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승국 자격 배제된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조약 체결을 위한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는, 미국 영국이 51년 7월20일 공동으로 일본 등 50개국을 초청했으며, 그해 8월22일 프랑스쪽 요구에 따라 베트남 등 인도차이나 3국에게도 초청장이 발송됐다. 이들 나라 중 인도, 버마(미얀마), 유고슬라비아는 초청에 응하지 않았으며, 소련과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 3국은 조약내용에 반대해 서명하지 않았다.
한국도 조약 초안에는 연합국의 일원으로 표기되었으나 일본의 강경한 반대로 나중에 미국이 삭제했다. 그리하여 의병운동과 3·1운동, 상해 임시정부, 중국쪽 항일전투부대 참가를 비롯한 중국 및 韓中 국경지역 항일무장투쟁 등 끝없이 피의 항쟁을 벌여온 한국은 제외돼 어이없게도 연합국 미군의 피점령지가 됐고, 별 관련도 없는 도미니카공화국, 코스타리카,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이란, 이라크, 과테말라,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아이티,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은 연합국의 일원이 됐다. 오늘날의 뒤틀린 한-일관계의 또 다른 출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