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이정도인 줄 몰랐어요”
멕시코시티 콰우테목區 비르히니아 구청장
깨끗한 거리, 산업시설 등 경제·사회 발전 너무나 충격적이고 놀라워
“그동안 생각해왔던 한국이 아니었다. 한국에 대해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한국이란 나라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솔직히 혼란스럽다.”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의 콰우테목구(區) 구청장 비르히니아 하라미요 플로레스(45)가 한국을 방문하고 털어놓은 소감이다.
지난 10월 20일 오후 서울 방배동의 한 식당에서 비르히니아 구청장을 만났다. 그는 제주도 여행에서 막 돌아와 김치전골을 능숙한 젓가락질로 맛있게 먹었다. 특히 북어포 무침과 깻잎을 좋아했는데, 북어포 무침은 혼자서 두 접시를 먹었다. 합석했던 사람들이 놀라는 눈빛을 보내자 “내 몸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것 같다”고 농담을 하는 여유를 보였다.
멕시코시티 콰우테목(Cuautemoc)구는 대통령궁, 국회의사당, 오페라하우스 등이 모두 자리잡고 있는 멕시코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다. 멕시코시티는 16개 자치구로 구성되어 있는데 ‘낙하하는 독수리’라는 뜻을 지닌 콰우테목구가 가장 대표적인 자치정부다. 서울의 종로·중구와 같은 곳이 콰우테목구라고 보면 된다.
비르히니아 구청장은 지난 10월 12일 서울을 방문, 다음날 서울 서초구와 우호도시 협정을 체결했다. 이번 우호협정 체결로 양 자치단체는 문화 교류, 교육의 상호지원, 교민 보호 등을 통해 항구적으로 우의를 돈독히 하게 된다.
2005년은 한국인이 멕시코땅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지 100년이 되는 해다. 이번 우호협정 체결은 ‘멕시코 한인이민 10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콰우테목구와 멕시코시티 한인회(회장 이광석)가 제안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5월 6일 조남호 구청장은 멕시코시티를 방문해 우호협정 체결 의향서를 교환한 바 있다.
비르히니아 구청장은 우호도시 협정을 체결한 뒤 수행원과 함께 서초구를 비롯한 서울시내 곳곳을 둘러보았다. 조선일보사의 유미디어 랩을 견학했고 이어 울산의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생산시설, 평택의 LG전자 생산 시설 등을 시찰했다. 산업 시찰을 끝낸 뒤에는 설악산과 제주도도 관광했다. 비르히니아 구청장은 “한국 방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게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울산에서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생산시설을 둘러보았다. 한국이 산업 분야에서 보유하고 있는 기술력에 너무나 놀랐다. 그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회적인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서울은 너무나 정리가 잘 되어 있고 깨끗했다.”
그는 우호도시 파트너인 서초구청에 대해서는 “조남호 구청장의 리더십에 감명을 받았고 서초구청이 구민에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지 놀라웠다”고 말했다.
해발 2240m의 고지대에 위치한 멕시코시티는 가장 역사가 오래된 대도시 중 하나다. 도심 곳곳에 아즈텍 문명의 흔적이 남아 있는 멕시코시티. 한국인이 멕시코시티에 대해 갖고 있는 부정적 인상 중의 하나는 ‘대기오염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서울과 멕시코시티의 대기오염 정도를 물어보았다.
“멕시코시티는 그동안 많은 노력으로 대기오염의 수치가 많이 낮아졌다. 지금 멕시코시티의 해결 과제는 대기오염보다는 쓰레기 문제다. 이번 서울을 방문해서 놀란 것 중의 하나가 도시가 쓰레기가 없이 깨끗하다는 것이었다. 서초구청으로부터 쓰레기를 수거해 처리하는 노하우를 배우고 싶다.”
멕시코시티에 사는 교민은 1만5000명. 이 중 1만2000여명이 콰우테목구에서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교민은 주로 섬유, 의류, 액세서리 등의 분야에서 생산과 도소매를 주로 한다. 지난 5월 7일 멕시코시티에서 벌어진 ‘한인이민 100년제’ 축제 기간 중에는 500m에 이르는 꽃차행렬이 시내 중심가 레포르마 대로를 행진했다. 시내 한복판에서 몇 시간 동안 차량통행을 금지시킨 채 축제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비르히니아 구청장 덕분이었다. 멕시코한인회는 ‘한인이민 100주년’을 맞아 시내 소방서에 앰뷸런스를 기증하기도 했다.
▲ 비르히니아 구청장과 조남호 서초구청장.
비르히니아 구청장은 10남매(5남5녀) 중 일곱 번째로 태어난 멕시코시티 토박이다. 오빠 한 명이 어려서 사망해 현재는 9남매가 멕시코에 살고 있다. 멕시코 최고 명문인 국립자치대학(UNAM)에서 사회노동을 전공했고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인권운동가로 활동했다. 1997년 연방하원 의원에 당선되었고 지난해 10월 콰우테목 구청장에 당선되었다. 비르히니아 구청장은 멕시코 정계에서는 미래의 지도자감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그는 국회의원을 하면서 가졌던 꿈들을 행정가로서 조금씩 실천하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국회의원을 하면서 강도, 절도 등 범죄에 대해 정부에서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다고 느껴왔다. 구청장에 취임해서 안전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범죄 예방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범죄율이 크게 떨어졌다.”
멕시코 중앙정부에서 여성 장관은 사회개발부 장관이 유일하다고 한다. 장래의 정치적 포부를 묻자 그는 “현재로서는 구청장을 잘 마무리한 뒤에 주정부 장관직을 생각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전 취재에서 비르히니아 구청장은 미혼으로 파악됐다. 그래서 “지금 결혼하지 않은 것은 정치적 야심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비르히니아 구청장은 활짝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오래 전에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지금 혼자 사는 것과 정치적인 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애인이 생기면 결혼하고 싶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것도 애인을 찾고 싶어 온 것이다.”
이 말에 배석했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통역을 하던 한 교민이 “처음 듣는 얘기라며 왜 이제서야 그런 사실을 말하냐”고 반문하자, 비르히니아 구청장은 양손을 들어보이며 “누가 물어보았냐? 그 사실을 아무도 물어본 사람이 없어서 얘기를 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대답한다. 또 한번 폭소가 터졌다.
비르히니아 구청장은 “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정직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정직은 모든 일의 관문”이라고 강조했다.
비르히니아 구청장은 멕시코로 돌아가자마자 시 정부에 한국 방문결과를 보고하기로 되어 있다. 그는 “내가 보고 느낀 것을 사실대로 보고하고 알리겠다”고 말했다. “솔직히 한국을 방문하기 전까지 한국을 잘 몰랐다. 한국의 실상과 전혀 동떨어진 채 일본, 중국과 함께 생각했었다. 정부가 시민에게 어떻게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고 기업이 최종 고객에게 어떻게 최상의 품질과 적정한 가격으로 혜택을 되돌려주고 있는지를 설명하겠다. 한국인의 환경 보존 의식과 고유 문화를 아끼는 정신에 대해서도 보고할 것이다.”
그는 인터뷰를 끝내고 일어서면서 “멕시코에 돌아가면 최선을 다해 한국인의 생업을 돕고 싶다”고 덧붙였다.
조성관 주간조선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