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전 美대통령, 2차대전 때 일본군에 인육으로 먹힐 뻔 했다
1945년 2월 오가사와라 제도의 참극
●1944년 9월2일, 미군 조종사 9명 일본 치치지마 섬 폭격하다 추락
●부시 중위는 구사일생, 나머지 8명은 일본군에 처형된 뒤 인육으로 ‘요리’
●인육 먹은 다치바나 중장, “맛있다, 한 접시 추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조지 W부시 현 대통령의 아버지)은 1943년 6월 해군장교로 임관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해군 조종사 과정을 수료한 그는 당시 만19세로 미국 해군의 최연소 조종사였다. 그는 폭격기 조종사로 태평양 방면에 배치돼, 1944년 9월2일 오가사와라(小笠原) 제도 폭격에 나섰다.
오가사와라 제도는 일본 본토에서 1000km 남쪽에 위치한 중부 태평양의 전략적 요충지다. 그중에서 가장 큰 섬인 치치지마(父島)는 이오지마(硫黃島) 북쪽 200km에 있는 섬으로, 일본 본토와 이오지마를 연결하는 보급의 중계지였다. 치치지마에 대한 공격이 그날 부시 중위의 임무였다.
제51 뇌격대(VT-51)의 일원으로 출격한 부시 중위의 애기(愛機) 애칭은 ‘바버라’, 고향에 두고 온 약혼녀의 이름이다. 그런데 ‘바버라’는 8000피트 상공에서 폭탄을 투하하던 중 일본군의 대공포에 맞아 화염에 휩싸였다. 다행히 비행기가 추락하기 전에 부시 중위는 낙하산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탈출하면서 약간의 실수가 있었지만 무사히 바다에 떨어진 부시 중위에겐 계속 행운이 따랐다. 구명정은 상당히 먼 곳에 떨어졌지만 우군기가 강하와 상승을 반복하면서 위치를 가르쳐준 덕분에 그는 헤엄쳐서 구명정에 도달했다. 일본군 함정 두 척이 그를 생포하러 쫓아왔지만 우군기들이 물리쳤다. 부시 중위는 그렇게 두세 시간가량 치치지마 앞바다에서 표류했다. 그후 풍향이 바뀌면서 구명정이 치치지마 쪽으로 흘러가던 도중에 미군 잠수함이 그를 구조했다.
당시 오가사와라 제도를 겨냥한 수차례의 폭격 와중에 미군기가 격추돼, 미국 9명이 바다에 떨어졌는데, 조종사 가운데 부시 중위만 유일하게 생환했다. 운이 조금만 나빴더라도 그는 8명의 동료와 함께 처참한 최후를 맞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