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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의 일본 전래설은 인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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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 255 Member_53455 2,811,753

 

[구급간이방, 1489년] - 1489년에 발간된 이 책에 한글로 분명하게 고추라고 적혀있다.

[식요찬요, 1460년]

1443년(세종 15년) 발간된 "향약집성방"과 1460년(성종 ) 제작된 "식료찬요"에

"고추장"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며, 1489년에 제작된 "구급간이방"에는

한글로 "고초"(고추)라는 표현이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다.

고추의 일본 전파설은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선조 25년(1592년)에 일본으로부터 전래되어

한반도로 들어왔다는 설이 지난 1978년 발표된 이후 굳어졌다.

한국식품연구원 권대영 박사 연구팀은 고문헌 등을 수집·분석한 결과 임진왜란 이전 수백년전부터 고추가 존재했다는 근거를 발견했다고 18일 밝혔다. 권 박사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0여년 전인 1487년에 발간된 ‘구급간이방’에 고추의 어원인 ‘고쵸’가 한글로 선명하게 나와 있고, 1527년 문헌인 ‘훈몽자회’에도 고추가 딸기, 머루 등과 함께 기재되어 있었다.

당시에 고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추를 사용해 매운 맛을 내지 않은 것은,

매운 맛이 사람을 흥분시키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국정 수장왕에게 감정의 동요가 생기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기존 "고추의 일본 전래설"은 콜럼부스가 중앙아메리카에서 "아히"(aji)라는 고추를 유럽으로 가져간 뒤 일본을 통해 들어와 우리나라를 거쳐 중국,인도로 재전파됐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유럽에도 콜롬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고추를 가져가 처음으로 유럽에 소개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고추의 콜롬부스 유럽 전파설"이 근거가 없게 되면 우리나라의 "고추 일본 번래설"도 깨지게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유럽의 고추 역사와 아메리카주의 고추 역사를 다시 보게 된다.  

그동안 매운 고추의 원산지가 아메리카주로 되어 있으나 그 생산은 이미 수천년전부터 세계 각곳에서 재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7년 <사이언스>지 (Science 315: pp. 986-988)에 따르면 아메리카주에서 나온 가장 오래된 고추(Chili peppers)는 기원전 7천5백년 전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2월 16일 BBC 뉴스 온라인의 "Chillies heated ancient cuisine"에 따르면 에콰도루의 고고학적 발굴에서도 6천년 이상된 고추가 발굴되었다. http://news.bbc.co.uk/2/hi/americas/6367299.stm.

 

 

 

 

그러나 오래된 고추에 대한 흔적의 발굴이 아메리카 지역에서 그렇게 나왔다는 것이 고추 자체가 오직 아메리카 대륙에서만 존재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콜럼부스 이전에 고대 아메리카 인디안들이 아시아나 유럽에 그 고추를 퍼트렸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남북 아메리카주에서 선사시대 인디안들이 고추를 재배한 것은 페루의 남부에서 멕시코의 북부에 이르는 다양한 지역에서 발견되며 나중에 콜롬부스가 신대륙에 도달했던 시기에는 미국의 콜로라도주의 뉴멕시코주의 푸에블로 인디안들도 재배를 했다. 이러한 고추들이 유럽에 소개되었다는 것은 아직 유럽의 전체적인 지역에 고추가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던 상황일 뿐 유럽에 고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영국의 대영백과사전에 고추의 원산지가 중앙아메리카 외에 중국,인도도 기록되어 있다는 것의 근거는 불확실하다 치더라도 이미 유럽에는 고추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미 서양에서도 콜롬부스 전래설은 비판되고 있다. 이미 콜롬부스 이전에 유럽인들이 고추를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고고학계의 발굴에 따르면 스웨덴 남부 해안도시인 룬드(Lund)의 세인트 보털프(St. Botulf)에서 매운 고추에 해당하는 캡시쿰(Capsicum frutescens) 성분이 함유된 것이 발견되었다. 그것이 함유된 발굴 층의 시대 감정 시기는 1200년대의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 그곳에 13세기초에 고추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켑시쿰이라는 말은 그리이스의 데오프라스투스(Theophrastus(370-286 BC)에 의하여 만들어진 말이라는 면에서 이미 기원전에 희랍문명 속에 고추가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AD 1세기 때의 로마시대의 시인 마르티알리스(Martialis)는 이미 생 고추(raw pepper)라는 의미의 "Piper crudum"이라는 매운 고추에 대하여 쓰면서 길쭉하며(be long) 씨(seeds)가 있다고 썼다.  이 고추는 그동안 유럽의 전통 "흑 고추(black pepper: Piper nigrum)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고추가 일본으로부터 들어와 중국 인도로 퍼져갔다는 것의 문제도 중국에서 이미 수천년 전부터 고추가 존재했다는 것에서도 증명된다.

"고초 당초"에서 "당초"는 중국 고추 또는 당나라 고추라는 의미에서 "唐椒"라는 말을 쓴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고초(苦椒, 고추 - 위 그림 구급간이방 참조)도 맵다고 했다면 그 고초는 어쩌면 "苦"가 아닌 우리나라 즉 고구려나 고려의 "高椒(고초)"에서 나중에 "苦椒"로 와전되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나중에 고초(苦草)·번초(番草)·남만초(南蠻草)·남초(南椒)·당초(唐草)·왜초(倭草)로 불리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일본 전래설"이 생겼는가? 

오늘날도 동남아 고추나 맥시코 고추가 좀더 매운 것과 같은 것들이 존재하듯이 특별히 임진왜란 때에 매운 강도가 좀더 강한 고추가 임진왜란 때 일부 들어온 지방의 한 현상이 확대되었을 수가 있다.  

마치 태국 고추나 멕시칸 고추에도 덜 매운 고추가 있지만

특정 매운 고추에 따라 그 나라들의 고추는 더 매운 것처럼 알려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고추장에 대한 "椒醬"이라는 말은 세종 15년(1433년)에 발간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과 세조 6년(1천460년)의 <식료찬요(食療纂要)>에 나온다고 이번 발표에서 언급하고 있다. 특히 "椒醬"(초장)이라는 표현이 고추장임은 17세기 즉 1670년대 문헌에 "순창 고추장(淳昌椒醬)이 전국에 유명하다"는 표현이 나온다는 면에서 세종 때의 "초장"과 17세기의 "순창초장"은 같은 고추장을 의미하는 말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특히 중국 당나라 선종(850년) 때 발간된 문헌인 <식의심감(食醫心鑑)>에 닭 관련 음식을 설명하며 "椒醬"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도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세종때의 "椒醬"이라는 말은 이미 신라시대인 당나라 때에도 존재하는 매운 장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을 개연성을 높혀준다.

 

 

 

 

번역문보기

唐辛子の日本伝来説は認めることができない.

 

[救急簡易部屋, 1489年] - 1489年に発刊されたこの本にハングルで明らかに唐辛子だと書かれている.

[シックヨチァンです, 1460年]

1443年(世宗 15年) 発刊された ¥"郷薬集成房¥"と 1460年(成宗 ) 製作された ¥"シックリョチァンです¥"に

¥"コチュジャン¥"という表現が登場して, 1489年に製作された ¥"救急簡易部屋¥"には

ハングルで ¥"苦楚¥"(唐辛子)という表現が鮮かに印刷している.

唐辛子の日本電波説は壬辰の乱が起きた先祖 25年(1592年)に日本から伝来されて

韓半島に入って来たという説が去る 1978年発表された以後固まった.

韓国食品研究員権対英博士研究チームは古文献などを収集・分析した結果壬辰の乱以前数百年前から唐辛子が存在したという根拠を見つけたと 18日明らかにした. 圏博士は壬辰の乱が起きる 100余年前の 1487年に発刊された ‘救急簡易部屋’に唐辛子の語源である ‘ゴチョ’がハングルで鮮かに出ていて, 1527年文献である ‘訓蒙自会’にも唐辛子がいちご, 山葡萄などとともに記載していた.

当時に唐辛子があったにもかかわらず 唐辛子を使って辛い味をつけないことは,

辛い味が人を興奮させる特性があるから重要な意思決定をする

国政首長王に感情の童謡が生ずる事を阻むためだったと言う.

既存唐辛子の日本伝来説はコロンブスが中央アメリカで ¥"アヒ¥"(aji)という唐辛子をヨーロッパに持って行った後日本を通じて入って来て我が国を経って中国,インドに再転派されたというのだ. だからヨーロッパにもコルロムブスがアメリカ大陸で唐辛子を持って行って初めてヨーロッパに紹介したというのだ.

 

ここで ¥"唐辛子のコルロムブスヨーロッパ電波説¥"が根拠がなくなれば我が国の ¥"唐辛子日本ボンレソル¥"も割れるようになることができる. そんな面でヨーロッパの唐辛子歴史とアメリカ株の唐辛子歴史をまた見るようになる.  

その間 辛い唐辛子の原産地がアメリカ株になっているがその生産はもう数千年前から世界ガックゴッで栽培されたということを意味する. 2007年 <サイエンス>地 (Science 315: pp. 986-988)によればアメリカ株から出た一番古い唐辛子(Chili peppers)は B.C. 7千5百年の前の物と知られている. 

 

2007年 2月 16日 BBC ニュースオンラインの Chillies heated ancient cuisineによればエクァドルの考古学籍発掘でも 6千年以上された唐辛子が発掘された. http://news.bbc.co.uk/2/hi/americas/6367299.stm.

 

 

 

 

しかし古い 唐辛子に対する跡の発掘がアメリカ地域でそのように出たということが唐辛子自体がただアメリカ大陸でばかり存在したと思うことは難しいのだ. コロンブス以前に古代アメリカインディアンたちがアジアやヨーロッパにその唐辛子を言いふらしたと思うには無理があると考えられるからだ.

 

 

南北アメリカ株からプレゼント時代インディアンたちが唐辛子を栽培したことはペルーの南部でメキシコの北部に至る多様な地域で発見されて後でコルロムブスが新大陸に到逹した時期にはアメリカのコロラド州のニューメキシコ州のプエブロインディアンたちも栽培をした. このような唐辛子たちがヨーロッパに紹介されたということはまだヨーロッパの全体的な地域に唐辛子がまともに紹介されなかった状況であるだけヨーロッパに唐辛子が全然なかったのではなかったのだ.

 

 


イギリスの対英百科辞書に唐辛子の原産地が中央アメリカ外に中国,インドも記録されているということの根拠は不確実だ打ってももうヨーロッパには唐辛子が あったという記録がある. 

 

もう西洋でもコルロムブス伝来説は批判されている. もうコルロムブス以前にヨーロピアンたちが唐辛子を食べたからだ. ヨーロッパの考古学界の発掘によればスウェーデン南部海岸都市であるルンド(Lund)のセーントボトルプ(St. Botulf)で辛い唐辛子にあたるケブシクム(Capsicum frutescens) 成分が含有されたことが発見された. それが含有された発掘階の時代感情時期は 1200年代の物で現われた. もうその所に 13世紀初めに唐辛子があったということを意味する.

 

 

ケブシクムという言葉はギリシャのデオプラストス(Theophrastus(370-286 BC)によって作られた言葉という面でもうB.C.に希臘文明の中に唐辛子が存在したということを意味する. AD 1世紀の時のローマ時代の詩人マルティアルリス(Martialis)はもう生唐辛子(raw pepper)という意味の ¥"Piper crudum¥"という辛い唐辛子に対して使いながら長めで(be long) さん(seeds)がある 使った.  この唐辛子はその間ヨーロッパの伝統 ¥"しくしく唐辛子(black pepper: Piper nigrum)ではないということが確認されている.

唐辛子が日本から入って来て中国インドに広がって行ったということの問題も中国でもう数千年の前から唐辛子が存在したということでも証明される.

¥"苦楚最初¥"から ¥"最初¥"は 中国唐辛子または唐唐辛子という意味で ¥"唐椒¥"という言葉を使ったことで見られる. そうだったら 苦楚(苦椒, 唐辛子 - 上の絵救急簡易部屋参照)も辛いと言ったらその苦楚はどうすれば ¥"苦¥"ではない我が国すなわち高句麗や高麗の ¥"高椒(苦楚)¥"から後ほど ¥"苦椒¥"で 誤って伝えることができたかも知れないのだ. それが後ほど 苦楚(苦草)・ボンチォ(番草)・南蛮初(南蛮草)・南草(南椒)・最初(唐草)・ウェチォ(倭草)と呼ばれたはずだ.

そうだったら 何かで ¥"日本伝来説¥"が生じたのか? 

今日も東南アジア唐辛子やマキシして唐辛子がもうちょっと辛いもののようなものなどが存在するように 特別に壬辰の乱の時に辛い強盗がもうちょっと 強い唐辛子が 壬辰の乱の時 一部入って来た地方の一現象が拡がることができたかも知れない.  

まるでタイ唐辛子やメキシカン唐辛子にも不十分に辛い唐辛子があるが

特定辛い唐辛子によってその国々の唐辛子はもっと辛いもののように知られることと同じ現象と言える.

 

 

コチュジャンに対する ¥"椒醤¥"という言葉は 世宗 15年(1433年)に発刊された <郷薬集成房(郷薬集成方)>と世祖 6年(1千460年)の <シックリョチァンです(食療纂要)>に出ると今度発表で言及している. 特に ¥"椒醤¥"(チョジャン)という表現がコチュジャンなのは 17世紀すなわち 1670年代文献に ¥"スンチャンコチュジャン(淳昌椒醤)が全国に有名だ¥"と言う表現が出るという面で世宗の時の ¥"チョジャン¥"と 17世紀の ¥"淳昌チョジャン¥"は同じコチュジャンを意味する言葉という主張は説得力がある.

特に 中国唐 禅宗(850年) 時発刊された 文献である <シックウィシムガム(食医心鑑)>にニワトリ関連食べ物を説明して ¥"椒醤¥"という表現を書いていることも現われている状況で世宗時の ¥"椒醤¥"という言葉はもう新羅時代の唐の時にも存在する辛い章という意味で使われた蓋然性を高めてく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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