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구는 원래 1907년에 조선을 병합할 계획이였지만
양반과 평민이 합쳐 만든 의병 운동으로 계속해서 계획이 미뤄진다
그래서 결국 왜구는 1909년에 의병에 참가한 사람이 있는 가족에게 가서 의병의 거취를 질문하였고 그것에 대해 대답하지 않으면, 그 가족을 모두 죽였다
어떤 영국인 기자가 그 의병들을 인터뷰 했었다.
그 영국인 기자는 조선의 의병들에 감동을 받아서 이런 말을 했다. [처음에 조선에 왔을 때는, 일본보다 미개해서 일본을 더 좋아했었다. 하지만, 조선에 와서 일본의 끔찍한 만행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그리고 순수하게 조국을 위해 싸우고 인간적인 모습의 의병들을 보니까, 존경스럽다.]
그리고 고종은 끝까지 외교권을 빼앗는 조약에 도장을 찍지 않았다.
그래서 그 조약은 무효라고 알리고 왜구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헤이그 특사 3명을 네덜란드로 파견하지만, 왜구에게 발각 되었다.
그래서 그것을 구실로, 왜구는 고종을 폐위시킨다.
그리고 왜구는 조선의 병합에 대해 정당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친일적인 미국인 외교관 [스티븐스]를 고용한다.
그래서 왜구에 고용된 스티븐스는 미국의 신문에서 [조선인들은 매우 가난하고 못살아서 일본과의 병합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는 것은 합당합니다]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래서 미국에 유학하고 있는 조선인이 그 말에 분노를 참지 못해서,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총과 도끼를 들고 암살을 시도 했다.
총으로 쐈는데, 불발이 되었다. 그래서 도끼를 들고 스티븐스를 향해서 휘둘렀다.
하지만, 스티븐스는 그것을 모두 피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전혀 친분이 없는 또 다른 조선인이 같은 날 같은 시에 우연히 스티븐스를 암살할 계획이 있었는지, 스티븐스를 향해 총을 쏴서 죽인다.
도끼를 휘두른 사람은 무죄로 풀려 나오고, 스티븐스를 향해 총을 쏴서 죽인 조선인은 25년형을 선고 받는다
미국의 신문에서도 대서특필이 되었다
미국의 신문에서는 왜 전혀 모르는 동양인이 스티븐스를 죽였는가? 에 대해서 분석을 하기 시작하고 조선의 상황에 대해서 알려지게 된다
그래서 동정 여론이 일어나서, 25년형에서 10년형으로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조선인들은 서로 ito를 자기가 죽이겠다고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ITo는 또 중국을 침략할 계획을 세우기 위해 하얼빈에 있었고, 안중근은 그곳에 가서 총 5발로 ito의 심장을 관통시킨다.
전세계는 그것을 신문으로 낸다.
ito는 일본의 화폐에도 있는 얼굴이다. 그만큼 일본으로부터 존경받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지만 한국에서는 ito가 아시아 침략의 원흉입니다.
한국만큼 독립 운동을 격렬히 한 아시아의 나라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