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장은 생겼지만, 농민은 공장으로 가지 못했다"
공장이 몇 개 세워졌다고 해서 수백만 명의 늘어난 농촌 인구가 흡수되는 것이 아닙니다.
압도적인 농업 비중: 1930년대 후반, 일제가 병참기지화 정책으로 공장을 마구 세웠을 때조차 조선인 취업자의 약 75~80%는 여전히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공장 노동자의 한계: 당시 전체 인구 대비 공업 노동자의 비율은 겨우 2~3% 남짓이었습니다. 인구가 57% 늘어나는 동안 공장이 흡수한 인원은 극히 일부였고, 나머지 늘어난 인구는 모두 좁은 농토에 그대로 머물러야 했습니다.
결론: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농촌 인구 과잉(Hidden Unemployment)" 상태입니다.
2. "조선인에게 공장은 "일자리"가 아니라 "단순 동원"이었다"
기술 배제: 공장의 핵심 기술직과 관리직은 일본인이 독점했습니다. 조선인은 공장에 가도 "숙련공"으로 성장할 기회가 거의 없었으며, 대부분 단순 토목이나 하역 노동에 종사했습니다.
낮은 흡수력: 일본이 세운 공장은 주로 **"자본집약적"**인 대규모 중화학 공장(흥남 비료공장 등)이었습니다. 이런 공장은 덩치는 커도 고용하는 인원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수백만 명의 농촌 인구를 흡수하려면 경공업과 서비스업이 같이 발달해야 하는데, 일제는 이를 철저히 억제했습니다.
3. "닭장 안에 기계 하나 넣었다고 닭장이 넓어지나?"
"닭장 주인이 닭장 구석에 자동 알 수거기(공장)를 설치했다고 해서, 닭장 안의 밀도가 낮아지나? 닭의 수는 계속 늘어나는데 기계는 주인만 조작하고 닭들은 그 기계 옆 좁은 틈에 끼여서 겨우 숨만 쉬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과잉 상태"**다.
실제로 당시 조선 농민들의 1인당 경작 면적은 인구 증가로 인해 계속 줄어들었다. 공장이 인구를 흡수했다면 농민 1인당 땅이 넓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좁아졌다는 것은 공장이 농촌의 과잉 인구를 해결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