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자금성은 잘 보존되었다.
서구열강들이 훼손하지 않았다.
원래 경복궁은 7481칸으로 330동의 건물이 있던 광활한 궁궐이였습니다.
경복궁 하나 만으로도 자금성 규모의 75%입니다.
위에서 이미 말했다시피 조선의 궁궐은 5개였습니다. 이 5개를 합치면 어떻게 될까요?
현재는 일본에 의해 거의다 사라졌지만... 당시로치자면 자금성은 갖다 댈것도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친 후 단 36동의 건물만이 남았고 10분의 1로 궁궐이 극심하게 훼손,
원래 크기의 10%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일제가 전각을 다 허물어버리고 궁궐과 유교의 기운을 꺾기 위해
전국 각지에 있던 불교문화재들을 경복궁에 옮겨놓아
궁궐과 관계없는 불탑, 사리탑 등 유물들로 채워놓은 것입니다.
- 일제는 경복궁에서 두 차례의 물산공진회를 치루며 경회루 영역에 휴게실과 미술관을 지었다.
- 자경전 영역에는 수족관과 놀이터를 만들었다.
- 궁궐에는 깔지 않는 무덤에나 깔던 잔디를 경복궁 전체에 깔고, 온돌을 없애버리기도 하였다
▲전각들이 거의 헐려 휑한 궁궐과 그 곳을 메운 잔디들, 근정전을 가린 조선총독부건물이 위압적이다
경복궁자리가 명당자리이고 풍수적으로 굉장히 좋은 자리이기에
김영삼 정부에서 총독부를 파괴하기 전에
총독부 밑에 경복궁과 조선의 정기를 막는 말뚝이 박혀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됐는데
실제 총독부 폭파후 총독부 밑에는 커다란 말뚝들이 박혀있었다
- 1912년 조선총독부 청사 건립이 본격화되면서 수많은 전각이 헐리고
1914년에는 이듬해 이른바 "시정 5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를 경복궁에서 개최한다는 핑계로
경복궁의 중요 전각 몇 채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전각들이 무참히 헐려버린다.
- 경복궁 전체를 야외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사정전 뒤쪽으로는 일제가 정원과 공원으로 변모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