘배가 고플 때’만 방문을 열었다. 스스로 안 되겠다 싶어서 아르바이트도 시도해봤지만 6개월 만에 그만두고 다시 방에 틀어박혔다. 그런 생활이 2018년까지 10년간 이어졌다. ‘잠깐 저러다 말겠지’ 했던 부모는 결국 정씨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고, 2년 만인 작년 여름에야 퇴원했다. 정씨는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방에 누워 휴대폰 불빛만 보고 10여 년을 살다 보니 자세가 완전히 틀어져 ‘걷는 연습’부터 다시 해야 했다”며 “밖에 나갔다가도 ‘난 특별한 사람이 아니구나’ ‘난 쓰레기구나’ 하는 생각에 괴로워 다시 은둔했다”고 말했다.
원본보기/그래픽=김성규
방에만 갇혀 살아가는 ‘은둔 청년’이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은둔 청년은 길어지는 취업난, 승자·패자만 존재하는 경쟁적인 사회 분위기 등을 계기로 외부와 단절된 채 집 안에 스스로 틀어박히는 이들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통상 6개월 이상 ‘사람 만남’ 등 외부 활동을 하지 않을 경우 은둔으로 본다.
서울연구원이 지난 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청년(만 18~34세) 중 방 안에서 안 나가거나 인근 편의점 정도만 외출하는 ‘은둔형 고립 청년’은 전체의 2.9%로 나타났다. 100명 중 3명꼴이다. 이 중 32%는 은둔 기간이 3년 이상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전국 청년의 4.7%가 이 같은 은둔 청년에 해당된다. 연구원은 정확한 인원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해당 연령대(18~34세) 인구가 1089만여 명인 것을 감안하면 전국에 51만여 명의 은둔 청년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취업 실패, 대인 관계 실패 등 각종 실패 경험을 은둔의 원인으로 본다. ‘은둔형 외톨이’는 1990년대 초반 일본에서 먼저 나타난 현상으로, 한국에도 점차 확산하고 있다. 일본에 기반을 둔 ‘은둔 청년 지원 단체’인 K2인터내셔널의 한국 지부에서 일하는 오오쿠사 미노루 수퍼바이저는 “한⋅중⋅일은 ‘능력이 있어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능력주의 사회인데, 한국·일본은 중국과 달리 경제 불황까지 겹쳐 기회마저 없는 사회”라며 “서양은 부모가 자녀를 독립시키기 때문에 자립 능력이 없는 노숙자가 되지만 동양은 부모와 동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집 안 홈리스(homeless), 즉 은둔 청년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김혜원 호서대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교수는 “초경쟁 사회가 지속되고, 좋은 직장이나 학력을 가지지 않으면 모두 ‘루저(패배자)’로 낙인찍는 집단 문화 때문에 청년들이 실패 경험을 버티기 어렵다”며 “과거보다 취업 혹은 자기 실현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이 같은 은둔형 외톨이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재 은둔 생활을 하고 있는 김모(33)씨는 “군대에서 겪은 실패 경험, 이 나이까지 엄마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생각들이 겹치면서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 은둔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청년들이 답한 ‘은둔 계기’는 ‘취업이 안 돼서’(41.6%), ‘인간 관계가 잘되지 않아서’(17.7%) 등 순이었다. 오상빈 광주광역시 동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은 “최근엔 코로나로 물리적으로 사적인 공간이 보장되는 데다, 소셜미디어로 언제든 끊어버릴 수 있는 ‘일방적 관계 맺기’까지 가능해져 은둔에 빠지기 더 쉬운 환경이 됐다”고 했다.
전국 지자체들은 최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속속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광주광역시는 작년 전국 최초로 ‘은둔형 외톨이’ 실태 조사에 착수해 ‘은둔형 외톨이 지원 조례’를 만들었다. 부산시와 제주시도 올해 이런 조례를 만들었고, 서울시는 지난 5월 ‘은둔형 청년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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