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측에서 바보같은 일본인일지 모르지만.
이 것은 확실히 정론을 말하는 것 같다.
독도 문헌 등장, 조선이 200년 빨라
호리가즈오 일본 교토대 교수
“일 독도 편입 부당” 논문
1987년 호리 가즈오(54) 일본 교토대 경제학부 교수는 그해 3월 일본 조선사연구회에서 발간한 논문집에 ‘1905년 일본의 독도 영토 편입’이란 글을 싣고, 독도가 한국땅인 이유를 다양한 역사자료를 들어 증명했다.
호리 교수는 17일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논문에 대해 “학술적 차원에서 쓴 글”이라며 “학술대회에선 얘기할 수 있지만, 정치적 이슈가 돼 있는 상황에서 언론에 얘기하는 것은 사양하고 싶다”며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사)한일사회문화포럼이 이날 〈한겨레〉에 보내온 호리 교수의 글을 발췌요약한다. 조선 문헌에 오늘의 다케시마가 등장한 것은 일본보다 약 200년 빠르다. 〈세종실록〉 지리지(실제로 1432년, 형식적으로는 1454년)에 ‘울릉도와 별도로 또 다른 섬이 존재하고, 청명한 날에는 서로 쳐다볼 수가 있다’라고 적혀 있다. 한국에서는 우산도를 독도라고 인식한다.
일본 문헌에 독도가 처음 등장한 것은 〈은주시청합기〉(1667년)이며, 송도(마쓰시마)라는 명칭으로 울릉도와 병기되어 나온다. 1693년 울릉도에서 안용복 일행과 일본인 어민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다. 이때 대마도 영주가 울릉도를 찬탈할 음모를 꾀했으나 안용복이 두 차례 일본에 건너와 담판한 결과 바쿠후(막부)는 1699년 3월 울릉도가 조선령임을 정식으로 승인함으로써 이른바 ‘죽도 1건’은 결말이 났다.
당시 외교 문서에 독도 명칭이 등장하지 않지만, 그 섬이 울릉도의 부속 도서로 간주된 이상 독도의 영유권도 똑같이 처리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일본의 관제 지도에서 송도(독도)를 처음 표시한 것은 〈일본 여지로정전도〉(1773년)다. 1778년에 간행된 목판채색판인 〈일본로정여지도〉는 일본 본토와 그 부속지를 모두 채색하였으나 죽도와 송도는 조선 반도와 함께 전혀 칠하지 않았다. 즉 ‘죽도 1건’ 이후 관제 지도는 죽도·송도를 일본 영토로 취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바쿠후가 무너지고 메이지 정부가 들어서자 1876년 10월 내무성이 죽도·송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무성은 1877년 3월 당시 최고 국가기관인 태정관에 ‘일본해내 죽도 외 한 섬 지적 편찬 방향’이라는 문서를 제출하고 최종 판단을 요청했다. 태정관 조사국은 죽도와 송도가 일본 영토가 아니라는 공문서를 정식으로 내무성에 내려보냈다.
일본 교토대 이하의 학벌인 일본 불고기들은 모두 입을 닫는 것이 현명desu~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