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편들기 싫지만 2022년 러우전발발 직전 우크라이나 총외채 1297억 달러=우리돈 대략 191조원, 소련붕괴 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경제적 지원 총액은 약 2,500억 달러에서 3,000억 달러=대략 422조원 우크라이나가 자국내 러시아의 가스석유 파이프로 훔쳐간 총금액이 무려 3~4천억 달러=589조원 입니다. 세계 금융권 특히 월가에서눈 지긋지긋한 우크라이나의 부패로 도저히 우크라이나가 갚는 것 불가능하다 생각 했었고 러시아국민 입장에서 러시아 한 해 예산 만큼 가스 도둑질한 우크라이나 좋게 볼 수 없는 입장이였습니다. 결국 미러 입장에서 러우전쟁으로 얻을게 너무 많았다는 것이죠.
1차 세계대전의 배경에는 독일의 3B 정책(베를린-바이잔티움-바그다드 철도)과 그에 따른 천문학적인 자금 조달, 그리고 이를 저지하려는 기존 패권국(영국 프랑스) 간의 "금융 전쟁"이 실존했습니다. 이를 경제적 관점에서 분석해 드립니다.
3B 정책과 철도 부채: 독일의 모험
19세기 후반 독일은 급격한 산업 성장을 이루었지만,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서 상품을 소비시장이 부족했었고 또 산업생산에 투입할 에너지 석유가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동(오스만 제국)의 석유와 자원과 인도의 소비시장에 접근하려 "바그다드 철도" 건설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천문학적 공사비: 사막과 산맥을 뚫는 터널 공사는 당시 기술력으로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습니다. 독일 은행들은 이를 위해 엄청난 채권을 발행했고, 독일 정부는 이를 갚기 위해 더 큰 산업 생산과 수출이 필요했습니다.
부채의 압박: 철도가 완성되어 수익이 나기 전까지 독일은 "이자 부담"과 "자본 고립"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렸습니다. 만약 철도가 완성되지 못하거나 영국에 의해 차단된다면 독일 경제는 파산할 위기였습니다.
영국 프랑스의 금융 봉쇄 (Debt Trap)
영국은 독일의 철도가 인도와 중동에 대한 자신의 패권을 위협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자본 차단: 영국과 프랑스는 국제 금융 시장에서 독일 채권의 유통을 방해하고 자금줄을 압박했습니다.
포위망: 독일 입장에선 "열심히 물건을 만들어 팔아도 금융 포위망 때문에 빚을 갚을 수 없고, 결국 국가가 파산할 것"이라는 공포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전쟁 발발의 경제적 논리: "파산하느니 판을 엎자"
당시 독일 수뇌부의 심리는 "부채와 생존의 기로"에 있었습니다.
독일 참모본부의 격론:
"영국 놈들이 우리의 자금줄을 죄고 있다. 철도가 완성되기 전에 우리 경제를 말려 죽일 작정이다. 빚을 갚지 못해 앉아서 망하느니, 차라리 전쟁을 통해 유럽의 질서를 재편하고 채무 관계를 다시 쓰는 게 낫다!"
전쟁 명분: 사라예보 사건은 방화범의 불씨였을 뿐, 그 속에는 "더 이상 빚과 관세 장벽으로는 성장이 불가능하다. 무력으로 시장과 자원을 강제로 확보해야 한다"는 독일 산업 자본의 절규가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도 히틀러 산업부흥 사회SOC, 잠수함, 탱크 전투기 포탄 마구마구 생산했었죠. 그 자금 핵심은 "메포어음"이였습니다." 독소전쟁 승리하면 갚을께" 하고 군수공장이 수년간 120%이상 돌아갔구요. 결과는? 7~8000만 명 전사자 발생.
"내 금고 대신 남의 금고를 털어라"
당시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 은행들에 막대한 단기 부채를 지고 있었습니다. 1938년경 독일의 외환보유고는 사실상 "0"에 수렴했고, 당장 다음 달 결제할 달러와 금이 없었습니다.
독일의 상황: "체코를 먹으면 체코 중앙은행이 보유한 25톤 이상의 금과 막대한 외환을 뺏을 수 있다. 그래야 영국 너희한테 진 이자라도 갚을 것 아니냐?"
영국·프랑스의 계산: 독일이 파산하면 자신들이 빌려준 돈도 영영 못 받게 됩니다. 체코가 희생 제물이 되어 독일의 장부를 잠시라도 메워준다면, 자신들의 금융 시스템이 붕괴하는 것을 늦출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체코의 금(Gold)은 어디로 갔나?
놀라운 역사적 사실은, 히틀러가 체코를 침공했을 때 체코의 금 중 상당 부분은 영국 은행(Bank of England)에 보관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배신: 히틀러가 체코를 점령하자마자 나치는 영국 은행에 "이제 체코는 우리 것이니 보관 중인 금을 독일 라이히스방크(중앙은행)로 이체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영국의 협조: 전쟁 직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은행은 법적 절차를 핑계로 체코의 금을 히틀러에게 순순히 넘겨주었습니다. 이 금은 나중에 독일이 전쟁 물자를 수입하는 자금(메포 어음의 실질적 담보)으로 쓰였습니다.
"반제(빚 갚음)"를 위한 침묵의 대가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이 체코의 자원을 약탈해 빚을 갚거나 최소한 파산을 미루길 바랐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경제적 융화 정책"의 실체입니다.
착각: 그들은 히틀러가 체코의 "부엌(공장)과 빵(금)"을 먹으면 배가 불러 멈출 줄 알았습니다.
현실: 하지만 부채 기반의 전시 경제는 한 번 가동되면 멈출 수 없습니다. 체코의 금으로 메포 어음의 만기를 겨우 연장한 히틀러는, 다음 만기를 채우기 위해 더 큰 장부(폴란드, 프랑스)를 찾아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쟁의 명분은 언제나 민족, 민주주의, 혹은 신념이라는 화려한 포장지로 덮이지만, 그 포장지를 벗겨내면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장부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회계적 절벽이 나타납니다.
"메포(MEFO) 어음"은 2차 대전의 완벽한 예시입니다. 히틀러는 돈이 없었지만 어음을 찍어 군비를 확장했고, 그 만기가 돌아왔을 때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었습니다. 국가 파산 선언을 하거나, 채권자(유럽)를 정복해 장부를 없애는 것입니다.
메포 어음의 진실을 보면 1939년 당시 독일의 부채는 이미 폭발 직전이었습니다. 독소전쟁과 유럽 침공은 단순히 영토 확장이 아니라, 약탈을 통해 어음 만기를 연장하고 채무를 무효화하려는 "강제 집행"이었습니다.
러우 전쟁의 시각: 우크라이나가 갚을 길 없는 4,000억 달러의 "에너지 부채"를 지고 서방으로 도망가려 할 때, 러시아 입장에서 전쟁은 그 손실을 영토와 자산으로 강제 환수하려는 결단이 됩니다.
역사적으로 모든 큰 전쟁 따지고 보면 국가빚 반제에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