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은 자주 조선시대 말엽의 일부 모습을 이미지 化 한 프로파간다 사진을
여전히 가지고 와서, 한국의 이미지를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상은 그것은 일본 자신의 투영에 가까운
일본은 에도시대 말엽에 서구와 접촉하고, 드디어 쇄국에서 벗어나면서
자신들의 문화나 제도를 미개의 것으로 定義내리고, 구미의 것은 문명으로 간주하면서
철저하게 구미에 사대해 모방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것을 악습으로 생각하면서 머릿속에서 지워 나갔다
여성도 섹스가 번성! 페리도 격노한 에로 너무 일본인의 쓰레기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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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 제독이 바라본 일본, 그 백인의 눈을 통해 일본은 미개의 영역으로 규정지어졌고
그 일본인은 다시 백인의 시각에 수긍하면서, 자신 혐오에 빠진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당시 일본은 알몸을 타인에 보이는 것에 전혀 저항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性的으로 매우 문란해져 있었는데
당시의 문화를 스스로 폐습으로 규정짓고 일본은 自己 否定 동시에, 구습을 타파해 나갔다.
그런 그들이 철저히 脫亞入歐를 외치며, 근대화 동시에 한국을 식민지화 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버려야 할 악습과 폐단을
조선의 이미지에 덧씌웠던, 그것으로 조선은 이미 서구화된 선진 일본을 본받아야 옳다는 정신적 위안과 지배 근거를 마련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각종 프로파간다 이미지를 쌓아 올렸는데
여전히 그것이 진행중이라고 할 수 있고, 한국인을 토인이나 미개인이라고 부르거나
일부 여성이 가슴을 내민 사진이나 일본의 문란한 性풍습을 한국의 것인 냥, 선전하기 바쁘다
일본과 다르게 민중 레벨에까지 유교적 관습이 뿌리내린 조선은 일본과는 다르게 매우 보수적인 사회였음에도
그런 프로파간다 이미지가 여전히 일본 사회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일본 사회가 폐쇄적인지
잘 알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