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ANFU 용어의 어원은 신조어로 구체적인 뿌리는 알 수 없다.
전통적으로 한대 이후의 중국의 여성 의복은 치마를 윗옷 위에 입으며, 치마의 실루엣 또한 약간 끌리는 1자형입니다. 하지만 원나라 시기에 갑자기 전통적인 중국옷과 많이 차이가 나는 A자형의 풍성한 치마에 저고리를 바깥에 입는 옷이 등장합니다. 한복은 삼국시대 이래로 계속해서 A자형이었습니다. 또한 저고리를 바지나 치마 위에 입습니다. 그러한 모습은 고구려 벽화에서부터 확인한 수 있습니다. 백제, 신라, 가야도 같은 모습의 옷을 입은 걸 여러 벽화 등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겉치마 안에 속바지, 속치마를 받쳐 항아리 모양, 피라미드 모양을 만듭니다. 예복은 특히 안에 옷을 몇곂 더 받쳐입어 치마를 크게 만듭니다. 장욱의 <궁중사>라는 글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 张昱《张光弼诗集》卷三《宫中词》: 宫衣新尚高丽样,方领过腰半臂载,连夜内家争借看,为曾着过御前来。"
"궁중에서 새롭게 유행하는 것은 고려양이라네 방령(중국쪽에선 이것을 고려방령이라고 불렀고 한국에서는 저고리라고 합니다.)에 짧은 허리, 반소매 궁중 여인들이 밤까지 이어져 구경하려 하네 이는 고려 여인이 황제 앞에 이 옷을 입고왔기 때문이라네[속자치통감 권이백일십사 원기삼십이]에 기재된 글입니다.
《续资治通鉴 卷二百一十四 元纪三十二》记载:“后亦多畜高丽美人,大臣有权者,辄以此遗之,京师达官贵人,必得高丽女然后为名家。自至正以来,宫中给事使令,大半高丽女,以故四方衣服、靴帽、器物,皆仿高丽,举世若狂。”
"황후도 역시 고려미인으로 삼아, 대신유권자는 곧 이를 귀하게 여겨, 수도 고관귀인은 반드시 고려여자를 얻은 후에야 명가가 된다. 그렇게 된 이래, 궁중급사사령 대반이 고려여자이며, 이런 이유로 사방의 의복, 신발과 모자, 기물 모든것을 고려를 모방해, 온 세상이 미친 것 같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 원나라로 공녀로 간 여자들 중에는 황후까지 된 자도 있었으며 많은 수가 시녀로, 궁녀로, 귀족의 첩으로 갔으며, 이들이 가지고 간 고려의 문화는 명나라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또한 [숙원잡기]의 기록에는,《菽园杂记》::“马尾裙始于朝鲜国,流入京师……于是无贵无贱,服者日盛。至成化末年,朝臣多服之者矣。阁老万公安冬夏不脱……。大臣不服者惟黎吏侍淳一人而已。此服妖也,弘治初始有禁例。”
마미군은 조선국(고려)에서 시작되어, 수도로 유입됬으며......귀천을 가리지 않고 복식이 날로 성했다. 성화말년에 이르러, 조정 신하들도 입게 되었다. 각로만공안이 겨울에도 여름에도 벗지 않았다.....이 복식은 요사하므로, 홍치 초시에 금지되었다.
또 [만포필기]에는, 《寓圃笔记》:"发裙之制,以马尾编成,系于衬衣之内。体肥者一裙,瘦削者或二三,使外衣之张,俨若一伞。",
치마를 넓히는 제도는, 말꼬리를 옷안에 엮어서 만든다. 몸을 비대하게 만든 하나의 치마로, 마른사람은 혹 두개 세개를 입는다, 옷을 바깥으로 넓게 퍼지게 만드는데 쓰는데, 우산과 같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미군이라면 치마에 살을 대어 부풀리는 것으로 한국복식에서 유래된 것이며 외에도 한국 복식은 궁내, 궁외, 귀천을 넘어 중국의 남자 복식에까지도 넘어가게 됩니다.
나중에는 원 대도의 절반이 고려인이라는 우스갯말이 생길 정도가 됩니다.
이것은 고려양이라고 부릅니다. 중국이 한국에게서 영향을 받아서 따라한걸 말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