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의 문명을 학습한 일본 원숭이에 의한 우민 바이러스의 확산이 원인.
우민화 정책
愚民化 政策
국가 정권이 국민들을 우민 즉 멍청한 국민으로 유도해,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국제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도 없게 해서 쉽게 지배하는 정책을 뜻한다. 우민화 정책이 성공하면 이에 따라 당연히 프로파간다가 따라붙고, 국민들을 전두지휘할 수 있게 된다. 만약 국민들의 수준이 현명하다면 정권은 삐끗하면 태클이 걸려 추진력이 없어지므로, 우민화 정책은 추진력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려던 국가들 이곳 저곳에서 사용되어 왔다. 여러 제국주의 국가는 우민화 정책을 적극 이용해 국민들을 국가의 확장을 위한 전사로 이용했다.
대개 독재 또는 부패 정권에서 일어나며, 유흥문화의 육성을 통하여 대중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정책, 지식인과 엘리트를 탄압하거나 학살하는 반지성주의, 철저한 언론통제를 통한 정보의 차단, 교육의 의도적인 하향평준화, 국민들 간의 갈등유발, 역사왜곡 등을 통해 이뤄진다.
한국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제가 한국인에게 조선교육령으로 우민화 정책을 시행했다. 일제는 경성제국대학만을 고등교육 기관으로 두어 사실상 한국인들에게 고등교육을 거의 제공하지 않았다. 1910년대 헌병경찰통치기와 1920년 이후의 문화통치기, 1930년대 이후와 전 식민통치 기간에 걸쳐 한국인들을 향한 일제의 우민화 정책은 교육 분야에서 극심했다. 게다가 일제강점기 후기에는 병참기지화 정책의 일환으로 안 그래도 학력이 떨어지는 한국인 학생들에게 군사교육을 시키고 징병으로 학생들을 중국 전선과 태평양 방면으로 끌고 가 총알받이로 삼았다.
일제의 한국에 대한 우민화 정책은 일본이 1910년에 한국을 병합한 이후 적극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이 정책은 한국의 역사, 언어, 문화, 교육, 경제 및 정치 체제 등을 일본과 유사하게 만들어 일본 제국주의의 통제 아래에 통제 가능한 지배적인 지역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우민화 정책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정책의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언어: 한국어의 사용을 금지하고 일본어를 강제로 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한국인은 일본어를 배우지 않으면 교육 및 직장 등에서 차별을 받았습니다.
교육: 일본식 교육 체제를 도입하여 한국인을 일본의 국민으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일본의 역사, 문화, 언어 등을 강제로 가르치고 한국의 역사, 문화, 언어 등은 왜곡하여 가르쳤습니다.
종교: 한국의 종교를 억압하고 일본의 신앙을 강제로 받게 하였습니다.
경제: 일본의 대기업이 한국 경제를 지배하도록 하였습니다. 한국의 자원을 일본의 자원으로 취급하였으며, 일본으로의 원재료 수출을 장려하고 한국에서 제조된 제품을 일본에서만 판매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우민화 정책은 한국인의 항거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견디기 위한 저항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항일독립운동은 대한민국의 수립과 함께 일제의 우민화 정책이 종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