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났다면 겪었을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건 부모에게 도덕적인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지만, 반대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는 아이들에 대한 책임은 신중하지 못했던, 무책임했던 부모에게 물을 수 있게 됩니다.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뉴요커는 베나타르의 저서에서 다음 구절을 발췌, 인용했습니다.
즉, 내 생각에는 대체로 좋았지만 나쁜 것이 아주 조금 섞여 있는 삶, 대체로 행복했다고 해도 어느 순간에라도 불행하고 끔찍했던 삶이란 결국,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것만 못하다.
뉴요커는 지난 2017년 베나타르 교수의 주장을 한 번 더 다뤘는데, 이번에는 삶이 왜 나쁘다고 생각하는지 반출생주의의 근거를 좀 더 다각도로 조명했습니다. 삶은 싫은 일의 연속입니다. 날씨는 너무 덥거나 너무 춥고, 늘 화장실에 가고 싶고, 뭐를 하든 줄 서서 기다려야 하고, 불편하고 거추장스럽거나 화나는 일투성입니다. 베나타르는 우리에게 삶이 얼마나 끔찍한지 억지로 과소평가하는 성향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이 결코 축복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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