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시기의 (4~5세기)宋의 後漢書 正史의 기록에 이런 말을 남겨 뒀다.
중원에 禮가 사라지면 4夷에서 禮를 구한다.
물론 그 전에 공자부터 禮가 있는 夷의 땅에 살고 싶다는 기록도 있다.
17세기의 明나라에서 무예 관련한 것을 모은 武備志에 朝鮮稅法 劒譜를 구해,
당나라때에 사라진 검술을 찾았다라고 이야기 한다.
그렇게 훔쳐가면서 자주 한국내의 세종대왕이 만든 왕실 제례음악과 鄕舞樂등 한국 고유의 것이나,
근대이후 한국에서 창작된 신고전무용을 갖고 자기들 춤이라고 우기는 경우도 생긴다.
부채춤등이 그렇다.
솔직히 이정도면 원래 아무것도 없던 것이 아닌가 생각 될 정도.
한국에선 기록으로 특히 예식, 궁중무용 음악등이 체계적으로 기록되어 계통을 파악할 수 있다.
종묘의 제례와 공자묘 제례는 음악부터 다르다.
이건 商나라 제례부터 기원이 존재하며 한국에서 몇천년 유지된 상고시대 舞.로 오리지널에 가장 가깝다.
공자의 후손이 대만에 살고 있고 국민당계 반공주의자라서
한국의 성균관대학에서 직접 배워간 것을 자기들 생각으로 더 치장하여 재구성한 것이 대만.
공자의 후손이면서도 뭔가 남은게 없던게 아이러니, 청나라 명나라 모두 공자묘만큼은 지켜 줬었는데도.
중국공산국가의 것은 눈이 어두워지고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수준이라 생략. 예네는 그냥 훔쳐갔다.
마치 kpop demon hunters의 굿즈를 마구잡이 카피하듯.
또 중국의 사서 기록에 이렇게 남아 있다.
東夷는 국가적으로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을 화려하게 꾸미고 제사 지내는 것을 자주하며 즐긴다.
같이 귀신에게도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우리 기록에 단군, 마고등 고등신이나,
조상신을 말하는 것과 여러 영웅들의 제사임이 추측가능하다.
중국은 모택똥이 한번 문명을 지웠다. 다시 천안문 사태로 지식인을 다시 죽이면서
완전 똥만 남은 나라가 됨.
섬의 토인들은 원래 낮은 수준이라 변화가 없으니 안심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