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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本이 진짜로 추악한 이유는 아이누족을 대량 학살하고 북해도를 뺏거나, 오키나와를 완력으로 강제 편입한 것에 있지 않다.... ( ̄^ ̄)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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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횡포-본토 무관심’

겹친 고통의 굴레

주일미군 재배치 앞둔 오키나와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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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데나마을과 좁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동아시아 최대의 미군기지인 가데나기지, 담 너머로 P-3C 대잠초계기들이 24시간 대기 중이다. 마을 땅의 대부분을 기지에 빼앗긴 주민들은 24시간 비행하는 미군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일본 최남단 오키나와는 60년 동안 주일미군 기지의 대부분을 떠안은 채 미군의 태평양지역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동안 미군기지 철수와 평화를 요구하는 오키나와인들의 노력도 꾸준히 계속돼 왔다.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주일미군재편 계획의 핵심인 오키나와를 찾아가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이번 취재는 오키나와현과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주최한 ‘아시아태평양유스포럼’ 참가를 계기로 이뤄졌다.

미군기지로 인한 비슷한 문제들을 안고 있는 한국에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슈가 조금씩 알려지긴 했지만, 실제로 찾아가 본 오키나와섬 곳곳에는 가는 곳마다 미군기지가 과도하게 집중돼 주민들의 일상을 뒤덮고 있고, 오랫동안 점령과 전쟁, 미군기지 등 역사적 상처로 고통받아온 이곳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었다. 반면 현정부와 오키나와인들이 오랫동안 힘을 합쳐 미군기지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노력해 왔고, 적지만 조금씩 기지 반환을 이뤄내고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미·일 정부의 협상에 따라 기지가 반환된 땅에서는 오염이 심해 정화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편집자 주>

밤낮 없는 군용기 굉음…사실상 섬 전체가 미군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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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남부 오키나와의 카데나마을, 마을 땅의 83%를 미 공군기지가 삼키고 있다. 1995만m2 면적의 카데나기지는 동아시아 최대의 미 공군기지로 군용기 125대가 24시간 쉬지 않고 뜨고 내린다.

1월 중순 찾아간 카데나마을,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기지 담 바로 너머에는 P-3C 대잠초계기들이 항상 대기하며 끝없는 소음을 뿜어내고 있었다. 잇따라 이륙하는 미군기의 굉음 때문에 한 여름에도 아이들이 창문을 닫고 수업해야 한다고 주민들은 호소한다. 이 마을 공무원인 와카타 시키토코는 “주민들은 야간비행이라도 중지해 달라고 미군에 여러 차례 요구했고, 미군은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는 비행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지만 지켜진 적이 없다. 하루 150번씩 비행하는 날도 있고, 한해 동안 소음이 78dB 이상 치솟는 횟수가 4만번이 넘는다”고 말했다.

2차대전 직후 미군이 오키나와를 점령하고 기지를 설치하면서 땅을 뺐긴 많은 주민들은 마을을 떠났다. 마을 공동묘지는 옮길 수 없어 기지 안에 남겨졌고, 주민들은 성묘할 때마다 미군의 허가를 받고 들어가야 한다. 미군 1만5천여명이 주둔하는 카데나기지 안에는 주택과 극장, 골프장, 대학교까지 있지만, 미군들은 언제라도 자유롭게 오키나와 전역을 돌아다닐 수 있다.

계속되는 군용기 추락사고도 주민들을 불안 속으로 몰아넣는다. 1월17일에도 카데나기지 주변에서 미 F-15 전투기가 추락했고, 오키나와현 정부는 사고 원인이 밝혀지기 전까지 비행을 중지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미군은 자체조사 결과 문제가 없다며 이틀 만에 비행훈련을 재개했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아열대 기후의 관광지로도 유명한

오키나와는

 

일본 전체 면적의

 

0.6%를 차지하지만,

 

주일 미군기지의

 

75%를 떠맡고 있다.

 

이곳에는 해병대를 위주로 미군 2만5천명 이상이 주둔하고 있으며, 37개의 기지는 오키나와 본섬의 20%를 차지한다. 오키나와현 우라소에시 시의원인 마타요시 켄타로는 “우리는 미군기지와 미군기지 사이에서 끼어 산다”고 말한다.


카데나기지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20분쯤 가니 후텐마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평범한 주택가를 지나 산 위로 올라가니 촘촘히 들어선 집들과 대학 바로 옆에 미군 헬기 기지가 나타났다. 이곳은 지난 10년 동안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뜨거운 쟁점이 돼온 곳이다. 95년 이 기지에 주둔하던 미군이 초등학생을 강간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60여년 동안 수만건의 미군 범죄로 고통받던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주민 8만명 이상이 연일 시위를 벌이자, 미·일 정부는 결국 기지 이전에 합의했다. 그러나, 첫 이전지로 결정됐던 헤노코 지역 주민들의 끈질긴 반대 시위가 계속되자, 두 나라 정부는 최근 다시 나고시에 있는 기존 슈와브기지를 확장해 이전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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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데나 미 공군기지 정문 앞 ‘게이트 거리’에 있는 한 클럽에서 미군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 이 거리에는 미군 상대 술집과 옷가게 등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주일미군 재배치’에 운명 달려…여론분열 양상도

오키나와 미군기지의 운명은 현재 미국과 일본 정부가 협상중인 주일미군 재배치계획에 따라 결정된다. 1월18일에도 누카가 후쿠시로 일본 방위청 장관이 워싱턴을 방문해 도널드 럼스펠트 미 국방장관과 이 문제를 협의했다. 현재 중간발표가 끝난 이 계획은 아시아 지역 일본의 군사적 역할과 미·일 동맹을 강화하면서, 주민들의 반발이 심한 오키나와에 주둔 중인 미 해병대 일부를 괌과 일본 본토 등으로 분산배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류큐대학의 가베 마사키 교수는 “미국은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에 따라 병력과 기지 일부를 줄여 신속기동군으로 재배치하겠지만, 결국 중국 봉쇄 등을 위해 오키나와에 거점을 계속 남기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오키나와 미군 기지 문제가 장기적으로는 해결되겠지만 지금으로선 낙관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삶의 곳곳에서 미군 기지가 일으키는 갖가지 문제를 떠안아야 했던 오키나와인들은 꾸준히 “미군기지 철수”를 요구하며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써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군기지가 떠나면 그렇지 않아도 일본안에서 가장 낙후된 경제가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이들을 사로잡는다. 류큐대학에서 만난 한 대학생도 “미군기지 없는 삶을 원하지만 경제가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슈와브기지를 확장해 후텐마기지 시설을 받아들이는 문제가 최대 쟁점이 됐던 22일 나고시 시장선거에서도 결국 기지 확장에는 반대하지만 경제발전을 위해 협상할 수 있다는 후보가 당선됐다.

기지 땅에 대한 소유권이 있어 매년 일본 정부로부터 상당한 임대료를 받는 대지주, 기지 고용인들과 나머지 주민들 사이에 여론 분열도 나타나고 있다. 주민들은 지주와 기지 고용인들은 주민들중 극히 소수이며, 나머지 사람들이 일상에서 겪는 피해를 고려하면 경제적 이익은 없다고 반박한다. 135만명 주민중 기지 고용인은 8천여명 정도이며, 실제로 카데나마을 주민 1만4200여명중 카데나기지에 고용된 사람은 100여명 정도다. 미군기지와 관련된 수입이 오키나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차대전 직후 40%에서 5%정도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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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평화기념관 밖에 세워진 위령비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철의 폭풍’으로 불린 오키나와 전투에서 숨진 민간인 12만명과 강제징용으로 끌려와 숨진 조선인, 미군과 일본인 등 사망자 23만명의 이름이 검은 돌에 세겨져 전쟁의 참상을 증언하고 있다. 
 
 
 

본토 이기주의도 상처…주민 21%만 “나는 일본인”

오키나와 사람들은 고통스런 짐을 오키나와에만 떠넘긴 일본 정부와 본토 사람들의 이기적 태도에 더 큰 상처를 받는다고 말한다. 류큐대학의 마사키 교수는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로부터 멀리 떨어져 격리돼 있고 국내 정치에서도 사소한 문제로 취급되기 때문에 보통 일본인들은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키나와인들의 ‘소외감’은

 

본토 일본인들과 거리를 두는

 

그들의 독특한

 

정체성으로도 나타난다.

 

류큐대 존 촨튱 림 교수의

 

설문조사에서

 

오키나와인의 40.6%는 그들을

 

‘오키나와인’으로만

 

여긴다고 답했고,

 

36.5%는 오키나와 일본인

 

또는 일본계 오키나와인으로

 

생각하며, 21.3%만이

 

‘일본인’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야라 도모히로 <오키나와타임스> 기자는 “일본 정부는 미군기지를 오키나와로 집중시켜 ‘오키나와만의 문제’로 만들어 버렸으며 일본인 다수는 이 문제를 알려고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있다. 일본은 자위대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무장한 상태이며 정말 이 지역에 이렇게 많은 미군을 주둔시킬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오랫동안 북한 때문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중국 위협론을 핑계로 대고 있다”고 말했다.

오키나와/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98968.html


 
“진정한 안보는 주민 삶에 기반해야”

다카자토 스즈요 ‘군폭력 반대 오키나와 여성행동’ 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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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를 위해 오키나와 미군기지가 있다고 하지만 무엇이 진정한 안보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곳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군사적 안보가 진정한 안보인가? 사람들은 중국과의 긴장이나 북한 문제 등 큰 안보문제만 얘기하지만, 진정한 안보는 사람들의 삶에 기반해야 한다.”

자그마한 체구에 조용한 말투, 그러나 강인함이 느껴지는 다카자토 스즈요 ‘군폭력반대오키나와여성행동’ 공동 대표는 ‘골리앗’ 미군 기지에 맞서온 오키나와인들의 인내와 힘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다카자토 대표는 20년 넘게 미군 성범죄 피해 여성에 대한 법률·의료 지원과 상담, 그들의 아이들을 돕는 활동을 해왔고, 미군 기지의 구조적 문제점을 알리면서 평화운동을 벌이고 있다. 오키나와 나하시 시의원으로 15년간 활동하기도 했다. 95년 후텐마기지 미군의 초등생 강간 사건을 계기로 한국·필리핀의 여성단체들과 연대해 ‘군사주의반대국제여성네트워크’를 만들어 미군 기지와 폭력에 반대하는 공동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다카자토 대표는 “60년 동안 오키나와 사람들은 미군기지 소음과 오염, 토지 부족, 범죄 등으로 고통 받아왔다. 미국과 일본 정부는 안보만 강조하지만 실제로 고통을 당하는 것은 이곳 사람들이다. 97년 조사에서 카데나지역은 전국에서 저체중 신생아 비중이 가장 높았고, 일본 법원은 카데나기지 비행기 소음이 주민들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인정했지만 판결 이후에도 안보를 이유로 비행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카자토 대표가 내민 오키나와 미군범죄 피해 기록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미군이 오키나와를 점령한 2차대전 직후부터 한국전쟁 당시까지 미군들이 여성들을 집이나 밭, 강가에서 총칼로 위협하며 납치해 무차별로 강간·윤간했으며, 심지어 9달된 여자 아이가 피해자인 사건도 있다.한국전쟁 당시에는 미군들이 더욱 폭력적으로 변해서 마을 입구마다 종을 설치해 미군이 마을로 다가오면 종을 울려서 여성들이 피하도록 알려야 했다”고 말했다. 당시 기지 주변엔 성매매 산업이 번성했고, 강간 뒤 피해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시체를 버리는 사건들도 일어났다. 오키나와가 일본 영토로 반환된 72년 이후에는 성매매가 불법화됐지만, 여전히 데이트 강간 등 미군의 성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다카자토 대표는 “불평등한 해외주둔군지위협정(SOFA) 때문에 이런 범죄가 일어나도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으며, 최근 부시 행정부는 국제형사법정에서 전범과 인권범죄, 대량학살을 처벌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까지 무산시키려 하고 있다”면서 미군 범죄가 힘의 불평등 관계와 군사주의에서 나오는 구조적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군이 나가고 자위대가 들어온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미·일 정부가 협의중인 것처럼 괌이나 필리핀 등으로 오키나와 미군 기지를 이전해 우리 고통을 고스란히 그들에게 떠넘기는 것도 반대한다. 우리는 세계가 덜 군사적으로 바뀌는 것을 소망한다. 2000년 우리는 주요 8개국(G8) 회담에 참석한 정상들에게 국방예산을 5%만 삭감해 빈곤국들을 지원하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부시 행정부는 계속 국방예산을 늘려가고 있다”고 안타까운 현실을 지적한다.

다카자토 대표는 “88년 중학생 아들을 데리고 미군기지 반환 요구 시위에 참가했었다 이제 38살이 된 아들이 6살된 딸을 데리고 또 비슷한 시위에 참석하고 있다”며 “나아지지 않는 상황 때문에 때로는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포기할 수는 없으며 우리는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키나와/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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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는

 

19세기까지도 번창한 독립왕국

1879년 일본에 점령돼…태평양전쟁 때 12만명 희생

일본과 중국, 동남아를 잇는 요충지에 위치한 오키나와는 19세기까지도 독립된 류큐왕국과 고유 문화를 유지하며 중계무역으로 번성했다.

1879년 일본에 점령돼 오키나와현으로 편입됐다.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 3월~6월 일본 정부가 본토 방어 시간을 벌기 위해 오키나와에서 민간인 총동원령을 내려 미군의 북상에 저항하면서 ‘철의폭풍’으로 불리는 치열한 전투에 휘말렸으며, 당시 오키나와 인구의 4분의1인 12만명의 민간인이 숨졌다.

2차대전 직후부터 20년 넘게 미군의 직접 통치를 받으면서 곳곳에 기지가 세워지고 미군의 태평양지역 전략거점이 됐다. 주민들의 끈질긴 요구로 1972년 일본에 반환됐다. 주민들은 일본에 반환되면 미군기지가 철수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일본 정부는 미일안보조약에 따라 모든 미군기지를 그대로 인정했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 오키나와인들은 평화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섬 남부에 세워진 평화기념관은 전쟁과 미군기지의 고통스런 경험을 정리하면서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용인될 수 없다”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기념관 밖 희생자 위령비에는 1945년 전쟁 당시 ‘가해자’였던 미군부터 강제징용돼 희생된 한국·대만인까지 사망자 23만9202명의 이름을 검은 돌에 새겨 놓았다.

오키나와/박민희 기자

세계사的인 관점에서 보면,

 

이런식으로 토착 원주민을 대량 학살하고

 

그 땅을 점령한 역사는 야마토 이외로 얼마든지 있다..

 

왜 남미가 라틴 아메리카로 불리며

 

스페인어 쓰는 국가 많은지 아는가?

 

뭐, 설명 안해도 알겠지.. 누구라도 잘못을 한다..

 

한국도 잘못한다.. 유럽도 잘못한다..

 

핵심은 과거의 잘못을 대하는 자세이다.

 

야마토는 과거의 잘못을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다..

 

曰帝는 류큐를 그들의 의사의 상관없이 강제로 편입시켰다..

 

그리고는 본토 수호를 위해

 

오키나와를 희생시켜 수많은 민간인을 죽였다..

 

그리고 나서 반성은 커녕,

 

오키나와를 그대로 미군에 조공했으며

 

그들의 만행해도

 

오키나와현민의 받는 고통을 국익을 위해 모르는 척했다..

 

오키나와의 본토 반환이 주민의 결정이라고 날조 까지 한다..

 

이미 오키나와 본토 반환에 대한 밀약이 존재했다는 것은 밝혀진지 오래다..

 

그리고선曰本정부는

 

뻔뻔하게 그런 밀약은 없다고 우긴다.

 

게다가 국민은 이렇게 말한다...

단언하지만, 야마토는 절대 민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왜냐하면 너희들은 그럴만한 포용력과 역량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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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本が本気に醜い理由はアイヌ族を大量虐殺して北海道を奪うとか, 沖繩を腕力で強制編入したことにない.... ( ̄^ ̄) v

‘米軍横暴-本土無関心’

重なった苦痛のくびき

株日米だね再配置控えて沖繩に行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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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ったよ羅馬乙科狭いもとの通りに一つを間に置いた東アジア最大の米軍基地であるがデナギだ, 垣越しで P-3C デザムチォギェギドルが 24時間大気の中だ. 村地の大部分を基地に奪われた住民たちは 24時間飛行する米軍機のため苦痛にあっていると訴える.

日本最南端沖繩は 60年の間株日米だね基地の大部分を引き受けたまま米軍の太平洋地域拠点役目をしている. その間米軍基地撤収と平和を要求する沖繩人たちの努力も倦まず弛まず続いて来た. 仕上げ段階に立ち入った週間米軍再編計画の核心である沖繩を尋ねて住民たちの声を聞いて見た.


今度取材は沖繩県と日本国際交流基金が主催した ‘アジア太平洋ユースフォーラム’ 参加をきっかけで成り立った.

米軍基地によった似ている問題を抱いている韓国に沖繩米軍基地イシューが少しずつ知られたりしたが, 実際に尋ねて見た沖繩島あちこちには行く所ごとに米軍基地が過度に集中されて住民たちの日常を覆い被せているし, 長い間占領と戦争, 米軍基地など歴史的傷で苦痛受けて来たこちら人々の話に聞き入ることができた. 一方現政権と沖繩人たちが長い間力を合して米軍基地問題点を解決しようと努力して来たし, 少ないけれど少しずつ基地返還を成している姿も印象的だった. 米・日政府の交渉によって這わ返還された地では汚染が深海浄化作業をしている姿も見られた. <編集者注>

昼も夜もない軍用機轟音…事実上島全体がミグンタン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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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南部沖繩のカデナマウル, 村地の 83%を米空軍基地がのんでいる. 1995万m2 面積のカデナギジは東アジア最大の米空軍基地で軍用機 125台が 24時間休まないで浮かんで下る.

1月中旬尋ねたカデナマウル, もとの通りに一つを間に置いた基地垣すぐ向こうには P-3C デザムチォギェギドルがいつも待機して果てしない騷音を吹き出していた. 相次いで離陸する米軍機の轟音のため真夏にも子供達が窓を閉めて授業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住民たちは訴えする. この村公務員であるワカタ時キトしてからは “住民たちは夜間飛行でも中止してくれと米軍に何回も要求したし, 米軍は午後 10時から午前 6時までは飛行しないという約束もしたが守られたことがない. 一日 150番(回)ずつ飛行する日もあって, 一年の間騷音が 78dB 以上聳える回数が 4一万回が過ぎる”と言った.

2次大戦直後米軍が沖繩を占領して這うのを設置しながら地を抜いたことは多くの住民たちは村を発った. 村共同墓地は移すことができなくて基地の中に残されたし, 住民たちは墓参りする度に米軍の許可を受けて入っ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 米軍 1万5千名余が駐屯するカデナギだ中には住宅と劇場, ゴルフ場, 大学までいるが, 米軍たちはいつでも自由に沖繩全域を歩き回ることができる.

続く軍用機墜落事故も住民たちを不安の中に追いこむ. 1月17日にもカデナギだ周辺で米 F-15 戦闘機が墜落したし, 沖繩県政府は事故原因が明かされる前まで飛行を中止してくれと要求したが米軍は自体調査結果問題がないと二日ぶりに飛行訓練を再開した.

エメラルド色海と亜熱帯気候の観光地でも有名な

沖繩は

 

日本全体面積の

 

0.6%を占めるが,

 

週間米軍基地の

 

75%を引き取っている.

 

こちらには海兵隊を主として米軍 2万5千名以上が駐屯しているし, 37個の這うのは沖繩本島の 20%を占める. 沖繩県ウラソエシ市会議員であるマタヨシkentaでは “私たちは米軍基地と米軍基地の間で挟まって暮す”と言う.


カデナギジで車に乗って南に 20名ほど行ったらフテンマ空軍基地に到着した. 平凡な住宅街を経って山の上に上がったらぎっしりと立ち入った家たちと大学すぐ側に米軍ヘリ這わ現われた. こちらは去る 10年の間アメリカと日本の間で熱い争点になって来た所だ. 95年この基地に駐屯した米軍が小学生を強姦する事件が起こった. 60余年の間数万件の米軍犯罪で苦しんだ住民たちの怒りが爆発した. 住民 8万名以上が連日デモを起こすと, 米・日政府は結局基地移転に合議した. しかし, 初以前誌で決まったヘノ−コ地域住民たちのしつこい反対デモが続くと, 両国政府は最近またナゴシにある既存シュワブギジを確張して移転する計画を推進の中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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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行ったよや米空軍基地正門前 ‘ゲート距離(通り)’にある限りクラブで米軍たちがお酒を飲んでいる. この通りには米軍相手居酒屋と服屋などが列をなして竝んでいる.  
 

‘株日米だね再配置’に運命走って…世論分裂様相も

沖繩米軍基地の運命は現在アメリカと日本政府が交渉中の株日米だね再配置計画によって決まる. 1月18日にもヌカがフクシで日本防衛庁長官がワシントンを訪問してドナルドロムスペルト米国防相とこの問題を協議した. 現在中間発表が終わったこの計画はアジア地域日本の軍事的役目と米・日同盟を強化しながら, 住民たちの反発がひどい沖繩に駐屯中の米海兵隊一部をグアムと日本本土などに分散配置する内容を記している. 琉球大学の可部Masaki教授は “アメリカはヘウェズドンミグンゼベチギェフェック(GPR)によって兵力と基地一部を減らして迅速機動君に再配置するが, 結局中国封鎖などのために沖繩に拠点をずっと残すようになること”と見込みながら “沖繩米軍基地問題が長期的には解決されるが今としては楽観的ではない”と言った.

生のあちこちで米軍這わ起こすいろいろの問題を引き受け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沖繩人たちは倦まず弛まず “米軍基地撤収”を要求して問題を解決しようと労力して来た. しかし, 一方では米軍基地が去ればそうでなくても日本の中で一番立ち後れされた経済が崩れないか, と思う不安感がこれらを捕らえる. 琉球大学で会ったある大学生も “米軍基地ない生がほしいが経済家心配だ”と言った. シュワブギジを確張してフテンマギだ施設を受け入れる問題が最大争点になった 22日ナゴシ市長選挙でも結局基地拡張には反対するが経済のために交渉す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候補が当選した.

基地地に対する所有権があって毎年日本政府から相当な貸し賃を受ける大地主, 基地雇用人たちと残り住民たちの間に世論分裂も現われている. 住民たちは地主と基地雇用人たちは住民たち中極めて少数であり, 残り人々が日常で経験する被害を考慮すれば経済的利益はないと駁する. 135万名住民中基地雇用人は 8千名余位であり, 実際にカデナマウル住民 1万4200人余り中カデナギジに雇用された人は 100人余り位だ. 米軍基地と係わる収入が沖繩経済で占める比重は 2次大戦直後 40%から 5%位に減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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沖繩平和記念館の外に立てられた慰霊碑には太平洋戦争当時 ‘鉄衣暴風’と呼ばれた沖繩戦闘で死んだ民間人 12万名と強制徴用でひかれて来て死んだ朝鮮人, 米軍と日本人など死亡者 23万名の名前がかけることは石にセギョジョ戦争の惨状を証言している. 
 
 
 

本土利己主義も傷…住民 21%だけ “私は日本人”

沖繩人々は苦しい負けることを沖繩にだけ押し付けた日本政府と本土人々のエゴイスチック態度にもっと大きい傷を受けると言う. 琉球大学のMasaki教授は “沖繩は日本本土から遠く離れて隔離されていて 国内政治でもちょっとした問題に取り扱いされるから普通日本人たちはこの問題に関心を傾けない”と言った.

沖繩人たちの ‘疎外感’は

 

本土日本人たちと距離を置く

 

彼らの独特な

 

アイデンティティでも 現われる.

 

琉球台ゾーンツァンティユングリーム教授の

 

アンケート調査で

 

沖繩人の 40.6%は 彼らを

 

‘沖繩である’だけで

 

思うと 返事したし,

 

36.5%は沖繩日本人

 

または日系沖繩人で

 

思って, 21.3%だけが

 

‘日本人’と思うと返事した.

野党だと企図ヒーロー <沖繩タイムス> 記者は “日本政府は米軍基地を沖繩で集中させて ‘沖繩だけの問題’で作ってしまったし日本人多数はこの問題が分かろうとしないで目をつぶっている. 日本は自衛隊だけでももう充分に武装した状態で本当にこの地域にこんなに多い米軍を駐屯させる必要があるのか疑問だ. 長い間北朝鮮のためだと言ったらこれからは中国脅威論を言い訳でつけている”と言った.

沖繩/バックミンフィ記者 minggu@hani.co.kr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98968.html


 
“真正な安保は住民生に基盤すると”

ダカー瓷土スズです ‘郡暴力反対沖繩女性行動’ 共同代表

   
 http://img.hani.co.kr/imgdb/resize/2006/0201/03003865_20060201.JPG
  
 
“安保のために沖繩米軍基地があると言うが何が真正な安保なのか悩まなければならない. こちら人々の生を破壊する軍事的安保が真正な安保か? 人々は中国との緊張や北朝鮮問題など大きい安保問題だけ話すが, 真正な安保は人々の生に基盤しなければならない.”

やや小さい体つきに静かな言いぐさ, しかし強靭さが感じられるダカー瓷土スズです ‘グンポックリョックバンデオキナワヨソングヘングドング’ 共同代表は ‘ゴリアテ’ 米軍基地にマッソオン沖繩人たちの忍耐と力を象徴する人物だ.

ダカー瓷土代表は 20年以上米軍性犯罪被害女性に対する法律・医療支援と相談, 彼らの子供達を助ける活動をして来たし, 米軍基地の構造的問題点を知らせながら平和運動をしている. 沖繩那覇市市会議員で 15年間活動したりした. 95年フテンマギだ米軍の小学生強姦事件をきっかけで韓国・フィリピンの女性団体たちと連帯して ‘グンサズウィバンデグックゼヨソングネトウォク’を作って米軍基地と暴力に反対する共同努力も続いている.

ダカー瓷土代表は “60年の間沖繩人々は米軍基地騷音と汚染, 土地不足, 犯罪などで苦痛受けて来た. アメリカと日本政府は安保だけ強調するものの実際に苦痛にあうことはこちら人々だ. 97年の調査でカデナジヨックは全国で低体重新生児比重が一番高かったし, 日本法院はカデナギだ飛行機騷音が住民たち健康に悪影響を及ぼすと認めたが判決以後にも安保を理由で飛行が続いている”と言った.

ダカー瓷土代表が突き出した沖繩米軍犯罪被害記録は衝撃的だった. 彼は “米軍が沖繩を占領した 2次大戦直後から朝鮮戦争当時まで米軍たちが女性たちを家や畑, 川端で銃刀で脅威しながら拉致して無差別で強姦・輪姦したし, 甚だしくは 9ダルドエン女の子が被害者である事件もある.朝鮮戦争当時には米軍たちがもっと暴力的に変わって村入口ごとに鐘を設置して米軍が村に近付けば鐘を泣かして女性たちが避けるように知らせ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と言った. 当時基地周辺には性売買産業が盛んだったし, 強姦後被害女性を残忍に殺害して死骸を捨てる事件も起きた. 沖繩が日本領土に返還された 72年以後には性売買が不法化されたが, 相変らずデート強姦など米軍の性犯罪が続いている.

ダカー瓷土代表は “不平等な海外駐屯軍指揮協定(SOFA) のためこんな犯罪が起きても加害者をまともに処罰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し, 最近ブッシュ行政府は国際刑事法廷で戦犯と人権犯罪, ホロコーストを処罰しようとする国際社会の努力まで無産させようと思っている”と米軍犯罪が力の不平等関係と軍事注意から出る構造的問題だと強調した.

彼は “米軍が出て自衛隊が入って来ると言っても問題が解決されない. 米・日政府が協議中のことのようにグアムやフィリピンなどで沖繩米軍這うのを移転して私たち苦痛をそっくりそのまま彼らに押し付けることも反対する. 私たちは世界がより少なめに軍事的に変わることを願う. 2000年私たちは主要 8ヶ国(G8) 会談に参加した正常に国防予算を 5%だけ削減して貧困国たちを支援しなさいと提案した. しかし, 現実でブッシュ行政府はずっと国防予算を増やしている”と切ない現実を指摘する.

ダカー瓷土代表は “88年中学生息子を連れて米軍基地返還要求デモに参加したもう 38歳になった息子が 6歳になった娘を連れてまた似ているデモに参加している”と “よくならない状況のための時では無力感を感じたりするが, 何もしないであきらめることはできないし私たちはずっと努力すること”と言った.

沖繩/バックミンフィ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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沖繩は

 

19世紀までも栄えた独立王国

1879年日本に占領されて…太平洋戦争の時 12万名犠牲

日本と中国, 東南アジアを引き継ぐ要衝地に位した沖繩は 19世紀までも独立された琉球王国と固有文化を維持して中継貿易に盛んだった.

1879年日本に占領されて沖繩県に編入された. 太平洋戦争末期の 1945年 3月‾6月日本政府が 本土防御時間を儲けるために沖繩で民間人総動員令を下げて米軍の北上に抵抗しながら ‘鉄衣暴風’と呼ばれる熾烈な戦闘に巻き込まれたし, 当時沖繩人口の 4分の1の 12万名の民間人が死んだ.

2次大戦直後から 20年以上米軍の直接統治を受けながらあちこちに這わ立てられて米軍の太平洋地域戦略拠点になった. 住民たちのしつこい要求で 1972年日本に返還された. 住民たちは日本に返還されれば米軍基地が撤収すると期待したが日本政府は日米安保条約によってすべての米軍基地をそのまま認めた.

歴史的経験を通じて沖繩人たちは平和の大事さを悟った. 島南部に立てられた平和記念館は戦争と米軍基地の苦しい経験を整理しながら “どんな場合にも戦争は容認されることができない”と言う意味を強調している. 記念館外犠牲者慰霊碑には 1945年戦争当時 ‘加害者’だった米軍から強制徴用されて犠牲された韓国・台湾人まで死亡者 23万9202人の名前をかけることは石に刻んでおいた.

沖繩/バックミンフィ記者

世界史的である観点で見れば,

 

こういうふうに土着原住民を大量虐殺して

 

その地を占領した歴史は 大和以外でいくらでもある..

 

どうして南米がラテンアメリカと呼ばれて

 

スペイン語書く国家多いのか分かるか?

 

, 説明しなくても分かる.. 誰でも過ちをする..

 

韓国も間違う.. ヨーロッパも間違う..

 

核心は過去の過ちを対する姿勢だ.

 

大和は過去の過ちを 過ちではないと言う..

 

曰帝は琉球を彼らの意思の構わずに 強制で編入させた..

 

それからは本土守護のために

 

沖繩を犠牲させて幾多の民間人を殺した..

 

そしてから反省はどころか,

 

沖繩をそのまま米軍に朝貢したし

 

彼らの蛮行しても

 

沖繩県民の受ける苦痛を国益のために 分からないふりをした..

 

沖繩の本土返還が住民の決定だと 捏造までする..

 

もう沖繩本土返還に対する密約が存在したということは 明かされてから以前だ..

 

描いて曰本政府は

 

図図しいそんな密約はないと言い張る.

 

それに国民はこんなに言う...

言い切るが, 大和は絶対民族問題を解決することができない.

何故ならば君たちはそんな包容力と力量がないから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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