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일본의 차이
1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통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 분단과 통일의 상징인브란덴부르크문의 웅장한 자태는 10년 전과 다름없다. 그러나 과거 "죽음의 땅"이었던 베를린 심장부는 그야말로 상전벽해로 변했다. 소니와 다임러 크라이슬러 본사가 들어선 포츠담 광장은 베를린 최고의 번화가로 바뀌었다.
여기서 브란덴부르크문까지는 각종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이 공사가 다 끝나려면 몇십 년 더 걸린다는 게 베를린 사람들의 설명이다.
베를린 심장부의 하늘을 온통 뒤덮고 있는 크레인 사이에 정말 의미 있는 공사 현장을 발견했다. 유대인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홀로코스트 추모비"건립 현장이다. 브란덴부르크문 바로 옆인 이 자리는 19세기 말까지 독일 제국의 왕실 시설이 있었다. 나치 시절에는 선전상 괴벨스의 지하 벙커였고, 히틀러의 지하 벙커도 이 근처에 있었다. 말하자면 독일 권력의 핵심이 있었던 자리다. 바로 이 자리에 독일인들은 "반성의 상징"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과거사에 대한 독일인들의 반성은 익히 알려진 대로다. 1970년 12월 당시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폴란드의 바르샤바 유대인 게토를 방문해 무릎을 꿇었다. 그 어떤 말보다도 강력한 사죄의 몸짓이었다. 이뿐이 아니다. 독일에서 "아우슈비츠는 없었다"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최고 5년의 징역형에 처한다. 유대인 수용시설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학생들에게 나치의 죄상을 낱낱이 교육하고 있다. 다음 세대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서다. 히틀러의 이름인 "아돌프"는 아예 독일 사회에서 사라졌다. 이처럼 철저한 독일인들의 과거 반성을 현장에서 보면서 은근히 울화가 치민다. 역사 왜곡에 독도 문제까지 의도적으로 들고 나오는 일본인들 때문이다. 과연 그들은 언제 독일인들처럼 철이 들려나.
산타야나의 저 유명한 경구가 생각난다. "과거를 잊는 사람은 과거를 반복하는 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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戦犯国ドイツと日本の差
ドイツと日本の差
10余年ぶりにまた捜した統一ドイツの首都ベルリン. 分断と統一の象徴人ブランデンブルク門の雄大壮厳な姿態は 10年従前と変わらない. しかし過去 ¥"死の地¥"だったベルリン心臓部はまさに桑田碧海に変わった. ソニ−とダイムラークライスラー本社が立ち入ったポツダム広場はベルリン最高の繁華街に変わった.
ここでブランデンブルク門までは各種建設工事が盛んでいる. この工事がすべて終わろうとすればミョッシブ年もうかかると言うのがベルリン人々の説明だ.
ベルリン心臓部の空をいちめん覆い被せているクレーンの間に本当に意味ある工事現場を見つけた. ユダヤ人犠牲者を称えるための ¥"ホロコースト追慕碑¥"建立現場だ. ブランデンブルク門すぐ横であるこの席は 19世紀末までドイツ帝国の王室施設があった. ナチ時代には宣伝上グェベルスの地下バンカーだったし, ヒトラーの地下バンカーもこの近くにあった. 言わばドイツ権力の核心があった席だ. まさにこの席に独逸人たちは ¥"反省の象徴¥"を立てているのだ.
すぎ去った事に対する独逸人たちの反省はよく知られたとおりだ. 1970年 12月当時祈るわけブラント西ドイツ総理はポーランドのワルシャワユダヤ人ゲットーを訪問してひざまずいた. どんな言葉よりも力強いお詫びの身振りだった. これのみではない. ドイツで ¥"アウシュビッツはなかった¥"は嘘をつく人は最高 5年の懲役刑に処する. ユダヤ人収容施設を博物館で作って学生たちにナチの罪状を一つ一つ教育している. 次の世代に正しい歴史を教えるためだ. ヒトラーの名前である ¥"アドルフ¥"は初めからドイツ社会で消えた. このように徹底的な独逸人たちの過去反省を現場で見ながら密かにしゃくがつき上がる. 歴史歪曲に独島問題まで意図的に持って来る日本人たちのためだ. 果して彼らはいつ独逸人たちのように物心がつくかな.
サンタヤナのあの有名な拝啓が思い出す. 過去を忘れる人は過去を繰り返す罰を受ける.
10余年ぶりにまた捜した統一ドイツの首都ベルリン. 分断と統一の象徴人ブランデンブルク門の雄大壮厳な姿態は 10年従前と変わらない. しかし過去 ¥"死の地¥"だったベルリン心臓部はまさに桑田碧海に変わった. ソニ−とダイムラークライスラー本社が立ち入ったポツダム広場はベルリン最高の繁華街に変わった.
ここでブランデンブルク門までは各種建設工事が盛んでいる. この工事がすべて終わろうとすればミョッシブ年もうかかると言うのがベルリン人々の説明だ.
ベルリン心臓部の空をいちめん覆い被せているクレーンの間に本当に意味ある工事現場を見つけた. ユダヤ人犠牲者を称えるための ¥"ホロコースト追慕碑¥"建立現場だ. ブランデンブルク門すぐ横であるこの席は 19世紀末までドイツ帝国の王室施設があった. ナチ時代には宣伝上グェベルスの地下バンカーだったし, ヒトラーの地下バンカーもこの近くにあった. 言わばドイツ権力の核心があった席だ. まさにこの席に独逸人たちは ¥"反省の象徴¥"を立てているのだ.
すぎ去った事に対する独逸人たちの反省はよく知られたとおりだ. 1970年 12月当時祈るわけブラント西ドイツ総理はポーランドのワルシャワユダヤ人ゲットーを訪問してひざまずいた. どんな言葉よりも力強いお詫びの身振りだった. これのみではない. ドイツで ¥"アウシュビッツはなかった¥"は嘘をつく人は最高 5年の懲役刑に処する. ユダヤ人収容施設を博物館で作って学生たちにナチの罪状を一つ一つ教育している. 次の世代に正しい歴史を教えるためだ. ヒトラーの名前である ¥"アドルフ¥"は初めからドイツ社会で消えた. このように徹底的な独逸人たちの過去反省を現場で見ながら密かにしゃくがつき上がる. 歴史歪曲に独島問題まで意図的に持って来る日本人たちのためだ. 果して彼らはいつ独逸人たちのように物心がつくかな.
サンタヤナのあの有名な拝啓が思い出す. 過去を忘れる人は過去を繰り返す罰を受け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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