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계 출신 민스님이 전해준 일본의 텐구(天狗)이야기
텐구(天狗)를 모르는 일본인은 없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어린이 이야기책에 등장하거나 마을 신사의 민간 신앙으로 떠받들어지기도 하는 텐구는 일본을 대표하는 전설 속의 요괴, 도깨비, 신 등으로 설명되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러한 텐구라는 존재를 일본에 처음으로 알려준 사람이 백제계 출신인 민스님(僧旻, ?-653년)이란 것을 아는 일본인은 드물 것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이 ‘천구(天狗)’를 “민속에서 요성(妖星)이라하며, 불교용어에서는 하늘을 날아다니며 불법(佛法)을 방해하는 신통력이 있다는 괴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천구 풀이는 우리와 다르다. “텐구(天狗, tengu) : 일본의 민간신앙에서 전승되는 신(神), 요괴(妖怪)로써 전설상의 생물”로 나와 있다. 두 나라의 설명이 다르듯 한국에서는 ‘천구’에 대한 형상도 없고 관심도 별로 없는 데 반해 일본의 ‘텐구(天狗)’는 모습도 각양각색이요, 지방에 따라서는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받드는 곳도 많다. 또한, 텐구는 옛날이야기의 주요 소재이자 텐구탈과 인형은 더없는 일본의 기념품으로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이러한 텐구를 일본에 알려준 민스님은 누구일까? 일본에서 텐구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일본서기> 서명왕 (舒明天皇, 죠메이) 9년 2월조(637)로 ‘괴음을 내며 하늘을 나는 것’이란 기록이 그 처음이다. 당시 사람들은 이 요상한 물체가 뭔지 몰라 어리둥절했는데 24년 동안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백제계 민스님은 이를 가리켜 유성 곧 텐구라고 소개하고 있다. 적어도 이 시기까지 텐구는 유성으로 여겨졌으나 이후 구카이(空海)나 엔친(円珍) 같은 승려에 의한 밀교의 전파로 말미암아 텐구는 덩치가 크고 눈이 부리부리하며 콧대가 높은 상상의 요괴로 변형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텐구는 일본 고유 산악신앙인 수험도의 ‘산복(山伏)’과 인연을 맺게 되는데 이후 산복은 마귀 일종으로 여겨지기 시작하였으며 평지에 살던 일반인들은 산악지대의 험한 곳에 사는 괴이한 존재로서 텐구를 인식하기에 이른다. 우락부락하고 코가 큰 인간 모양을 하였으나 날개를 달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신통력을 지닌 텐구는 그 뒤 다양한 모습으로 일본인의 가슴에 수놓아진다.
텐구를 일본에 소개한 백제출신 민스님은 일본의 36대 효덕왕(孝德天皇)의 최우수 참모로 국박사(國博士)란 칭호를 받았다. 민스님이 나니와궁 근처 아즈미사(阿曇寺)에서 병중에 있을 때 효덕왕은 민스님을 찾아가 손을 꼭 잡고는 ‘만일 법사가 오늘 죽는다면 짐은 내일 죽어버릴 것이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였다. 이처럼 민스님은 효덕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 황실가의 절대적인 숭앙을 받았던 당대 최고의 학식과 실력의 소유자였다. 민스님은 652년 6월 입적하지만 그가 전한 텐구사상은 1,4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인들의 삶 속에 뿌리 깊게 남아있다.

[일본의 전설 속의 텐구(요괴) ]
이러한 텐구를 일본에 알려준 민스님은 누구일까? 일본에서 텐구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일본서기> 서명왕 (舒明天皇, 죠메이) 9년 2월조(637)로 ‘괴음을 내며 하늘을 나는 것’이란 기록이 그 처음이다. 당시 사람들은 이 요상한 물체가 뭔지 몰라 어리둥절했는데 24년 동안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백제계 민스님은 이를 가리켜 유성 곧 텐구라고 소개하고 있다. 적어도 이 시기까지 텐구는 유성으로 여겨졌으나 이후 구카이(空海)나 엔친(円珍) 같은 승려에 의한 밀교의 전파로 말미암아 텐구는 덩치가 크고 눈이 부리부리하며 콧대가 높은 상상의 요괴로 변형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텐구는 일본 고유 산악신앙인 수험도의 ‘산복(山伏)’과 인연을 맺게 되는데 이후 산복은 마귀 일종으로 여겨지기 시작하였으며 평지에 살던 일반인들은 산악지대의 험한 곳에 사는 괴이한 존재로서 텐구를 인식하기에 이른다. 우락부락하고 코가 큰 인간 모양을 하였으나 날개를 달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신통력을 지닌 텐구는 그 뒤 다양한 모습으로 일본인의 가슴에 수놓아진다.
텐구를 일본에 소개한 백제출신 민스님은 일본의 36대 효덕왕(孝德天皇)의 최우수 참모로 국박사(國博士)란 칭호를 받았다. 민스님이 나니와궁 근처 아즈미사(阿曇寺)에서 병중에 있을 때 효덕왕은 민스님을 찾아가 손을 꼭 잡고는 ‘만일 법사가 오늘 죽는다면 짐은 내일 죽어버릴 것이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였다. 이처럼 민스님은 효덕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 황실가의 절대적인 숭앙을 받았던 당대 최고의 학식과 실력의 소유자였다. 민스님은 652년 6월 입적하지만 그가 전한 텐구사상은 1,4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인들의 삶 속에 뿌리 깊게 남아있다.