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국산 로켓의 아버지’ 고다이 도미후미 도쿄대 항공우주회 회장. /도쿄=선우정 특파원 ―(러시아 기술에 의존하는 한국처럼) 일본이 1975년 인공위성을 처음 정지궤도에 올렸을 때도 미국 기술에 의존했습니다.“일본의 출발점은 (1955년 성공한) ‘펜슬 로켓(길이 23cm)’입니다. 갓파·뮤 로켓으로 진화한 ‘고체(固體) 로켓’의 역사이지요. 도쿄대, 그러니까 민간이 개발했습니다. 하지만 통신위성시대가 열리면서 무거운 위성을 쏘아올리기 위해선 대형 ‘액체 로켓’이 필요했지요. 1960년대 정부가 시작한 ‘Q로켓’입니다. 당시 일본의 액체 로켓 기술은 지금 한국의 KSR 로켓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추력(推力·가스 분사의 반동에 의해 생기는 추진력) 12t 정도. 무리였지요. 그래서 미국 기술을 받았습니다. 미국이 먼저 기술 제공을 타진했어요.”
―일본은 기술 도입에만 60억엔(1970년 당시)을 지불했습니다. 미국 기술이 큰 역할을 했나요?
“그럼요. 미국이 없었으면 (국산 로켓 개발도) 안 됐겠지요. 일본은 한국 나로호(KSLV-1)처럼 로켓을 (미국에서) 가져온 것이 아닙니다. 배웠어요. 설계 소프트웨어까지.”
―미국이 왜 먼저 제의했을까요?
“‘(일본의 로켓 기술을) 미국의 우산 속에 넣고 싶다’는 것이었겠지요. (일본이 기술 개발을 진척시킨) 고체 로켓은 사용하면 군용(軍用)입니다. 물론 미국에서도 반대 의견이 있었습니다. 델타 로켓은 최신예 기술이었으니까. 당시 알렉시스 존슨 주일 미국대사가 전략적으로 설득했지요. ‘재돌입 기술(로켓을 대기권에 재돌입시켜 대륙간 탄도미사일로 만드는 기술)을 빼고 제공하면 된다’고.”
―한국에서는 KSLV-1(나로호) 계획을 중단하고 KSLV-2(국산로켓 개발 계획)에 전념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이 계획한 KSLV-2는 추력이 300t 규모입니다. KSLV-1이 140t 이니까 2배이지요. 지금 한국 기술로는 무리가 아닐까요.”
―미국 기술을 도입한 일본의 N로켓은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나로호의 1단 로켓(러시아 제작)은 완성품이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 러시아는 (차세대 발사체로 개발 중인) 안가라(Angara) 로켓을 한국에서 한국 돈으로 시험하는 셈이지요. 한국이 왜 처음부터 안가라를 선정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로호 2차 발사는 137.19초에 통신이 두절되면서 추락으로 끝났습니다. 실패 원인에 대한 한국과 러시아의 견해가 틀린 듯합니다.
“137.19초라면 의심할 여지없이 1단이 작동하던 시간입니다. 화염이 보인 곳은 1단이지요. 하지만 로켓은 ‘시스템’입니다. 모두가 좋아야 성공하지요. (러시아가 제작한) 1단이 자체 결함으로 폭발했을 수도 있고, (한국이 제작한) 2단이 고장 나서 1단이 폭발했을 수도 있지요. 중요한 것은 최초 원인을 밝히는 것입니다.”
―한국이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있을까요?
“예전에 중국이 상업적으로 창정(長征)로켓을 이용해 미국 위성을 발사했다가 실패한 일이 있어요. 미국은 ‘로켓 때문’, 중국은 ‘위성 장치 때문’이라고 주장했지요. 결국 미국은 중국과의 로켓 사업을 금지했어요. 사고 자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실패 원인을 공동 규명하는 과정에서 중국이 미국 기술을 훔쳤다고 판단했지요. 실제로 중국의 로켓 기술은 그 후 크게 발전했어요. 로켓은 민감한 국가 기밀의 덩어리입니다. 나로호도 마찬가지이겠지요. 러시아는 1단 로켓에 문제가 있어도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나로호가 한국 우주개발에 역할을 할까요?
“사고 원인 정보가 충분히 공유된다면 의미가 있겠지만. 하드웨어를 저쪽(러시아)에서 만들어 가져오는, (한국 과학자들은) 만질 수도 없는.. 한국 과학자들은 화가 나겠지요. 한국은 구체적인 사고 원인 데이터라도 많이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요.”
―한국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려운 질문이군요. 한국의 발사장(나로우주센터)은 대단합니다. 요즘은 세계적으로 로켓 기술이 분산돼 있기 때문에 개발에 필요한 시간을 단축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지금 (한국) 기술로 어려운 1단 로켓, 즉 대형 엔진을 어떻게 개발하느냐’이지요. 기술 도입 없이 엔진을 그냥 덩어리로 사오는 방식이라면, (러시아와의) 계약을 고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정치적으로 아주 다르지요. 과거 일본과 미국 관계와는.”
―절반을 농담으로 말씀드리면 북한처럼 형편없는 나라도 만드는 것이 로켓인데, 한국은 왜 이렇게 힘들까요?
“중국이 창정(長征) 로켓을 발사(1970년)하기 전에, 무슨 돈이 있고, 무슨 기술이 있었습니까? 국가의 의지, 과학자(우주공학자 첸쉐썬·錢學森)의 집념만으로 시작했지요. 북한은 국민 생활을 희생하면서 모든 것을 그 쪽에 걸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이 로켓을 국가의 제1 과제라고 생각합니까?”
―일본은 원래 뛰어난 비행기 제작 기술이 있었으니까, 로켓 개발도 쉽지 않았을까요?
“일본 항공산업은 패전(1945년) 이후 7년 동안 금지됐습니다. 그 동안 세계 항공산업은 ‘제트엔진’이라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발전했어요. 일본은 7년 격차를 추월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인재들이) 눈을 로켓으로 돌렸지요. (비행기는 안 되니) 로켓에서 따라잡자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때부터 생각해 보면, 실패, 실패, 실패, 성공, 다시 실패, 실패, 실패이런 순서였을 것입니다. 일본도 제로(0)에서 시작했지요.”
―어느 나라나 기술 도입이 열쇠이군요.
“미국의 아틀라스와 델타 로켓, 소련의 소유즈 로켓은 모두 (나치) 독일의 V2 로켓을 데드카피(dead copy·남의 물건을 무단으로 모방하는 것)한 것입니다. V2가 모든 로켓의 출발점이지요. 미국은 V2를 개발한 베르거 폰 브라운 박사를 데려가고, 소련은 V2 제조 장비를 가져간 것이 세계 우주개발 역사의 시작입니다.”
―일본 우주탐사선 ‘하야부사’의 귀환이 한국에서도 화제가 됐습니다. 나로호가 폭발한 직후였기 때문에 일본이 부러웠어요.
“하야부사를 발사한 7년 전엔 소행성이란 말조차 생소했습니다. 하야부사 계획은 ‘발사―> 소행성 안착―>표본 수집―>지구 귀환’의 과정이었지요. 하지만 국민에겐 ‘미니멈 석세스’만 이야기했습니다. 발사에 성공해 이온엔진을 작동시켜 소행성 궤도만 올라타면 100점이라고. 미니멈 석세스만 달성해도 성공인데, 돌아왔으니 1000점이지요. ‘수퍼 석세스’입니다. 우주개발은 이런 것이지요. 나로우주센터에 초청을 받아서 강연을 한 일이 있어요. ‘지금 한국은 10발을 쏘면 2~3발은 실패할 것’이라고 했지요.”
―일본도 국산로켓 개발 과정에서 많은 실패를 했습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우주개발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세계 로켓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아리안 스페이스(Arianespace·프랑스 주도로 유럽 각국이 공동 설립한 로켓 발사회사)조차 적자입니다. 우주개발로 돈 버는 나라는 없지요. 그래도 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라면, 우주개발이 국가가 보유한 소프트파워의 종합 능력을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대답해야 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